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매우 중요한
어떤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저 길 위에 이정표이고 싶다.

도무지 해결할 방도가 없던 순간에,
답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정적 해결책도 아닌,
그러나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작은 이정표.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만큼
결정적 역할을 하기 보다,
더듬어 기억하지 않으면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수없이 지나친 이정표.

그러나 답답한 순간에는 잊지 않고
나타나 길을 가리켜 보이던,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면 이내 잊어버릴,
그런 길 위에 이정표이고 싶다.

그러나 조금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해 본 사람이라면,
잊을만하면 나타나던 나의 존재를 기억할 수 있으리라.

오늘도 주저앉을 만큼 힘이 든 고갯마루에서
아직도 더 가야 한다고
잔인하게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지만,
그 너머에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할
휴게소 또한 기다리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냉혹하면서도 따뜻한 이정표이고 싶다.

잊지 마시길
비록 늘 곁에 있지는 않지만
길이 끝나기까지
이정표는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을 자켜보고 있다는 것을

찾지 마시길,
부러 찾지 않아도
남은 길이 궁금해지면
여지없이 나타나 방향을 가리킬 것이며
계속 갈래? 돌아갈래? 물어댈 터이니

잔인해도 외면하지 말 것이며
구체적이지 않아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이정표는 아무도 걷지 않는 길에도 머물러 있고,
모두가 외면한 길에도 홀로 남아
평생 단 한번 만날 누군가를 위해
길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2008.09.04_ 彌矢嶺_ 빈센트]

 이전글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