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누가 슬픔에 대해 묻거든

[MOVIE 100] Mar 26. 2022 l M.멀린

“신께서 남자를 창조하고 누워 자는 등짝이 너무 슬퍼 보여 여자를 창조했대.”

“그래? 그럼 신은 아직 여자를 창조하지 않았나 보네.”

그런 대화를 나눌 것 같은 두 남자의 지독하게 슬픈 이야기.

 

잘 피해 가나 싶었는데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아프더라. 정말 아프더라. 근육통이 너무 심했다. 하루종일 몰매를 맞으면 이렇지 않을까. 목 아래 신체 감각에 무감한 편이라 간지럼도 잘 타지 않는데 얼마나 아픈지 신음소리를 주문처럼 외웠다. 아니 외쳤다. 누가 그러냐? 코로나가 감기라고.

군단이 지나가고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수면 패턴이 망가져 불면의 밤을 보내다 하필 이 영화를 봤다. 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음마저 너덜너덜 해져버린걸. 슬프다. 너무 슬프다. 영화가. 주인공의 삶이 나의 지난 시간에 포개져 더 슬펐다.

얼마 전 영화보다 울어 본 적 있냐는 질문에 꽤나 될 줄 알고 세어 봤는데 (감성파 마법사) 정작 기억나는 게 2편밖에 없었다. 것들도 슬퍼서 운 건 아니고. 그래서 아, 나 쫌 메말랐구나 싶었는데 몸이 무너져 운 건지, 영화가 그렇게 슬픈지, 아님 그렇게 힘들었는지. 툭 터져 나와 꺽꺽 울었다.

그게 영화 중간 어디 클라이맥스 머 이런 데서 터진 것도 아니고. 아니 이 영화는 얼마나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았는지, 이거 어디서 울어야 돼? 싶다가 끝나버린다. 그리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바다를 쭈욱 보여준다. 그게 도시 이름이야. 영국 맨체스터가 아니고 미국의 어느 소도시. 그 도시의 풍경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쭈욱 흘러가는데 버티던 눈물이 와락 쏟아진다. 아마 남들도 그랬을 듯. 영화 속 남자들은 평생 눌러놓고 살 듯한데 관객은 그들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더이상 눌러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영화 잘 만들었네. 흐흑.

누구나 그런 고통을.. 물론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슬픔은 아니겠지만, 살다 보면 예상할 수 없는, 자책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걸 무덤까지 묻고 가둔채 살아가는 게 인생이고. 딱딱하게 굳었다 그렁그렁해진 그것이 풀어져 나올 때는 영혼이 육체를 떠날때 이겠지. 그런 건 건드리면 안 되는데. 그런 게 건드려지면 툭 부러져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니까. 그래서 버텨내지 못하겠다고 용기있게 말해준 남자에게 고마웠다. 그래야지. 그런 건 버티는 게 아니야.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런 어른 남자의 결정을 이해하고 받아준 어린 남자에게도 미안하다 미안하다 대신 말을 전하고 싶었다. 너는 인기가 많잖아.

하지만 영화 속 여자들은 대부분 두 남자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슬픈 등짝을 훤히 내보이고는 있는 두 남자에게 여자들은 그저 사과를 내밀뿐이다. 슬픈 두 남자는 그 사과를 공놀이 삼아 던지고 받고 주고 받고 하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인생 영화에 올리게 되었지만, 코로나의 아픈 추억 때문에 잊을 수도 없게 되었지만, 코로나가 끝난다 해도 전쟁이 끝난다 해도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잊을 수 없는 기억에게서는 멀리멀리 떨어져 살아가야지. 버텨낼 수 없는 것에게는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지. 그리고 몸에 새긴 아픈 기억으로 단단히 마스크를 쓰고 배를 고치자. 두고 온 좋은 것들은 모두 바다에 있으니.

앞으로 누가 넌 어떻게 슬프니? 물으면
내 슬픔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고 답해야지.
닮았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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