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그게 서른 하고 아홉부터 할 수 있는 그것

[MOVIE 100] Mar 21. 2022 l M.멀린

 

서른 하고 아홉,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던 그때. 그게 낙심과 절망의 시작이라는 걸 다시 돌아가 말해주면 믿을까. 젊음과 기성의 마지막 경계선 같던 그때. 세상은 이미 힘을 다 써버렸노라고. 너는 여기까지 오는 데 기운을 다 소진해버렸노라고 선고를 내렸지. 그걸 아는 데만도 다시 십년이 필요했으니 생의 미련은 얼마나 끈질긴가.

 

서른 하고 아홉,

관계에도 자신이 넘치던 그때. 맺어진 것들은 영원할 것이기에 교정되고 수정되고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던 때. 그러나 관계는 교정도 수정도 변화도 되지 않고, 결국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고,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고. 인생은 제 자신과의 관계를 세워가는 데에도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그럼 나는 여기까지, 더 이상의 관계는 없다고 선언할 수밖에. 남은 건 찾아볼 수도 없으니. 내가 떠나보낸 것도,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서른 하고 아홉,

그래도 해오던 게 있다면 그게 일이든 관계든, 이제는 거기서 떠날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없으니 고통스럽게라도 받아들이고 나면 그건 다시 소중해지는 걸. 그게 아주 작고, 아주 희미하고, 아주 느슨한 무엇이더라도, 흔적이 남은 것만으로도 귀중하게 여겨지면 이제 너는 어느새 마흔 하고 아홉.

 

마흔 하고 아홉,

어릴 적엔 인생 다 산 어른처럼 느껴지던 그 나이에도. 여전히 길은 보이지 않고 방황은 끝이 없으니 이것도 죽는 날까지 여전하리라. 다만, 불혹의 십년을 거쳐온 누구라면. 이젠 뭘 해도 같고 뭘 하지 않았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되니. 흔들리는 것은 계절 따라 달라지는 마음과 시간에 대한 감각. 스물 하고 아홉에는 아무 감흥도 없던 그것. 그것에 빼앗기는 눈과 눈물.

 

서른 하고 아홉을 넘기며,

축이 난 몸은 차라리 그때 고꾸라져 다행이라고. 잊고 살지 않고 챙기며 살게 되어 다행이라고. 그래도 나의 젊음은 하얗게 불탔노라고, 새카맣게 소진했노라고 자부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서른 하고 아홉을 넘기며,

사라져 버린 관계는, 잊혀져 간 관계는, 인연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줘 다행이라고. 붙잡는다 한들, 내친다 한들 바람을 타고 펄럭이는 것들이 내 마음대로 나부끼는 게 아니니. 나는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흩날리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인연을 삼을 수밖에. 그리고 멀어져 가는 이들에게는 안녕을. 나는 살아남은 이들의 손을 꼬옥 붙들고 다시 마흔 하고 아홉을 지나, 아흔 하고 아홉을 향해 나아가리.

 

그리하여 아흔 하고 아홉에는,

누가 살아남았든 누가 영혼으로 남았든, 기억해 주는 누구와 기록으로 남은 무엇이 너와 나를 어떻게 남겨 놓을지, 그것을 산 눈으로 보든 전생의 기억으로 남기든 떳떳하고 미련이 없기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기를.

그게 서른 하고 아홉부터 할 수 있는 그것.

 

P.S.

재밌냐고? 감동적이냐고?
연기는 좋은데
드라마는 그냥 그래.
너의 서른, 아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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