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저주받은 마르세유

[MUSIC 100] Nov 04. 2023 l M.멀린

마르세유는 매번 스킵하게 된다. 내리지 않고 지나치는 거지. 치안도 좋지 않고 이동 거리도 멀고 오늘은 날씨도 좋지 않다.

어제는 바다에 폭풍이 몰아쳤다. 당국은 적어도 자신들이 아는 한 2세기만의 폭풍이었다고 한다. 2세기만이라니, 잔잔하기 그지없는 지중해에 폭풍이 웬 말인가? 배가 꿀렁이더니 자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걱정마라, 2세기만이란다.

그러고 일어나니 마르세유다. 소매치기가 대표 관광상품인 이 도시에, 최근에는 빈대가 창궐해 휴교령까지 내렸단다. 풍요의 상징인 지중해 도시에 이게 웬 말인가? 우리는 전혀 다른 우주에 들어서고 있다.

그런 공간을 만나면 스킵하게 된다. 몰아치는 폭풍은 뚫고 견뎌도 빈대와 소매치기 그리고 추적이는 비는 싫다. 차라리 정면으로 몰아쳐라. 그깟 거는 온몸이 부서지는 쾌감이라도 주지. 숨었다 잠들 때만 나타나서 비겁하게 흡혈하는 네 것들은 그냥 스킵.

파리에서는 무리들이 마법사의 지갑을 소매치기하려다 허탕을 쳤다. 뭘 물어보길래 순간 머릿속으로 ‘이 새끼가’ 바로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손도 마법사의 지갑을 스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가져가지는 못했다. 타이밍의 마법사는 지켜야 할 타이밍도 놓치지 않는 법. 매번 하던 시건장치를 그날따라 하기 귀찮았는데, 마법사는 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안 했으면 모를까. 방심하는 하루를 놈들은 정확히 안다는 걸. 세상은 타이밍 싸움이니.

단단한 시건장치 때문에 채가지 못한 지갑에서 내용물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빠르긴 하다 그새 지퍼까지 열었으니. 그래봐야, 한도가 거의 바닥난 신용카드 한 장이랑 잔고라기엔 부끄러운 현금카드 한 장이 전부다. 그리고 비상시에 하루 숙박이 가능한 정도의 현금은, 놈들이 노리는 현금은, 잡아빼기도 힘들게 깊숙이 박혀 있었으니, 놈들은 있는 줄도 몰랐겠지. 상황을 수습하고 일어서자 닫히는 도어 너머로 무리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마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탕이 아쉬우냐? 마법사는 그대로 발을 들어 올려 태권도 발차기를 시전해 보이며 깔깔깔 웃어주고 싶었다. 나는야 대한민국의 마법사.

이번에도 놈들은 헤집어 놓은 채 가져가지 못했다.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매번 헤집어 놓기만 하는 놈들은 앞으로 이단옆차기를 날려줄 테다. 얼씬도 못 하게. 그래서 마르세유는 얼씬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고장이 비누가 유명한 건 손이 더러워서일 테다.

이제는 스킵하고 싶다. 이제는 스킵할 거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따위는 지워버려야지. 지저분한 손놀림이 지겨우니까. 관대한 마법사를 시험하는 자존감 낮은 빈대들은 마르세유에 몰아넣고, DDT로 숙성한 고린내 나는 치즈 비누로 2세기 동안 매일같이 폭풍샤워를 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저주의 비닐봉다리로 꽁꽁 묶어놓아야지. 그리고 나는 편안한 썬베드에 누워 비 내리는 마르세유를 바라보며 조롱할 거다. 나는 안 내렸지롱.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위즈덤 레이스 

 이전글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