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일의 숭고함
[21日] Aug 29, 2021

그것은 어렵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20세기소년의 친구 중에는 그런 친구가 있다. 그는 듣기로 10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집? 아니다 그가 어디를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모르니 고향이라고 해야겠다. 그의 고향은 이탈리아다. 그는 자신의 고국이 싫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그는 한국 여자를 좋아한다. 매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또 당했다고 한다지만, 그래도 한국 여자가 좋은 걸 어떡하겠느냐며 줄줄이 연애를 이어왔다고 한다.
20세기소년에 자주 들르는 그와 나는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영어가 서툴기도 하지만 그의 삶의 맥락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 중엔 어쨌든 인종적 어드밴티지, 살색의 어드밴티지, 언어의 어드밴티지를 자본 삼아 아시아를 전전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 부류 중 한 명이라는 생각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생겼다는 게 아닌가. 잘 버티더니 왜?
그는 버티고 또 버티는 중이었다. 여행 비자로, 코로나를 핑계 대며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국과 계속 쇼부를 쳐왔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이민국은 관대한가? 아니면 그의 실력이 뛰어난가? 아무튼 그는 코로나 발발 이후로 계속 비자를 연장해왔는데 더이상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근 1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땅으로부터 벗어나 졌다. 나는 20세기소년에게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다 갑자기 숭고해졌다. 그의 버텨내기가.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걸 꿈꾼다. 물론 그것에는 언제나, 최대치의 자본과 시간적 여유를 알맹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뜩 양념을 쳐대며 그리고는 그 잔뜩 덮인 양념을 핑계로 난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지레 포기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리고는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버텨낸다. 버티고 또 버티다 암에 걸려 죽는다. 스트레스를 받아. 그게 21세기의 일반이고 보편인데, 생각해보니 그의 삶은 그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버텨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원하는 한국에서 원하는 한국 여성과의 로맨스를 꿈꾸며. 나아가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하는 삶을 꿈꾸며. 그러면 누군가는 이민 비자를 받아내기 위한 편법이라고 의심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자신이 원하는 곳에 머물기 위해 너는 얼마나 노력했니? 그리고 적어도 한국 여성에 대한 그의 사랑만큼은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겠다. 자신을 노리개 삼아 얼마간 열정을 쏟아붓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단절하며 사라져 버리는 그의 지난 한국 연인들의 만행에 분개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래도 한국 여성이 너무 좋다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그의 마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그는 보통의 외국인들이 취하는 다양하고 열심 넘치는 정착방식을 모두 거부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단지 무위도식(?) 또는 빈둥빈둥 팔자 좋은 한량 흉내를 내며 한국 여성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대는 듯한 삶을 철저하게 고수해 왔다.
그러니 그는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 노력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근면과 성실이라고 하는 정상적인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기’가 과연 존재하던가? 그것에는 언제나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자진하여 받아들이는 지레포기적 선택만이 존재하지 않던가? 너가 살고 있는 그곳, 너가 하고 있는 바로 그일 말이다.
누가 아니라고, 나는 아니라고,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누가 또 있는가? 그리고 그게 너가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모든 것일 수 있고, 행복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찾았다면 우리는 버티기에 들어가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티고 또 버텨내야 한다. 그것이 행복의 전부일 테니까. 더이상 찾아야 할, 이뤄내야 할 무엇도 없을 테니까.
20세기의 여름을 끝마치며 우리 각자는 이곳을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곳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방식,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닌,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난 두 달을 살아내었을까? 이 질문에 각자가 대답하고는 다음의 선택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언젠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만큼
원도 한도 없이
살다 죽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없고
행복한 일이 없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 2021년의 장충동 20세기소년,
그리고 <20세기의 여름>에서
그 시작을 보았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이것을 지켜내는 일,
이것을 확장하는 일,
이것을 멈추지 않는 일,
이것을 빼앗기지 않는 일,
이것을 허튼 것과 바꿔먹지 않는 일
뿐이다.
묻고 싶다.
너도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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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