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서울하늘
[MUSIC 100] May 15. 2022 l M.멀린

여행은 그 도시의 공기밀도와 하늘을 경험하러 가는 거라고. 하늘빛은 물론이고 공기의 색깔도 모두 다르니 어느 도시든 내리자마자 뺨을 스치는 첫 공기로 그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게 된다.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는 것은 낮은 위도 탓에 가까운 구름과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씨 탓이기도 한데, 포근하고 아늑한 공기에 파묻혀 선선한 바람과 춥지 않을 만큼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마시는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그만한 일상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가장 좋은 시간은 조식을 먹고 테라스에 앉아 광합성을 하는 시간이다. 출근하는 이들, 일상을 시작하는 이들 사이로 오늘 할 일,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여행자의 아침은 얼마나 호사스러운가. 사우디 왕자가 부럽지 않으니. 어제도 내일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뭔가를 읽는다. 문자중독자로서 채워야 할 것은 위장만이 아니다. 눈에 문자를 넣어주어야, 머리에 문자를 넣어주어야, 뇌가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니. 오늘의 일과, 심지어 인생의 경로를, 읽어 들인 문자들이 밝혀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때의 문자들은 얼마나 데시벨이 높은지. 명징하게 가슴에 와닿고 명쾌하게 머리에 박힌다. 근심은 사라지고 불안은 자취를 감추니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런 일상이 고국에서는 쉽게 찾아지지가 않는다. 언제부턴가 보행자를 위한 정책이라며 야외테이블을 금지시켜버린 뒤로는, 그러잖아도 벤치가 부족한 이 도시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아침 공기를 만끽할 공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것보다 더 큰 장애물은 미세먼지다. 뿌연 하늘, 답답한 먼지 구덩이 속에서는 근심은 밀려오고 불안은 증폭되기 마련이니까.
봄의 청명淸明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높은 하늘은 기억도 나지 않고 서울은 미세먼지의 도시라고 여긴 지가 오래되었는데, 모두가 마스크를 쓰게 되고 나서는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 청명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닥치고 하늘. 말소리도 줄고 탁탁 뱉어대던 가래침도, 발에 치이는 담배꽁초도 사라졌다. 인간이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자 청명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번 봄은 청명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봉쇄된 중국 인민들의 고통이 하늘을 열어 줄 줄이야. 청명을 돌려보내 줄 줄이야. 어느 도시의 하늘빛보다 맑은 고국의 봄 하늘은 언제 잃어버렸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맞이하고 보니 오래였구나. 너를 본 지가. 너를 느낀지가. 게다가 드디어 벗어버린 마스크는 폐 깊숙이 들이켜는 숨이 차갑고 생경할 정도. 채도가 한없이 높아진 바람에 눈뜨기가 힘들 정도로 시린 하늘이 눈물 날 정도로 반갑구나.
언제 또 이 하늘을 맞을까, 언제 또 이 공기를 만질까.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청명을 찾아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지 않을 수 있다면 봄의 방랑을 그만해도 될 텐데.
돈 많이 벌어 공기 좋은 도시로 여행을 떠나거나 이주를 하는 것과 돈 좀 없어도 여기, 내가 사는 이곳에서 청명 속에 살아가는 것. 어떤 것을 선택하겠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여기든 어디든 떠나든 머물든 언제나 청명을 선택하겠다고, 그건 삶의 전부라고 주저없이 고백할 수 있으리라.
하루만 더, 한 번만 더.
지나쳐 보낼 수 없는
봄날이, 하루가,
서울하늘이
매일같이 흘러가고 있다.
zip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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