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왕의 사랑
“건강과 사랑과 학문 중에 무얼 선택하시겠습니까?”
“세 개 다 선택하면 안 됩니까?”
“그게 욕심부리면 운이 더 안 좋아진다는 얘기가..”
“그렇군요. 그런데 세 가지 소원 중에 성공과 부가 없는 게 재미있네요.”
“이게 오래된 전설이라. 당시의 성공은 학문이었겠지요.”
“학문을 세우는 게 성공이었던 시절에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학문은 할 만큼 했으니, 건강과 사랑을 선택해야겠군요.”
마법사는 건강과 사랑을 선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구백살을 넘어섰으니,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거의 천년을 버텼으니 장기들도 지칠 때가 되지 않았겠는가. 건강을 최우선에 두어야 할 것이 자명한데, 사랑은 또 무엇인가?
“구백살에도 사랑을 생각하시니 마법사님은 여전히 청춘이시군요.”
여우 공작이 마법사의 선택을 살짝 비꼬며 말했다. 삼백년 동정으로 이룬 마법사가 여전히 사랑을 추구하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대야 둔갑을 해서라도 언제나 사랑을 쟁취해 오지 않았소. 그러나 동정의 마법사야 언제나 갈급하지요.”
“그게 말이 좋아 사랑이지, 오죽하면 둔갑을 하겠습니까?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해 주면 좋으려만 꼬리 아홉 개 달린 게 무슨 죄라고, 꼭 인간이어야 사랑이 가능하니 말입니다. 결국은 정체를 들키고 사라져야 하는 신세가 돼 버리고 마니.”
“사랑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것 아니겠소. 헤어짐이 있으니 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고. 듣기론, 공작께선 새 사랑에 중독되어 계시다 들었는데 그게 꼭 좋지만은 않은가 보오?”
“지쳤지요. 매번 새로 시작하는 일이 달콤해 봐야 얼마나 달콤하겠습니까? 어차피 유전자의 속임인 것을. 항상 같은 식이지요. 반하고, 둔갑하고, 고백하고, 정체가 드러나고, 도망치고.. 반복하면 뭐든 지겨운 법.”
“참 복에 겹소. 그게 동정보다야 훨 낫지 않소? 뭔가 계속 관계가 이어지니 말이오.”
“그게.. 꼭 그렇지마는 안 터이다.”
여우 공작은 고개를 저으며 마법사를 앞서갔다. 그리고 세 갈래 물줄기가 떨어지는 음수대 좌우로 길게 늘어선 행렬 맨 뒤에 섰다. 맑은 물이 흐른다는 뜻을 가진 이 사원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사원 위 폭포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면 운이 좋아진다고. 물줄기는 사원 끝자락에서 세 갈래로 나누어져 떨어져 내리는데, 각각 건강, 사랑, 학문을 상징한단다. 전설에 의하면 무엇이든 2개만 마셔야 소원이 이루어지고, 3개를 다 마시면 오히려 운이 나빠진다는데. 사시사철 개운開運하려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이 사원의 음수대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마법사는 사원에 볼일이 없었는데, 교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우 공작이 요즘 사랑 운이 딸린다며 잡아끈 것이다. 여우 공작은 마법사에게 자주 자기 연인들의 험담을 늘어놓곤 했는데 마법사는 그게 아주 못마땅했다. 마법사의 처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면서, 험담을 가장한 연애질 타령으로 끝없이 신세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우 공작의 한탄이 꼴사나웠기 때문이다.
물을 받아 마시려 길게 늘어선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르고 있는데, 마침 여우 공작의 옆줄에 선 관광객이 (그가 여우인 줄 모르고) 다들 여기 줄을 왜 서는 거냐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여우 공작은 헤픈 미소로 실실거리며 나란히 서서 물을 마신 이와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농을 던졌다. 그러자 관광객은 여우에게라도 홀린 듯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여우 공작은 이를 놓칠세라 현란한 혀 놀림으로 작업질을 해대는데, 공작질에 홀라당 넘어간 관광객의 눈에서는 어느새 핑크빛 하트가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관광객은 자기 차례가 되었는데도 물을 마시지 않고 뒷사람을 앞으로 보내며 줄을 흐트러뜨렸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마법사와 여우 공작 그리고 관광객이 나란히 서게 되었다.
“이보게 공작 나리, 이번엔 나에게 양보 좀 하지. 나도 전설의 힘을 빌려 사랑 좀 해봅시다.”
“마법사님, 둔갑할 수 있습니까?”
“아, 내가 여우가 아닌데 어떻게 둔갑을 합니까? 답답해서 가면도 못 쓰는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마법사님이 사랑을 못 하는 겁니다. 사랑은 둔갑으로부터 시작하는 거라니까요. 자~ 제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셔요.”
여우 공작은 기다란 물 주걱을 뽑아서는 부끄러운 눈빛으로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관광객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물 주걱에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공작이 물 주걱을 꽃다발로 둔갑시킨 것이다. 벚꽃이 가득한 꽃다발 물 주걱을 받아 든 관광객은 순간 낭만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러고는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다 못해, 붉은 피가 혈관을 뚫고 나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여우 공작은 아까워라며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관광객의 얼굴을 혀로 낼름낼름 핥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렇게 아까운 피를”
관광객은 이미 여우 공작에게 단단히 홀려 자신의 피를 빨리는지도 모르고 여우 공작의 낼름 거리는 혀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공작의 할짝이는 혓소리는 밀어로 둔갑하여 관광객의 귀에 달콤한 사랑 고백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저런, 저 여우 같은 놈이 인간의 피를 홀짝거리고 있네. 왜 다들 저 여우 노름에 좋아 어쩔 줄을 모르지. 피 빨리는지도 모르고.’
마법사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여우 공작의 둔갑술은 매우 강력하여, 이를 지켜보던 주변 관광객들의 눈에는 수트를 쫙 빼입은 잘생긴 신사가 친절하게 관광객의 땀을 닦아 주는 모습처럼 보였다. 여우 공작의 둔갑술에 모두 홀려 버린 것이다.
마법사는 여우 공작의 공작질에 한소리를 할까 하다가, 남 일에 간섭할 수도 없고, 흘러내리는 피야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생겨난다는 여우 공작의 평소 지론을 떠올리며, 당하고 있는 관광객도 다 좋아서 저러는 건데 걍 냅두지 뭐 하는 생각이 들어, 내 몸이나 챙겨야겠다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 자신의 물 주걱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건강하게 해주시고”
첫 번째 소원을 빈 마법사는 물 주걱에 조심스럽게 입을 대고는 혀를 축였다. 그러자 갑자기 심장이 박카스를 뿜어내듯 온몸에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뭐야 이거! 효과 있네. 이래서 이 공작 놈이 맨날 여기를 그렇게 뻔질나게 오는구만. 오호라, 그럼 이번엔…’
“사랑하게 해주시고”
두 번째 물줄길에서 물을 받아 마시자, 마법사의 눈이 갑자기 밝아지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관광객들이었는데, 마치 세상의 모든 선남선녀들이 다 모인 듯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 이거 눈이 문제였구나. 내 눈이 문제였어.’
마법사는 그간 눈이 사랑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우 공작의 둔갑술이란 상대의 눈을 밝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야, 이런 거였어? 이런 거라면 사랑 얼마든지 하지. 자자 드루와! 드루와!”
잔뜩 흥분한 마법사는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렜다. 아무라도 붙들고 키스 세례를 퍼붓고 싶어졌다. 마구 되살아나는 연애 세포의 활동력에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연애 세포가 마구 활력을 뿜어내는 것은 좋은데 그 정도가 너무 급격히 상승하는 것 아닌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이 가빠오고, 흥분이 도를 넘쳐 온몸이 불에 댄 듯 뜨거워졌다. 그러고는 목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물을 마셨는데 오히려 갈증이 시작된 것이다. 갈증이 점점 심해지자, 마법사는 아예 물줄기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고 온몸에 열이 올라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마법사는 덜컥 겁이 나서 여전히 관광객의 뺨을 핥고 있는 여우 공작에게 SOS를 쳤다.
“여봐요 공작 나리, 나 이거 어떡해. 큰일이네. 목이 타들어 갈 것 같다고. 아니 왜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더 나는 거지?”
“에헤 이 양반, 말년에 사랑에 불타 돌아가시겠네. 그러게, 들어올 때 경고판 못 보셨어요? 손으로 목만 축이라고 적혀 있었잖아요. 과용하면 심장발작으로 죽을 수도 있어요. 사랑이 뭐 그런 거지만. 마셔도 마셔도 목마른.”
여우 공작은 관광객의 뺨을 핥다 말고, 열이 올라 어쩔 줄을 모르는 마법사에게 한심하다듯 말했다. 마법사는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좀처럼 내릴 줄 모르고 화끈거리는 몸 상태에 당황해했다.
“아 큰일이네. 이를 어쩌지. 아니 무슨 방법이 없소? 이러다 장기가 다 타버릴 것 같단 말이오. 아니 사랑은 해보지도 못하고 불타 죽겠네.”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뭐요? 그게 대체. 어서 빨리 말해 보시오.”
“그게 남은 세 번째 물을 마저 드시면 되긴 하죠.”
“학문의 물줄기 말이오?”
“네. 그럼 정신이 확 들면서 이성이 돌아오고 몸이 다시 차가워지실 거예요.”
“아니, 그럼 운이 안좋아진다 하지 않았소? 세 가지 물을 다 마시면 오히려 운이 나빠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기껏 건강과 사랑을 얻나 싶었는데 다시 불운해지란 말이오?”
“그게 다 욕심부린 마법사님 탓이지요. 어서 냉수 한 잔 더 드시고 정신 차리시는 게 나을 겁니다. 몸이 다 타 버리기 전에.”
“아니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소?”
“하나가 더 있긴 합니다만, 저기 사원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우 공작은 음수대 위로 높이 솟은 사원을 가리켰다. 사원은 비탈면에 목조구조의 지지대를 한참 쌓아 올려 그 위에 바닥을 깔고 앉아 도시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뭐요? 나보고 지금 떨어져 내려 죽으란 말이오?”
“저게 저렇게 높아 보여도 추락 시 생존 확률이 80%라는 통계가 있어요.”
“생존 확률이 80%라니, 아니 누가 저기서 뛰어내려 봤단 말이오?”
“사랑에 미친 이들이죠. 그들이 저기서 사랑을 외치며 뛰어내리고 그런답니다. 그러니까 통계가 나오지 않았겠어요.”
“아니 뭣 땜에 목숨 걸고 그 짓을 한단 말이오. 대체 사랑이 뭔데?”
“그니까 마법사님이 사랑을 못 하는 겁니다. 사랑이 다 그런 거지요. 불에 타죽거나 추락해 죽거나. 목숨을 걸게 만드는 뜨거운, 그런 것이지요.”
마법사는 혼돈에 휩싸였다. 기껏 얻은 기회를 날려 버린 자신이 한스럽기도 하고, 모름지기 사랑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태우거나,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자신을 내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여우 공작의 말이 도대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경고를 어기고 사랑의 샘물을 과복용한 이들이 사랑에 미쳐버려 사원 위에서 떨어져 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람이 그들을 식혀 준다고.
마법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건강과 사랑을 포기하고 남은 세 번째 냉수를 마시고 속을 차리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을 얻기 위해 생존 확률 80%의 사원 꼭대기에서 몸을 내던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하하하 생존 확률 80%라니까요! 사망확률이 아니고 생.존.확.률!”
여우 공작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번민에 휩싸인 마법사에게 상기시켰다. 사망 확률이 아닌 생존 확률. 그래도 죽을 확률이 20%는 된다는 얘긴데, 다칠 확률은 거의 100%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변 관광객들이 서로 수군대며 확률을 논했다. 누군가는 치명적이라 하고, 누군가는 그 정도면 감수할 만하다며, 요즘 사람들은 대체 사랑을 흥정거리로만 여기는 것이 큰일이라고 걱정을 해댔다.
앗! 바로 그때 사원 꼭대기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 마법사가 뛰어내린 것일까? 누구인가? 사랑을 외치며 뛰어내린 이는 누구인가? 뛰어내린 누군가는 공중에서 아홉 바퀴를 회전하더니 마치 담장에서 뛰어내린 고양이가 착지하듯 부드러운 몸짓으로 가뿐하게 땅에 떨어져 가볍게 한 바퀴를 구르고는 벌떡 일어섰다.
“아니, 당신은 공작왕!”
놀란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여우 공작은 떨어져 내린 이가 마법사가 아닌 공작왕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그의 앞으로 달려가 몸을 굽히며 절을 하였다.
“폐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폐하이신지도 몰라보고.”
“오랜만이요. 공작 나리. 우리 가문의 연애 사업은 잘되고 있지요?”
“네 물론입니다. 폐하의 하례와 같은 돌보심으로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아니 어쩌다 마법사로 둔갑까지 하시고서..”
그렇다. 마법사는 공작왕이 둔갑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올해로 삼천살이 되지 않았소. 기력이야 뭐, 허약한 마법사 양반과 달리 우리 공작 계열들이 원체 타고난 터라 문제가 없는데. 갱년기인지 이놈의 매너리즘이 좀처럼 가시질 않아서 말이오. 이게 대체 사랑이 재미가 없단 말이지. 아, 그렇지 않소? 공작 나리. 이게 맨날 사람들이 뻑뻑 사랑에 빠져대니, 이게 사랑을 하는 건지 소일을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간단 말이오. 목이 막 타들어 가고, 자신을 막 내던지고, 뭐 이런 프레시한 기분이 좀처럼 생겨나질 않는다 이 말이지.”
“아.. 그래서 동정의 마법사로”
“그러니까 말이오. 마침 마법사 양반이 근처 나라에 방문하셨다기에 내 잠깐 만나, 둔갑을 해도 되겠냐고 부탁을 했지. 그랬더니 흔쾌히 그러시라며 발톱을 깎아 주시더군. 덕분에 동정 체험 제대로 했소. 사랑이 뭔지, 타는 듯한 목마름이 뭔지 다시 경험도 하고. 그러니까 이 맛이지. 사랑이란 게, 내던진다는 게 말이오.”
공작왕은 동정의 마법사로 둔갑하여 결핍을 경험했다. 그리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희열을 다시 체험했다. 그 경험은 사랑을 얻기 위해 끝없이 둔갑하고 들켜서 도망치고, 다시 시도하고 시도하다 꼬리가 아홉 개까지 늘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던 그의 청춘의 재현이었다. 나이가 들어 연륜이 생기고 방법이 늘어나면, 여우 공작처럼 어쭙잖은 기술로 사람들을 홀리는 것이 쉬워지지만, 참된 사랑이란 결핍과 충족을 있는 그대로 흠뻑 만끽하는 것이 아닌가. 매너리즘에 빠진 삼천살 먹은 공작왕은 비로소 자신의 진짜 결핍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소망하는 마음 말이다. 없어서 갈구하는 그런 가난한 마음 말이다.
“공작나리는 아직 모를 겁니다. 지금은 한참 재미볼 때니 열심히 하시고, 내 나이가 되거든 다시 여기로 와서 절벽에서 자신을 내던질 만큼 강력한 무엇을 꼭 찾으시오. 아님 그냥 인생이 그냥 무의미해지는 거요.”
공작왕은 회춘이라도 한 듯 잔뜩 부풀어 오른 가슴을 내밀고는 아홉 개의 꼬리를 마치 공작이 깃털을 펼치듯 활짝 세워 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사원의 꼭대기까지 뛰어오르더니 재단을 밝히는 횃불에 꼬리를 담가 불을 붙였다. 그러자 아홉 개 꼬리의 바싹 마른 털들이 화르륵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화염에 불타오르자 공작왕은 하늘을 향해 크게 한 번 울부짖고는 다시 한번 사원 위 절벽에서 뭄을 내던졌다. 그러자 큰 포효와 함께 공작왕의 불붙은 털이 폭죽으로 둔갑하여 펑펑 터지고는 하늘 위에서 반짝이며 부서져 내렸다. 다 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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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