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나라
“여기 스타벅스가 생겼네.”
마법사는 다시 찾은 나라에서 즐겨 찾던 호숫가에 스타벅스가 생긴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여행자의 집 같은 곳이 아닌가. 낯설음의 반복이 일상인 여행자에게, 그곳들은 잠시나마 일상성을 제공해 주는 집 같은 곳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빅맥을 먹을 수 있는.
마법사는 아아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호수를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들었다.
‘왜 한국의 커피는 맛이 없을까? 맛없기로 유명한 스타벅스도 해외에선 이 정도 맛을 내는데 말이지.’
마법사는 고국 스타벅스 커피의 텁텁한 쓴맛이 아닌 고소하고 슴슴한 타국의 스타벅스 커피를 맛보며 역시를 되뇌었다.
“그건 여행 중이 아니라 그런 게 아닐까요? 여행 중에는 혀의 감각도 달라지잖아요?”
“아, 그런가요? 사실 그렇긴 하죠. 신라면은 해외에선 못 먹겠더라구요. 너무 매워서. 오랜만이네요. 5년 만인가요? 아, 이젠 교수님이시죠?”
사슴 교수가 마법사의 맞은편에 앉으며 마법사의 마음을 읽었다. 일찌감치 타국 생활을 시작한 사슴 교수는 이곳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여기게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지금은 여기서 사슴들에게 인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마법사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니 저희 집에서 묵으시라니까 왜 당일에 가신다는 거예요?”
“아, 그게 백마를 타고 왔는데 기차에 태울 수가 없어서 말이죠. 여긴 막 데리고 타면 안 된다면서요?”
“네 맞아요. 사슴만 돼요. 말은 똥을 너무 많이 싸서 처치가 곤란하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사슴도 여기 나라에서만 대중교통을 탈 수 있긴 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려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차를 한 대 사려고 하는데, 고민이에요. 아빠가 타던 차를 물려 받을까, 새 차를 살까하고 말이죠.”
“사고 싶은 차가 있어요? 뭐 드림카라든가.”
“아, 그게 말씀드려도 모르실 거예요. 이 나라 차라.”
“아니 그러잖아도, 어제 서점에 갔다가 자동차가 전시돼 있길래 서점에 웬 자동찬가 하고 봤는데, 기가 막힌 차가 있더라구요. 뭐, 뭐라더라? 짐니? 잔니?”
“눼에?? 지므니를 보셨어요?”
“지므니? 아, 그게 지므니였나? 암튼 작고 귀여운 사륜구동차던데. 급 지름신이 강림하더라구요.”
“아니 세상에, 마법사님 제 드림카에요. 지므니가! 요즘 맨날 그거 유튜브 보는 낙에 사는데. 세상에나!”
사슴 교수는 마법사가 지므니 얘기를 하자 깜짝 놀라며 좀처럼 끝낼 생각이 없는 지므니 찬가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신기하면서도 사슴 교수가 이렇게나 자동차 매니아 였나 싶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교수님 유튜브를 보실 게 아니라 유튜브를 하셔야겠네. 이런 걸 사슴 말로 유튜브 하면 아주 대박치겠어요.”
“그럴까요? 저 유튜브 할까 봐요. 그걸로 돈 벌어서 지므니 사게요.”
“그렇게 좋아요?”
“이쁘잖아요. 전 어렸을 때 아빠가 지프차에 가족들 태우고 여행 가서 차박하고 그랬거든요. 고기 구워 먹고 차에서 함께 자고. 그때 추억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친구들 초대해서 집에서 재우고, 차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시켜 주고 싶고 막 그래요. 사슴 친구들은 겁이 많아서 아무도 운전할 줄 모르거든요.”
“그랬구나. 교수님은 차가 사고 싶은 게 아니라, 함께 먹고 자고 하고 싶은 거네요.”
“하하 맞아요. 혹시 프렌즈 보셨어요?”
“아니요. 전 친구가 없어서.”
“푸하하하 드라마 말예요. 미드 프렌즈. 저는 거기 나오는 모니카처럼 친구들이랑 같이 사는 게 제 꿈 중 하나예요. 아니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재우고 먹이고 하는 거예요. 누군가를 보살피고 이런 게 막 하고 싶걸랑요.”
“그럼 게스트하우스 하심 되겠네.”
“노노. 그건 싫어요. 전 꼭 제 친구여야 해요. 가깝고 친밀한 사람들을 돌보고 싶어요.”
“어허, 그럼 먼저 교수님 친구가 되어야겠네요.”
친구 없는 마법사는 순간 가슴이 뻥 하고 뚫린 느낌이 들었다. 스타벅스 앞 호수처럼. 친구 없이 사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를 제집 삼고 여행자를 유혹하는 바다 요정과 슬픈 삐에로에게 안부를 묻는 여행자의 삶이, 사슴 교수의 내 집과 내 차에 대한 얘기를 듣자 심장이 없는 깡통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슴 교수는 나라에서 나라 없는 민족들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나라 빼앗긴 난민들의 삶을 연구하는 그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닐 것이다. 친밀한 이들에게 집을 내어주고 싶은 그 마음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떠난 차박 여행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집에 대해, 가족에 대해, 그리고 초청하고 돌보는 일에 대한 본능 같은 것 말이다. 그는 그런 열망이 솟구칠 때면 머리의 뿔이 쑥쑥 자라난다고 했다. 마법사는 아까 시장통에서 본 사슴뿔이 그의 것이었나 생각이 들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녹용으로 달여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슴뿔이 심장에 좋다는데..’
“나라에서 나라 잃은 친구들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 참 특이하네요. 사슴 학생들은 잘 받아들이나요?”
“사슴 학생들은 관심이 없어요. 여기는 나라잖아요. 이들은 자기 나라에 살고 있으니 나라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죠.”
“자신들은 남의 나라를 빼앗기도 했었잖아요.”
“마법사님 나라가 대체 뭘까요? 저는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류에 대해 가르쳐요. 집을 잃은 인류에 대해. 세상을 떠돌아다녀야 할 운명들에 대해.”
마법사는 사슴 교수의 말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나라는 무얼까? 국경일까? 민족일까? 언어일까? 문화일까? 그럼 가족은? 친구는? 집은? 자동차는?’
“교수님, 자동차는 뭘까요? 집 같은 자동차 말예요.”
마법사가 묻자, 사슴 교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는 머리를 높이 들어 뿔을 달에 걸치고서는 마법사에게 되물었다.
“마법사님 차에서 노래 불러 보셨어요?”
“아, 그거 장난 아니죠. 저는 핸들 잡고 춤출 때도 있어요.”
“맞아요 맞아요. 그게 집이고 자동차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전 집을 마련했고 이제 자동차를 가지고 싶어요. 지므니! 지므니 말예요! 전 친구가 아주 많거든요. 그런데 왜 다들 안 자고 가는 거야!”
사슴 교수는 기껏 마련한 집에 친구들이 오래 묵지 않고 금방 가버린다고 불평을 했다. 마법사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들은 나라에 살지 않으니까. 떠나고 돌아오는 여행자에겐 국적도 국경도 없으니까. 자동차는 집이 아니니까.
사슴 교수는 달에 걸린 뿔을 빼내서는 밤하늘에 한명 한명 친구들의 이름을 새겼다. 이내 산에서 잔잔한 밤바람이 불어오자 검은 밤하늘에 새겨진 이름들이 빨랫줄에 내걸린 빨래들처럼 펄럭였다. 그러자 사슴 교수는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그런 사슴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교수님, 저는 집을 잃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쫓겨나 자동차에서 노숙을 해야 했던 세월이 있었어요. 그리고 친구들을 잃었죠. 친구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며 집을 버렸어요. 나라 없는 집과 친구 없는 자동차는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집에서 쫓겨 나오며 그곳에 심장을 두고 왔어요. 이제 저는 집도 자동차도 없답니다. 접이식 백마가 있을 뿐이죠. 고이 접어 비행기에 실었어요. 글을 쓰고 유랑을 하려구요. 그게 제 노래예요. 자동차에서 혼자 눈물을 쏟으며 부르던 그 노래.’
그러자 심장이 비어버린 마법사의 가슴에서 이제 자신을 위해 자동차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혼자만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백마를 싣고 타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작은 지므니를 타고, 좀처럼 멈춰지지 않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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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