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파주
[MOVIE 100] Mar 12. 2022 l M.멀린

사랑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면 안되는 관계란 무슨 관계일까. 사랑인데. 찾아온 것인데. 안개처럼 스며드는 사랑이라고. 영화의 카피가 말해주는 파주는 안개가 자주 자욱한 곳이라고. 그랬던가? 파주에 꽤나 살았는데 정작 안개에 대한 기억은 없는 듯하다. 그건 분명했기 때문이겠지. 뚜렷했기 때문이겠지.
중식의 사랑은 신학생답게 아가페적이다. 그렇다고 에로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도 솔직했던 중식. 그래서 그는 참 목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느껴졌다. 얼마 만인가 진실된 목자를 그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 속 그들은 언제나 허위와 가식의 상징 같았는데.
화상에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그것도 사랑 때문이었는데.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려니 그것을 직면하고 극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운명의 신은 언제나 믿는 이에게 더 가혹한 법이다. 믿음은 시험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니.
중식은 도망치지 않았다. 어떤 사랑에게서도. 그건 수배를 피해 도망친 영화 시작점의 그때로부터, 그리고 다시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피해 도망친 파주에서 계속 직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술을 잔뜩 마시고 십자가를 지나 그것과 마주했다.
그런데 은수에 대한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아니 사랑인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고. 모르겠는 건 관객이고 중식의 말이지만, 아마도 그건 모두 중식의 사랑이었으리라. 아가페와 에로스의 경계가 없는 중식의 사랑은 신의 사랑인 것을. 사람들은 애써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신은 우리는 신부고 자신은 신랑이라고 아가서를 통틀어 말하고 있는데. 신의 에로스를 거세시킨 인간은 신의 사랑을 아가페에 유폐시킨다. 아니 나오면 안 돼. 에로스는 인간의 전유물인걸.
그걸 중식은 술의 힘을 빌어 해방시킨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 다시 운명의 신은 그를 시험한다. 욥에게나 그랬을까. 그는 순전한 자라고 그래서 어떤 시험에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이번에는 처제를. 어린 처제를.
아가페의 사랑은 중식의 사명이자 장기이기도 하다. 신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배우는 거겠지. 그게 처음에는 멋있어 보여서 시작했다고 그리고는 내가 갚아야 할 게 많아 그런 것 같다고. 많은 이들이 멋있어 보여 시작하다 지어낸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데 그는 그것을 차근차근 갚아가고 있었다. 그러면 구원은 찾아오는 법. 결국 수배를 피해 도망치던 도망자에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다 구치소에 감옥에 ‘대신’ 갇히는 것으로 속죄한 중식. 그는 적어도 더이상 도망자가 아니다.
그걸 알지 못하는 은모는 번번이 중식처럼 도망친다. 안개 낀 파주가 아니라 인도로. 인도에서 무얼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돌아온 은모는 여전히 진실은 모른 채 원망만 가득하다 마지막에 가서야 깨닫는다. 어쩌면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2009년의 영화로부터 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사랑은 아가페와 에로스를 구분 지어왔는지, 아니면 중식처럼 그것을 향해 나아간 것인지. 그렇다면 중식처럼 기다려야겠지. 어떠한 순간에도. 어떠한 계절에도. 나도 그때 그곳 파주에 있었으니.
처음으로 영화 속 이선균이 연기를 참 잘하는구나 느꼈고, 심이영은 영화 속 은수처럼 사랑스러운데 나무위키의 해설처럼 참 운이 없었구나, 그리고 서우, 서우는 왜 연기를 안하는 걸까? 이렇게 수만가지 말을 눈으로 하는데. 신데렐라 언니 속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아, 한예리의 루키시절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애써 관객을 끌어 보려던 답 없는 포스터와 카피들은 오히려 영화가 말하고 있는 사랑을, 아가페와 에로스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 같아 보고 난 뒤에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영화의 OST가 윤상의 ‘영원 속에’라는 걸 알고, 꽤나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라 있던 이 노래가 이 영화의 이야기란걸 알고는. 파주把住는 운명이었구나. 나 역시 도망치지 않고 마주했구나. 철거될 사랑들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구나. 안개 속 사랑들을. 그리고 지금의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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