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는 것과 돌파하는 것

by M.멀린

[멀린’s 100] Aug 03. 2022 l M.멀린

끈기와 집념은 한 쌍으로 같이 다니기는 하지만 성질은 다릅니다. 끈기가 오래, 계속하는 것이라면 집념은 돌파하는 것입니다. 끈기는 힘을 고르게 펴고 반복하는 것이지만 집념은 힘을 계속 주고 또 주는 일입니다. 마치 변비와 싸우는 일처럼.

더러운 기억이 생각납니다. 그러니까 언젠가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뿌려진 볶음밥을 신나게 먹고서 변비가 생겨 버렸습니다. 아닙니다. 통상 변비과이기보다 설사과인 대장을 가졌으니 이건 일시적인 사고입니다. 화장실에서, 계속 실패하고 실패하고 그러나 열심히 힘을 준 탓에 그것은, 그곳 끝까지 밀려 나와 있었습니다. 살포시 그곳을 닦아내는 손길에 단단하게 뭉친 치즈 덩어리가 느껴질 정도. 다 된 것 같은데, 다 온 것 같은데 여간해서는 그것이 고개를 내밀고 세상 밖으로 밀려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통 그것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다 번뜩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비데의 힘을 빌자! 가끔 비데의 쾌변 기능에 매우 만족해했던 생각이 떠올라 미팅을 하다말고 잠시 실례하겠다며 비데를 찾아 근처 빌딩들을 헤매었습니다. 도대체 비데 찾아 삼만리. 이렇게 비데가 없단 말인가! 결국 아는 곳을 가자, 멀어도 아는 곳을 가자며 지하철 타고 꽤나 가야 하는 아는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허리 아래 묵직한 그 느낌을 가득 안고.

마침내 도달, 그리고 착석. 자, 비데 버튼을 누르고 어이차! 어이차!! 어이차차!! 이 느낌 아십니까? 온몸의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고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는 이 느낌. 말 그대로 엄마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집중하고 집중하고, 뇌혈관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공포를 아슬아슬하게 다스리며 온몸으로 닫힌 문을 밀어붙이는 이 느낌, 그것이 집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콩그레츌레이션! 콩그레츌레이션!!

그 해방의 감격과 편안한 안도, 그리고 가슴 벅차게 밀려오는 성취감은 끈기로는 느낄 수 없는 오로지 집념으로만 가능한 아스트랄한 기쁨인 것입니다. 날아갈 듯한 그것 말입니다.

그 경험을 해본 이들만 그것을 압니다. 끈기로만 열심히 매일매일을 견뎌온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집념의 맛이란 게 있습니다. 물론 끈기의 맛이라면 축적의 맛일 겁니다.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 날 태산을 이루는 끈기의 맛은, 매우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결과를 쌓습니다. 매우 단단하고 견고하게 業을 구축해 갑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끈기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장벽들이 있습니다. 장벽은 집념을 요구합니다. 장벽을 뚫고 넘어내는 힘은 念을 모두 집중하지 않고서는, 변비와 싸우는 전사의 머릿속처럼 온통 그것에만 힘을 모으지 않고서는, 작은 구멍조차 낼 수가 없습니다.

끈기와 집념을 세트처럼 말하는 이유는 그것을 모두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실하여 끈기 있는 사람과 용맹하여 집념을 갖춘 사람의 에너지 사용방식은 상이합니다. 오래 하려면 에너지를 과하게 쓰면 안 되고 내일 또 내일 지속할 힘을 잘 배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파하려면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단번에 써야 합니다. 시도할수록 에너지가 줄어들고 점점 기운이 빠집니다. 그래서 집념! 집념인 것입니다. 에너지가 줄고 기운이 빠져나가도, 에너지를 저기 젖 먹던 과거로부터, 해방의 미래로부터 모두 긁어모아 한 번 더, 한 번 더! 시도하는 그것, 말 그대로 집념이 아니면 돌파할 수 없는 것이기에 ‘집념’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끈기를 가진 우공牛公들은 쉽게 만날 수가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열심히 하던 그것을 여전히 하던 친구들은 몇십 년 만에 만나도, 몇십 년간 만나도, 언제나 한결같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재산을 축적하기도 하고 지혜와 연륜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끈기에 더해 집념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안간힘을 매일 매일 반복하며 쓰는 게 가능합니까? 물론 그대는 그러고 있습니다. 변기 위에서.

그래서 그들은 일찍 소진될 수 있습니다. 집념의 화신으로 살다 보면 명命이 단축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주 요절합니다. 자주 말입니다. 여러 생에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자주 요절합니다. 그리고 이루지 못한 한을 풀러 또 새로운 생을 시작합니다. 끈기 있게 생을 반복합니다. 매번의 생을 에너지 일백 퍼센트, 일천 퍼센트의 집념으로 불태우다 사라지고 요절하고 끈기 있게 다시 돌아와 같은 시도를 반복하기를 또 반복합니다. 참으로 끈질긴 그들의 생이 일백 번의 반복 만에, 일천 번의 반복 끝에, 아니 영겁의 반복에야 비로소 ‘성취’를 이뤄냅니다. 일도, 사랑도, 인생도.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성향이고 취향이겠죠. 그러나 끈기와 집념을 가진 이들이 위대한 진보를 이루고 다음 도전에 나서는 일은 언제봐도 아름다고 눈물겹습니다. 그런 이들이 또 환생하여 다음 도전, 다음 도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잉여들은 분자 집합체로 떠돌며 한 생을 즐겁게 살다 가는 겁니다. 고통을 즐기며. 괜찮습니다. 저 좋은 대로들 살고 있으니 뭐든 잘 사는 겁니다. 다만 그들, 집념의 화신들은 어쩌자고 저럴까 이해가 안 간다면 변기에 앉아 머릿속을 하얗게 불태우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묵직한 그것을 가슴에 안고는 잠도 잘 수 없어 그러고 있는 거라고. 그것, 해소되길 바라는 묵직한 그것이 그대의 가슴에는 없어 한없이 가볍게 살고 있는 거라고. 그것 없이 사는 인생 참으로 발랄하나 그것 때문에 안간힘을 쓰는 인생 가엽게 여길 일은 아니라고. 결국! 마침내! 밀어낸 그 순간의 환희를 가벼운 그대들은 알 수 없다고. 어느 날 문득 운도, 기적도, 비데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밀어내기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을 가벼운 것들은 알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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