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vs아벨 : 탕자vs탕자의 형

육식이 시작된 건 홍수 이후이다.
그러므로 아벨이 드린 제물은 당시에는 식용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농사를 지을 권리를 가진 가인이
아벨에게 양식을 적절히 공급하지 않아서
아벨의 제사가 왜곡되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에 관한 신학적 해석은 분분하지만
주목해서 보고 싶은 건 형이 아우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형과 아우의 갈등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이 아닌가?
탕자와 그의 형의 이야기..
흠 없는 어린 양은 속죄의 상징이다.
여기서 아벨의 제사는 탕자가 드리는 속죄의 제사이다.
풍성한 수확의 열매로 드리는 가인의 제사는
의로운 자가 얻을 마땅한 보상이다.
탕자와 달리 성실하게 살아왔던 형의 유산이다.
나는 언젠가 이런 광경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탕자가 돌아온 그날,
원전의 내용과 달리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고
형만 집에 남아 탕자와 마주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끔찍스러운 일이다.
탕자는 내쫓겨 골목 어귀에서 굶어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지친 영혼, 외로운 영혼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가인의 분노와 탕자 형의 분노는 닮아있다.
창세기 4장에서 신은 죄의 욕망이 네 안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추어진 죄의 욕망은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
결국 가인에게서 인류 최초의 살인을 이끌어 낸다.
탕자의 형에게서도 동일한 욕망이 발견된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의 교만.
충성된 자의 매정함…
다행히도 그날 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저주 가운데 놓인 가인에게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신의 손길에서
분개하는 형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을 읽을 수 있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믿는 자건 믿지 않는 자건,
죄인이건 의인이건,
하늘이 아버지라면
모든 사람은 그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다.
레고생각 lego th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