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반대말

by M.멀린

[멀린’s 100] Aug 05. 2022 l M.멀린

누군가, 자신은 살면서 한 번도 배신을 당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난 왜 이렇게 배신을 많이 당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사주를 보아주던 역술가가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며 몇 살에 배신수가 있고, 몇 살에 배신수가 있고, 몇 살에 배신수가 있고, 몇 살에 배신 수가, 배신, 배신, 배신.. 그리고 사주는 과학이었다.

배신이라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몸을 돌리는 행위이다. 마주 보고 있다, 같은 곳을 보고 있다 몸을 돌리는 거다. 뒤돌아서고 등을 돌리는 일이다. 그게 뭐라고. 나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는데. 그게 내 마음이었다. 그래서 배신. 그러라지. 나는 그저 나아가고 있을 뿐이야 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배신, 씁쓸하긴 해도 상처가 되진 않았다. 모른다. 상처를 외면하고 있는지도. 오히려 힘들었던 건 반복이었다.

배신도 경험이고 삶을 사람을 알아가는 방식이니 것도 좋다. 나는 나날이 이해와 경험의 폭을 넓혀가는 중일 테니. 그러나 반복은 짜증이 난다. 배우는 건 한두 번이면 되지 않나. 뭐 좋다고 반복을 하고 있어. 왜 그랬을까? 그런데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 나의 배신의 역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서 그런 거야.”

앗!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사랑이라고? 그게 사랑이라고? 그런가 보다. 생각해보니 배신의 반대말은 사랑이었다. 그래서 ‘사랑과 배신’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 참 많이도 사랑했네.

사랑이 아니면, 계약이고 거래였다면. 배신, 그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겠지. 그러니 계약서에 도장도 찍고 공증도 받는 거지. 그러나 사랑이면 무방비다. 몸은 노출되어 있고, 언제든 칼이 꽂혀도 이상할 게 없는 무방비 관계. 그런 채로 누구와 마주한다는 것, 나란히 한다는 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리석거나. 아니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것을 반복하진 않는다. 배신은 아프니까.

고통에 중독되어 이 짓을 반복해온 걸까? 아니야. 사랑했기 때문이야. 나는 고통을 잘 견디긴 해도 반복은 세상 지루하니까. 세상 끔찍하니까. 배신보다 더 싫은 건 반복 일수도. 그러나 사랑 역시 반복이다. 그러니 배신도 반복이었던 거다. 사랑하니까 배신당하는 거고. 그건 사랑의 증표이고. 그러니 자랑스럽.. 그건 잘 모르겠다. 누군가 들은 배신의 역사를 자랑처럼 내세우거나 자기 홍보용, 그러니까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증거로 삼기도 하는데. 그건 좀 못났다고 생각해서, 나는 나의 배신의 역사를 잘 말하지 않는다. 물론 배신이라 여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성장의 아픈 역사일 뿐이라고.

그러나 그게 사랑의 결과라면 자랑 좀 해도 되지 않을까? ‘나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했어.’라고. 아하, 어쩌다 마법사는 사랑꾼이 되었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이 사랑이라고 마법사는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건 디폴트 값으로 마법사의 관계 방식에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다 보니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받쳐주질 못한다는 걸. 사랑도 건강할 때 더 잘한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배신의 수량과 수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미숙했던 탓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배신 앞에 성숙과 미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등 돌려 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위대한 사랑일수록 더 거대한 배신의 값을 치르게 되는 게 아닌가? 브루투스 너마저. 그러니 배신은 오히려 강화되고 증폭되어야 하는 걸까? 나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아니다. 사랑을 증명해 뭣하나. 내가 사랑하면 된 거지. 그러나 한 번 더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랑할 것들이, 사랑할 이들이 넘쳐났다는 얘기. 끊임없이 당한 배신은 끊임없는 사랑을 말하는 거겠지. 그게 세월이 가니 또 보인다. 가리다 보니 배신도 사라졌지만, 사리다 보니 사랑도 사라져가는 듯하니.

세상에 공짜가 없으니, 사랑의 대가는 사랑이 아니라 배신이겠네. 대가는 잃는 것이니. 영원한 사랑이 없고 영원한 관계가 없으니 사람은 사랑을 위해 매일매일 값을 치르며 살아야 한다. 먹으면 싸야 하는 것처럼. 그러니 나의 사랑은 매번 배신을 낳을 것이다. 값을 치르지 않은 사랑은 이자에 연체료를 더해 더 큰 배신으로 청구될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감당해야지. 사랑은 하는 것이니까.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아닌 ‘하는’ 것이니까. ‘하는’ 사랑의 과정과 순간을 기쁘게 누리고 즐기며 행복하지 않았던가. 결말이야 배신이어도. 드라마가 다 그런 것처럼.

돌아보니, 순간들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행복했구나. 그 들뜬 마음과 넘치는 기상들, 순간뿐이었더라도 강력하게 서로를 지지했던 그 어깨들. 터질 듯했던 가슴들, 마음들, 심장들. 그것의 값으로 ‘배신’을 치르라고? 얼마든지! 마라도나가 태클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슈퍼스타가 악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등 돌리는 너를, 칼을 꽂는 너를 안아줄 수는 없다. 집착하며 끌어안고 더 큰 사랑으로 품어봐야 치러야 할 대가의 크기만 키울 테니. 미안하다. 나는 예수가 아니다. 떠나기로 먹은 마음 고이 보내드리는 일은 우리의 관계를 ‘배신’으로 남기는 일이다. 그게 내 사랑에 대한 예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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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s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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