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에단
Jun 21. 2023 l Adana
에단은 올해 열다섯이 된 딸아이와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6년째 딸아이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마법사는 4년 동안 딸아이를 못 본 적이 있다고. 우울한 시간에 세상을 걷고 글을 썼다고. 그리고 마음이 회복되고 나니 관계도 회복이 되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그의 슬픔은 마법사의 그것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혼을 당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니까 가부장제가 아직 견뎌내고 있는 여기 튀르키예에서 그건 흔한 일이 아닌데, 그 시간이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간신히 버텨내고 있던 그의 삶에 지진이 찾아왔다. 집이 무너지고 금이 가는 진짜 지진.
그가 사는 동네는 나름 아다나의 강남, 서초라고 부를 수 있는 부촌이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이고. 아마도 재정적인 이유로 헤어지게 된 것은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번듯해 보이는 무엇도 지축을 흔드는 갈등이 오면 관계의 강도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건 얼마나 잘 쌓아 올렸는지, 관계의 골조를 무엇으로 구성하고 보강했는지 시험대에 오르는 것과 같다. 이번 지진에 여기 아다나는 직격탄을 맞았다.
시내에는 무너진 건물이 없는데 신도시 신흥부촌이 형성되고 있는 그가 사는 동네의 아파트들은 복불복을 실감케 했다. 어떤 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떤 동은 여기저기 금이 죽죽 가고 기둥이 쓰러졌다. 그러나 바로 곁에 있는 다른 동은 멀쩡하고 건재하다. 어떻게 아파트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데 어떤 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떤 동은 멀쩡할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나의 동에서 골조를 다 빼먹은 건가? 듣기로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으로 대거 신도시, 신축 개발이 이루어졌고, 그사이에 어디나 그렇듯 부정부패, 비리가 판을 쳐 아파트 골조를 빼다가 팔아먹어 버렸단다. 그래서 무너진 건물들은 오히려 신축이었다고.
공터가 아니다
우리는 새 아파트, 새 건물일수록 좋아라 하지만, 유럽의 건축물들은 100년이 기본이다. 시간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거다. 기술을 보장하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재앙이 몰려올 때 누가 지었는지, 어떻게 지었는지 만천하에 민낯을 드러내게 되는 거다. 관계 역시 그렇다. 우리는 어떤 관계인지, 어떻게 시간을 쌓아 올렸는지. 우리는 얼마나 취약한가? 우리의 관계는 얼마나 날림인가?
에단을 만난 날은 튀르키예의 아버지의 날이었다. 마법사에게 새로운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하던 뷰시라에게서 아침부터 톡이 왔다. “해피 아버지의 날 오빠!! 오늘 터키에서 아버지 날!” 이제 한국어를 배운 지 3개월 되었다는 뷰시라는 마법사를 ‘민호씨’라고 불렀다가 ‘오빠’라고 불렀다가 제 맘대로다. 마법사의 딸아이보다 겨우 2살이 많은데 그녀는 마법사를 집으로 초대하고서는 ‘많이 먹어라. 오빠 많이 먹어라’를 연신 읊어댔다. 한국말이 해보고 싶어 죽겠나 보다. 마법사는 점잖게 “많이 먹어라 아니고. 자, 따라 해 보렴. 많이 드세요. 드.세.요!” 그녀의 한국어를 교정해 준다.
뷰시라의 아버지 역시 4남매를 먹여 살리려 자동차로 9시간이나 떨어진 이스탄불에까지 가서 집을 고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 그것이 가부장이지. 그리고 그의 세 딸은 똘똘 뭉쳐서 가정을 세워가고 있다. K-뷰티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 낯선 손님에게 의상실을 하는 큰 언니의 샵 홍보를 얼마나 해대던지, 마법사는 쏟아지는 그녀들의 인스타에 ‘좋아요’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밥값은 해야 하니까.
에단의 슬픔에 하칸과 뷰시라의 가족들이 겹쳐 그가 더 안쓰러워 보였다. 산산이 부서진 한반도에서야 그의 슬픔이 그만의 슬픔이 아니고, 심지어 해방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는데. 가부장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바쁜 여기 튀르키예에서 그의 외로움은 더욱 짙어만 보였다.
그러나 부서져야 할 관계가 있다. 그래야 다시 세워 올릴 수 있다. 무너지지도 않고 어설프게 금이 간 아파트에는 주민들이 모두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지진에도 건재한 아파트는 오히려 집값을 새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위기와 환란 앞에서 너와 나의 관계는 ‘흔들림’을 어떻게 버텨낼까? 우리는 단단히 서로를 붙들고 있는가? 그런 관계가 그대에게 하나라도 이어져 있는가? 철근 하나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 건 아닌가? 열정에 속아 모래 위에 날림으로 관계를 쌓아 올린 건 아닌가? 건드려 볼까? 흔들어 볼까? 대지를 가르는 마법의 지팡이로 우리 사이의 관계를 내려쳐 봐도 되겠냔 말이다.
케말은 7년 전 자신이 사고 싶었던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 현장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했다.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 아파트에 살던 소중한 친구들이 모두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말도, 더 이상 그 동네에 돌아와 다시 살 수 없게 되었다. 무너져 내린 뒤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금이 가버렸다면 고쳐 쓸 수는 없는걸. 관계를 시험하는 지진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날이라고, 에단은 우리들 앞에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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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적 순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