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의 징검다리
[25日] Sep 13, 2021

프랑스에 도착한 20세기 소년은 백신을 맞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당황스런 소식을 전했다. EU국가들은 외국인에게 백신을 접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프랑스에서 백신을 맞으려던 20세기소년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뉴욕에라도 날아갔다 와야 하려나.
이쯤이다. 이런 시점에 많은 사람은 후회를 한다. ‘그것 봐, 여기 괜히 왔어. 그냥 살던 대로 살걸’ 하고 말이다. 물론 20세기소년은 프랑스에 백신을 맞으러 간게 아니다. 사랑을 찾아, 꿈을 이루기 위해, 운명을 살기 위해 떠나는 길에 당연히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의지는 어디로부터 나올까?
프랑스에서는 음식점이나 상점에 들어가려면 백신 접종완료를 증명하는 보건 패스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게 싫으면 3일마다 한 번씩 코를 찌르고 음성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코를 찌르는 것도 그렇지만 그게 유료라 매번 검사를 받을 때마다 25유로, 한국 돈 3만 5천원을 내야 한다니 그게 한 달이면 도대체 비용이 얼만가? 프랑스까지 가서 공원만 배회하다 올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에 사람들은 방법을 찾기보다 후회부터 집어 든다. ‘그러게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오고 싶지 않더라니.’ 왜 갔을까? 가고 싶지 않을 길은 가지 말아야지. 왜 가고 후회하는 걸까? 그런 이들을 참으로 많이도 떠나보냈다. 가기 싫은 사람은 돌아가야지. 가도 된다. 후회하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 법이다. 덤터기를 씌우고 싶을 테니.
마법사는 틀린 길을 자주 간다. 직감에, 직관에, 이 길이 아니다 싶을 때도 이미 선택한 길이면 돌아 나오지 않고 끝까지 가 버릇 했다. 그리고 확인한다. 역시 틀린 길이었어. 누가 마법사에게 어떻게 직관어를 익혔냐고 물으면 8할이 틀린 길을 끝까지 간 끝에 배우게 되었다고 답을 하곤 한다. 틀린 길을 끝까지 가는 것. 막다른 길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 그러나 내 선택을 끝까지 존중하는 것은 매우 확실한 훈련의 방법이다. 매번 역시 직관이 맞았다는 걸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알게 되는 것은 어떤 틀린 길도 틀린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끝까지 간다면 말이다. 그것에는 마법의 중요한 법칙 중 하나인 투스텝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10년 전쯤, 오스트리아의 스왈로브스키 뮤지엄에서 이상한 다리를 건넌 적이 있다. 다리의 이름은 ‘직관의 징검다리’. 바닥에 스크린이 깔려 있고 스크린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면 스크린 속 강물 위를 걸어가야 하는데 발걸음을 떼서 강물 위 어딘가를 디디면 바위가 하나씩 생겨나 징검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매 걸음마다 생겨났다 발을 떼면 사라졌다. 직관을 따라 내가 디딘 곳에 징검다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매우 인상적이었던 이 다리를 건너며 매번 막막한 걸음, 불확실한 선택의 뒤에 예상치 못했던 해결책, 방법들을 만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건 여전히 그렇다.
직관을 따른다는 건 매번 ‘직관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 같아서 눈으로 보고 미리 가늠해 보는 것으로는 도대체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이 태반이다. 그러나 해결책은, 실마리는, 언제나 투스텝에 있다. 첫걸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그 첫걸음을 내디딘 뒤에야 다음의 길이,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징검다리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건 경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다. 발을 디디기 전에는 그걸 말해줘도 알 수가 없다. 때로는 머리끄덩이를 잡고 강제로 집어 던져도 보지만, 제 발로 걸어보지 않으면 투스텝을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20세기소년에게서 일단 병원으로 쳐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왔다. 그리고 쳐들어간 20세기소년은 어이없게도 여권만 내미니 외국인도 무료로 백신을 접종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였을까? 어디로부터였을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정보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이었을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 틀린 길을 확인할 때까지 틀린 길이 아니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기까지 어떤 길도 막다른 길이 아니다. 심지어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 뚫어내는 사람도 있다.
20세기소년은 진격 중이니 쳐들어가는 일은 당연하다. 머뭇거리며 근심을 쌓는 일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가 자랑스럽다. 막다른 길일 거라며 두려움 속으로 떠나간 모든 이들이 남기고 간 아쉬움을 매번 해소해 주니 말이다.
마법사의 삶에는 가보지 못한 어떤 이들의 투스텝이 산처럼 쌓여 있다. 때로는 저 혼자 투스텝을 살아내고 주인과 상관없이 자신의 결과물을 증명해내는 운명도 있다. 다른 주인을 만나. 매번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마법사를 외롭게 한다. 함께 시작했으나 후회 속에 떠나간 이들 대신 막다른 길을 혼자 마주하는 마음, 틀린 길의 낭패감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 왔던 시간, 그러나 여지없이 징검다리를 열어 보이는 우주의 환희에 혼자 썩소를 짓던 순간들은 모두 마법사의 외로움이고 쓸쓸함이다. 함께 나눌 이 없는 기쁨과 시공간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낙망하지 않고 쳐들어가 준 20세기소년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거짓 정보에 놀아나지 않은 그의 꿋꿋함에 경의를 표한다. 덕분에 돌아서 후회하던 모든 평행우주 속 쫄보들의 낯짝을 부끄럽게 할 수 있었다. 마법사의 마음은 여전히 외롭지만 말이다.
손님이 없어 허망해하는 우리에게 20세기소년은 자주 말한다. 펍의 시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그건 그대에게도 그렇다. 무엇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는 여지없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순간에 손님이 찾아온다. ‘아직 끝난 건 아니죠?’ 하고 말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오늘도 기다린다. 아직 마법사의 인생이 끝난 게 아니니까. 외로운 밤을 지새우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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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