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어디까지 갈까?
[코인이즘 Koinism] Jan 9 2021 l M.멀린
이 끝모를 상승장에 다들 궁금한 건, 바로 저것일 겁니다. 어디까지 갈까? 비트는 어디까지 오를 것이며 주식은? 부동산은? 말이죠. 고점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인은 너무도 단순합니다. 더이상 살 사람이 없을 때까지. 아니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더이상 살 사람이 아니라, 더이상 살 돈이 없을 때까지이겠죠. 당분간 돈은 계속 풀려나갈 테니 더 갈까요?
투자는 심리라고 말하고, 코로나 팬데믹은 모두에게 동일한 심리를 몰아쳐 주었으니 한 방향으로 정렬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문제가 정리되는 시점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은 엇갈리고 그 안에서도 세분되기 시작할 겁니다. 그때 폭락이 시작되는 것이죠. 급하게 쌓아 올린 것은 하나의 균열에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니까요. 그 트리거가 무얼까? 언제일까? 다들 위태위태 불안불안하면서 누구는 이제라도 올라타고, 누구는 탈까 말까 망설이고, 바닥에서 올라탄 누구들은 여유를 부리며 관망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지나갑니다.
이런 상승장은 언제나 어느 때나 있었습니다. 예금금리가 20%였던 때도 있었으니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 따위는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스팀 3,000원 시절에 ‘100원대에 산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지금 다시 그 시절이 왔건만, 우리는 여전히 망설입니다. 그렇습니다. 기회는 기회가 아닙니다. 모두의 기회가 모두의 기회가 아니고, 너의 기회가 나의 기회가 아닙니다. 나의 기회는 딱! 그것! 나의 업業에만 있습니다.
노오오오력의 신화는 세상의 모든 일이 ‘노력’이라는 만능키로 해결되리라 우리를 속입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고, 순서와 때를 따라 필요한 위치에 배치된 우주 장기판에 말일 뿐입니다. 그걸 사람은 믿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돈 놓고 돈 먹는 일에도 ‘노오오오력’과 ‘시이이이일력’이라는 환상을 결부시키려고 합니다. ‘그런 게 어딨어, 다 팔자 탓이고 운 따라 가는 거지.’ 오래 산 어른들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나는! 내 힘으로! 내 실력으로! 할 수 있을 거라며 불타는 열차에 올라탑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서열화되었다고, 사다리는 다 걷어차였다고 한탄을 하지만, 그러면 행복은 성적순이던가요? 대학교 입결 순으로 행복한가요? 부자는요? 전부 노오오오력과 시이이이일력으로 부자가 되던가요? 코인은? 부동산은? 주식은? 연구와 노력의 결과로 수익률이 결정되던가요? 아닌 줄 알면서 우리는 자꾸 성공한 이들의 책을 찾아보고 주식부자, 부동산부자, 코인부자들의 강의를 쫓아 다닙니다. 그러면 뭐 합니까? 그 사람은 A형이고 나는 B형인데 수혈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피를 팔았고 내 피는 팔리지 않을 뿐입니다.
사람이 모두 얼굴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지문도 다른데 왜 운명은 하나같이 부자여야 할까요? 다른 만큼 다른 인생의 수가 널려 있고, 나는 그래 봐야 그중 하나고 그래서 유니크한 것인데 왜 모두 부자가 되어야 할까요? 부자가 되면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쉽게 선택할 수 있어 그럽니까? 그럴 리가요.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훨씬 많습니다. 돈으로 가난을 살 수 있나요? 돈으로 사랑을 우정을 살 수 있습니까?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돈으로 사는 건 서비스일 뿐입니다. 서비스가 아닌 진심, 진짜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서비스 그 따위거 좋습니까? 배우자의 서비스, 자녀의 서비스, 우정의 서비스, 사랑의 서비스..
그게 진짜 좋습니까? 그걸 돈으로 샀다고 껄껄껄 웃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부자들이 돈 주고 산 그것에는 부록이 따라옵니다. ‘의심’ 말입니다. ‘이 새끼가 이거 내 돈 보고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 돈이 떨어지면 모든 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이런 얘기, 마치 ‘좋은 생각’에나 나올 법한 이런 얘기를 마법사는 왜 하고 있을까요?
네, 부자가 팔자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네, 그 모든 이유에도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건 죄도 아니고 벌도 아닙니다. 그건 그냥 누군가의 운명이고 업業입니다. 누군가의 업業, 그래서 마법사는 그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은 성실히 자신의 운명을 이룬 자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법사 역시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21세기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마법사이니까요. 자신의 업業을 감당해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업業이 아닌 남의 업業을 쫓아다니다 보니 누구와도 진심을 나눌 수 없게 되어 억울해 그럽니다. 21세기..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돈은 마치 한겨울의 눈처럼,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올 때 오고 쏟아질 때 쏟아지는 겁니다. 그 때는 모두의 운명에 다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실력은 그 때에 양동이를 들고 쏟아지는 그것을 받느냐, 여전히 방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넷플릭스나 보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것의 양은 적도에 사느냐 남극에 사느냐 그 중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불평등하다 말하는 우리 중 누구라도 아마존 어딘가에서 태어났으면 누려보지 못할 문명을, 느껴보지 않아도 될 비참함을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적도에 비가 온대 좋겠다, 남극에 눈이 온대 춥겠다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얼굴을 맞대고 고만고만한 잔고 타령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노력과 실력을 핑계 대면 쉽습니다. 그건 게으른 탓이고 언제든 하면 될 거니까요. 공부하면 되고 경험을 쌓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자꾸 핑계를 대고 희망 회로를 돌리지만, 그러는 사이 지구는 자전하고 공전하며 대기는 순환하고 계절 역시 변화합니다. 오늘 마신 공기는 어제의 공기가 아니고 오늘 만난 너는 어제의 너가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의 시세는 내일의 시세가 아니고, 오늘의 상승은 내일의 하락이 아니며, 비트의 상승은 너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작 비트는 사지 않으면서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며, 매일같이 이곳에서, 남들은 읽지 않는 글을 읽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
이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채,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우리는 세상의 누가 뭐래도 스.티.미.언. 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이고 글을 리스팀 하는 큐레이터이며 글에 보팅하는 투자자이고 글을 감상하는 독자입니다. 그것은 이제 이 시점에서 매우 유니크 합니다. 매우 일관적이고 매우 신념적입니다. 아니 신념 따위는 없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걸 끊지 못하고 모두가 떠나간 이곳에서 아직도 이러고 있는 우리는 이것을 ‘운명’으로, ‘업業’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입시다.
300만원이던 시절에도 비트를 팔지 못했던 누군가처럼
그리고,
0 하나가 붙었는데도 팔 생각이 없는 누군가처럼
“그러니 상실과 붕괴 뒤에 무엇이 오든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4번 타자가 몸 쪽 변화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열렬한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_ <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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