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아서와 함께 행진

by mmerlin

[MOVIE 100] Oct 12. 2024 l M.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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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서에게 왕이 되어달라 말한 적이 없고 그 역시 영웅이 되려고 그랬던 게 아니야.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가 자신을 뚫고 나오면 누구라도 가슴에 품었던 총을 꺼내어.. 그리고 제정신이 돌아오면 쓸쓸해지는 거지. 조커는 사라졌으니까.

누구에게나 진짜 자신이 있어. 가면들에 파묻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더라도. 사랑받고 싶은 건 나이지 그림자가 아니야. 그런데 사람들이 그림자에 열광하면 나는 어떻게 하지? 도취되어 가면 놀이를 한바탕 했다지만, 그럴수록 나는 숨어들고 가면들이 나를 점점 장악해 가면 나는 어쩌지. 그럴 때, 그럴 때, 투사된 나는 대중과 한편이 되어 가면을 벗기는 거야. 용감한 키보드 워리어들과 함께 꺼져가는 나의 머리카락 끝을 잡아당기는 거지. 너를 잃지 말라고. 조커는 없어. 나는 아서 플렉이라고.

그러니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너는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가면이 벗겨진 진짜 나를 만나게 된 나는 어떤 산을 쌓게 될까?

도망치지 않는 마법사는 자신을 그대로 살려고 산으로, 산으로, 올랐어. 그리고 같은 산을 오르는 이들을 만났지. 그들은 아주 가끔 멀리서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주는 거야.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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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은 너를 유혹하지. 산을 쌓자고. 바벨탑처럼 높은 산을 쌓아 올리자고. 증오하는 적들이 쌓아 올린 산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우리들의 산을 쌓자고 너를 선동하지. 그러나 망상을 무너뜨린 용감한 아서, 나의 아서는 그런 조커는 없다고 선언했어. 그리고 노래를 불렀지. 귀를 잡아채는 달콤한 유혹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 주문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지. 망상을 상상으로 덮으며.

광대놀음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렇게라도 사랑받고픈 어떤 이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린 운 없는 조커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농담 같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영웅 놀이는 코믹스에게나 맡겨두자 말했어. 인간 아서 플렉은 피닉스처럼 살아가겠노라 떠나갔지. 나는 그를 배웅해 주었어.

산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오를 수 있는 산과 언덕은 충분해요.
건널 수 있는 바다와 강도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스크린 밖 사람들은 산을 쌓지 않았다고 혹평을 하지만, 가면을 벗은 그가 실망스럽다고 평점 테러를 가하지만. ‘리’가 말이야. 세상에 필요한 건 사랑뿐이라고 함께 노래해 주던 아서의 상상 속 ‘리’가, 여기저기 스크린 뒤 어둠 속에서 당신을 위해 눈물 흘렸다고 말해줄게. 나도 그랬으니까. 관객이 나 하나뿐이었던 영화관에서.

그리고 나는 모두가 최악이라지만 이제까지 본 뮤지컬 영화 중 최고였다고, 멸시와 추앙으로 얼룩진 아서의 귀에 대고, 나의 아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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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서 역시 내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마법사님 이 길이 맞아요,
우리가 선택한 이 길이 성인들이 걸어간 길이에요.

라고 말해주었어.

입꼬리가 올라가며 혈관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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