빠삐용과 황장군의 달고나

[11日] Jul 20, 2021 l M.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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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거 처먹고 다니시네요.”

황장군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술에 취해서? 평상시의 억하심정으로? 이유는 알 수 없고, 황장군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황장군에게 물으니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니, 빠삐용 팀장이 들었다는 그 말의 진위여부 역시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빠삐용 팀장은 크게 화가 났는지, 거하게 취해서 <20세기의 여름>에 찾아와서는 황장군의 말에 대해, 그의 버릇없음에 대해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다. 한 대 쳐버리려다 그냥 “넌 이제 내 인생에서 OUT이야.” 하고는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고 한다. OUT이라니, 황장군의 꿈은 야구선수였다는데. 친형이 야구를 하는 바람에 자신의 꿈을 OUT 시켜야 했다던 황장군은 친형 같은 빠삐용 팀장에게서 다시 OUT 소리를 들어야 했다. 둘 다 술에 취해서 한 말이다. 서로를 후벼파는 말이다.

두 사람은 장충동 골목의 터줏대감이자 절친이다. <20세기의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들은 다트를 하러, 기네스를 마시러 20세기 소년을 줄기차게 찾던 단골이었다. (펍의 기네스는 그 둘이 다 마신다) 큰 형님뻘 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둘은 마치 친구처럼, 친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빠삐용 팀장은 건설 현장의 베테랑 감독관이고 황장군은 고깃집 사장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게가 힘들어지자 황장군의 시름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위로하고 격려하던 빠삐용 팀장은 황장군의 감정을 받아주기도 하다가 나약하다고 호통을 치기도 했나 보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라는, 절친이라는 허물없음이 슬금슬금 확장되어 외상도 먹고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단다.

황장군의 불만이 쌓였다면 그건 꼭 외상값 때문만은 아닐 거다. 그는 장충동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로맨티스트이며, 팀춘자가 모두 반해버릴 만큼 솜털같이 따뜻하고, 손님이 조금만 없어도 망했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해대는 가벼운 멘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빠삐용 팀장의 외상값 정도에 삐칠 사람은 아니다. 문제는 가까운 관계 그것이다. 뭐든 받아줄 것 같은 사이. 그게 절친이 아닌데 둘은 다들 하듯 서로를 그런 사이로 받아들이고 있었나 보다. 그것은 사실 쌓는 일이다. 불만을 쌓는 일이고 감정을 쌓는 일이다. 21세기의 사람들은 그런 것에 미숙하다. 남의 감정선을 마구 침범하는 일을 친밀함의 증거로 삼을 만큼 관계의 위태로움에 대해 민감하지 못하다. 쉽게 친해지고 쉽게 침범하고 쉽게 파괴된다.

관계란 얼마나 위태롭고 부서지기 쉬운지, 마치 달고나 뽑기 같아서 조금만 힘을 잘못 주어도 잘 만들어 가고 있던 모양이 와장창 깨져 버리고 만다. 그걸 사람들은 잘 모르고 이제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기능이 아예 퇴화되어버린 듯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런데 20세기 소년은 참으로 깍뜻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니,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만큼 깍뜻하다. 그의 존대는 매너 있고 상대를 기분 좋게 한다. 그는 <20세기의 여름>의 최고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놓는 일이 없다. 말이 짧아지는 일조차 없다. 그게 참 연륜이라고 해야 할지,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암튼 이렇게나 깍듯한 어른을 본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매스컴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참으로 개차반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를 만난 어떤 이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을 거다. 평론가라는 직업과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철학으로부터 비롯된 공적인 발언들이 그를 오해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오면 그처럼 공손하고 매너 있고 깍듯한 인간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만큼 그는 자신의 경계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그 경계가 때론 미세하게 낯설고 예민하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경계를 내세우는 일이 없지만, 그의 정중함에 매료되어 가까이 다가서려는 누구라도 그가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마음을 연 누구에게도 경계를 분명히 알게 해주는 것 역시 소홀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좋은 일인가? 옳은 일인가? 그건 그냥 개성인가? 취향이고 성격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절친 어쩌구 하다 웬수 되는 관계가 태반인 21세기에서, 깍듯한 존대와 존중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어떤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고, 상대도 역시 말가짐과 말본새를 가다듬게 하는 묘한 힘에 압도되는 경험은 참으로 신비롭다. 물론 그걸 역이용하는 개차반들이 그의 주변에 많기는 하다만.

그는 또한 술에 취할지언정 관계에 취하지 않는다. 그는 관계에 있어 상대의 자리를 언제나 깍듯이 존중하고 술이 섞여 들어가더라도 관계의 경계에서 비틀거리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평상시 정신머리가 얼마나 제대로 박혀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다. 술에 취해 펍 바닥에 널브러질지언정 타인의 감정을 짓뭉개며 역겨운 감정의 토사물을 절친이라며 쏟아내는 일이 없다는 얘기다.

황장군과 빠삐용 팀장의 관계는 여기서 끝난 걸까? 빠삐용 팀장은 다시는 그의 가게에 가지 않을 거라고 했고 자신의 전화번호부에서 그가 삭제되었다고 선언했다. 지나 보니 우정을 쌓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만하게 보고 있었던 거라면 이것은 서로에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렇게 관계를 Del 해나가다 보면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그걸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살고 있다. 남의 선을 마구 침범하며 음주운전을 해대고 있다.

<20세기의 여름>은 펍이니 술이 빠질 수는 없다. 여름은 술이고 여름밤은 맥주고 시원한 칵테일이다. 그러나 이 술이 웬수 되는 상황에는 누구도 장사가 없다. 그래서 여름에는 태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다. 나른한 태양에 속지 말라고 정신줄을 놓고 퍼마시다가는 홍수에 얼기설기 쌓아 놓은 관계들이 마구 휩쓸려 떠내려가게 될 거라고. 그러니 술 마시고 마구 흥분하더라도 정신줄은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어야 한다고. 관계의 정중함은 맨정신일 때나 술에 취했을 때나 한결같아야 한다고. 그게 어른이라고. 그래서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고. 어른들과 마셔야 한다고.

20세기의 여름에 20세기의 어른이 있다.
어설픈 절친들은 놓아두고 그와 함께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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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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