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패권과 거미 대장의 창조경제
+ 마스터 회의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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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힘
찰스는 갑자기 거미 대장에게 달러 패권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제국의 경시청 대장에게 달러 패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찰스 : 달러 패권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줍니까?
거미 대장 : 어허 거참, 사람하고는.. 내가 아무리 제국대학 정경학부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겠소? 그냥 고시보고 합격해서 여기까지 왔을 뿐이오. 한낱 공무원에게 달러 패권이 무슨 의미요?
찰스 : 아니오. 달러 패권이야말로 당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근원이오. 자,내 얘기를 잘 들어 보시오. 주권 국가의 힘은 군사력과 통화 발권력에서 나오는 거요. 무력과 재력, 이것이야말로 3차원 인간 세계에 있어 힘의 상징이지. 그래서 개인은 그것을 소유한 국가에 소속되어 보호를 받음과 동시에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소. 하지만 이 실질적인 힘이 다 무엇에 담보되어 있소?
거미 대장 : 담보되어 있다니, 무력과 재력은 모두 국가의 소유 아니요? 그걸 담보하는 더 큰 힘이라도 있소?
찰스 : 실질적인 힘 말이오. 개별국가들이 각각 무력과 재력을 소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힘이 패권 국가인 강대국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소? 현대의 무력은 핵무기로 귀결되니, 핵보유국이 나름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요.
거미 대장 : 그건 그렇지. 핵무기는 하나를 가지고 있으나 100개를 가지고 있으나 별 차이가 없소. 먼저 쏘는 놈이 이기는 게임이지. 공멸할 게 아니라면 같이 핵무기로 대응할 수가 없을 테니 말이야. 그게, 핵전쟁이, 그래서 일어날 수가 없는 거야. 너도 죽고 나도 죽을 테니까. 그런데 딱 한 발은 쏠 수가 있어. 누구든 맞대응해서 쏘기 시작하면 모두가 죽는 거니까 맞아도 대응을 할 수 없다구. 다 같이 죽을 게 아니면. 처음 쏜 한 발은 효과를 발휘하지. 그래서 재래식 무기가 더 중요한 거야. 재래식 무기 없는 핵무기는 있으나 마나라고. 한 발을 먼저 쏠 놈은 판단을 해야 해. 한 방으로 상대를 항복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야 그게 가능한 거거든. 상대가, 내가 쏜 한 발에 다시 핵무기로 대응할 수는 없지만, 재래식 무기로는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한 방이거나, 재래식 무기의 우위에 있는 놈이 선전포고용, 기선 제압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이 제국 경시청 대장의 판단으로는 재래식 무기의 우위가 국가의 무력을 결정한다는 거야.
찰스 : 잘 아시는군요. 맞소이다. 그렇다면 현재 무력이 가장 강한 국가는 어딥니까?
거미 대장 :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어디긴 어디야 미국이지. 다음으로 중국, 러시아, 유럽.. 뭐 그런 거지. 우리 제국도 나름 뒤지지 않는다고. 그놈의 화평조약이 발목을 잡고 있어 그렇지.
찰스 :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나 미국이 제일 세죠.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그런데 아까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힘이 뭐라고 했소? 통화 발권력, 재력이요. 사실 요즘 세상에 누가 땅따먹기 전쟁을 쉽게 일으킬 수가 있겠소? 그건 일종의 상징적인 힘이지. 일어나봐야 국지전이고 전략적인 단기전이요. 세계가 하나로 묶여 돌아가는 세상에서, 세계대전은 사실 우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아요.
거미 대장 : 맞아 그렇지. 그래서 내가 운동을 굳이 열심히 하지 않는 거야. 전쟁이 일어나겠냐고. 그리고 자원 전쟁이 아닌 이상, 지역전을 해서 땅을 따먹어봐야 현지인들까지 먹여 살려야 되는데, 아, 그 식민지 국민들도 복지니, 뭐니 혜택을 주어야 할 거 아니야? 요즘 세상에 가만두면 인권이니 어쩌니 하며 본국인 행세를 금방 해 댈 텐데 부담스럽기만 하지. 난민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냥 돈으로다가 빨대 꽂아서 쪼옥 빨아먹으면 그게 속 편하지. 관리 안 해도 되고.
찰스 : 그렇소. 잘 아시는군. 그래서 현대국가의 실질적 힘은 재력이오. 무기도 돈이 있어야 개발할 거 아니요. 그런데 그 재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화폐에서 나오죠. 기축통화를 가진 국가는 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가 있단 말이오. 재력은 발권력이고 그게 국가의 힘이지. 그런데 그 힘을 미국이 독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개별 국가의 화폐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하위 토큰일 뿐이요. 미국이 화폐 정책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가 영향받을 수 밖에 없단 말이지.
거미 대장 : 뭐 그 당연한 소리를 하고 그러쇼. 백발 할아버지부터 글 읽을 줄 아는 유치원생도 다 알만한 사실 아니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요즘 어디 있소? 그런데 왜 달러 패권이 내 삶을 지탱해 준다는 거요?
찰스 : 보시오. 당신은 경시청 공무원이요.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 직업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현대 사회에서 이 국가를 존속시키는 힘은 결국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근원을 따지고 보면 미국 달러로부터 나오는 거요. 미국이 인정해 주고 있는 하위 국가, 하위 통화, 하위 토큰으로부터 당신이 월급과 급여를 받고 있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달러야말로 현대 자본주의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라구요. 그 달러 패권에 대항했다간, 쥐도 새도 없이 암살되거나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된단 말이오. 제국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럴 리야 없겠지만, 달러 패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간 제국 경시청의 운명도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 거요.
거미 대장 : 음.. 그거야 뭐 어쩔 수 있겠소. 세계 힘의 질서가 이미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 오랜데 말이요.
찰스 : 네 맞아요. 오래되었죠. 문제는 달러 패권의 독주가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거요. 경쟁이 사라지면 발전은 느려지게 되어 있소. 현대 자본주의는 정작 달러 패권이 망가뜨리고 있어요. 차라리 냉전시대 공산권력과의 경쟁은 전 세계를 고르게 발전시키는 동력이었지. 한 국가라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니까, 원조와 개발 기술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 개별 국가가 발권력을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초기 제국주의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세상의 모든 것이 달러로 빨려 들어가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성장이 둔화되고 있소. 달러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밋 구조에 종속된 경제는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혁신적인 결과를 내 봐야 달러가 다 빨아들일 테니까. 그러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 한쪽으로 몰린 에너지는 축적될수록 붕괴의 압력을 강하게 받게 되어 있소. 그런 조짐이 점점 드러나고 있고..
공동의 운명
거미 대장 : 그 붕괴의 조짐이 당신들이 말하는 그 블록체인의 동력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찰스 :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오. 그 부분에 대해선 우리 마법사들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입장입니다만..
거미 대장 : 그러면, 블록체인이 대세가 되면 국가가 없어집니까? 경시청이 사라진다는 말이오?
찰스 : 블록체인이 국가를 없애버린다면 무정부의 세상이 오겠죠. 말 그대로 탈중앙화의 시대가 열리겠군요. 그런데 정말 그런 세상이 오겠소? 그건 우리 마법사들도 궁금해하는 부분이라오.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이미 전 세계는 하나의 국가나 다름없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국가를 구성하는 힘인 재력과 무력의 정점에 미국이 있고, 그 밑의 국가들은 어쩌면 미국의 지방자치단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오. 문화와 민족 등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 미국이 통치하는 세계질서에 종속된 개별 자치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과장으로 느껴진다면 오히려 그게 더 큰 문제요. 차라리 전 세계가 미합중국의 일원임을 대놓고 선언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오. 그러면 미국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될 테고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실질적으로는 단일국가이면서도, 혜택과 보장에서는 제외되는 노예의 신분에 처해있는지도 모르오. 미국인을 제외한 전 세계인이 말이요. 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의 기득권과 이에 결탁한 각국의 기득권이겠네.
아무튼 이런저런 명분과 이유를 대도, 현실적으로 전 세계는 달러 단일 통화권에 속해 있어요. 몇몇, 그들이 악의 축이라고 하는 국가들을 제외하곤 말이오. 뭐 그들도 지배 세력들은 달러를 못 구해 안달이지만. 그렇다면 미국이 세계정부로서의 의무도 함께 져야 하지 않겠소? 제국주의 시대처럼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라면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지방정부에 불과할지라도 중동의 어떤 나라, 유럽의 어느 국가, 아시아의 하위 통화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본국인 미국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단 말이요. 쉽게 설명하면 식민지 초기에는 착취와 비 착취로 구분되어 있던 질서가, 세대가 지나면서 마구 결혼으로 얽혀서, 이제는 누구를 일방적으로 착취했다간 내 가족도 영향을 받게 되는 복잡한 상호 관계에 들어섰다는 거요. 노예가 병들어 죽으면 당장 내 집 청소를 주인이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지. 아무리 달러를 찍어내도 미국 혼자서 독식하다간 다른 국가들이 물건을 생산할 수 없을 만큼 취약해지거나, 미국이 생산할 물건을 소비해 줄 사람들이 없어 함께 망하게 되는 거요.
거미 대장 : 그건 그냥 공멸이네요.
찰스 : 그렇소. 공멸. 이런 위기의식이 심각하게 퍼져있어요. 이젠 뭐 연금술사가 아니어도, 조금만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 되었소.
거미 대장 : 난 그걸 왜 여태 모르고 있었죠?
찰스 : 하하하 공무원이 그래서 좋은 거 아니오? 그런 거 몰라도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잖아소. 그런데 밖에서 작은 무역업 하나만 해봐도 알아요. 아니 요즘 유행하는 온라인 마켓 셀러만 해봐도 알지. 환율에 따라 수익이 마구 왔다갔다 한단 말이오. 같은 양의 매출을 올려도 말이지.
거미 대장 : 알겠소, 세계가 단일국가나 마찬가지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경시청은 왜 없어진다는 거요?
찰스 : 경시청이요? 경시청이 왜 없어집니까?
거미 대장 : 뭐요?? 아니 당신이 경시청이 없어진다고 했잖소?
찰스 : 아아, 나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소. 달러 패권이 경시청과 당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근원이라고 했지. 경시청이 왜 없어지겠소? 세상이 변해도 경시청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할 텐데. 다만 달러 패권에 반기를 들었다간 조직이 해체될 수는 있겠네.
거미 대장 : 그럴 리는 결단코 없소! 우리 제국은 미국과 매우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우방국이란 말이요. 그러니 달러 패권에 우리 제국이 왜 반기를 들겠소?
찰스 : 그거야 알 수 없지. 다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달러 패권의 하얀 돈이 검은 돈을 양산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소. 한정된 재화와 경제구조 속에서, 하위 통화들은 철저하게 달러 패권의 통제를 받고 있어요. 그러니 자신들 마음대로 뭘 해 볼 수가 없단 말이오. 그래서 검은돈들이 양산되고 있는데, 이것도 달러로 유통될 수밖에 없으니 한계가 있단 말이지. 미국이 전 세계의 금융을 통제하고 있으니 말이오. 그러니 달러 패권이 강해질수록 달러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려는 일명 검은돈의 압력 역시 더 강해질 수밖에 없소. 그런데 블록체인, 암호화폐가 등장한 겁니다. 달러의 통제 밖에 있으면서 전 세계 화폐와 연동되는 디지털 화폐. 게다가 누구나 발행할 수 있는, 심지어 개인도 발행할 수 있는 화폐가 말이오.
거미 대장 : 오~ 개인도 화폐를 발행할 수가 있소?
찰스 : 그럼요. 당신도 화폐를 발행할 수가 있소. 거미 화폐? 안보 화폐? 뭐든 말이오.
거미 대장의 창조 경제
거미 대장 : 그런데 그걸 누가 쓴단 말이오?
찰스 : 그렇게 말입니다. 그걸 누가 쓰겠습니까? 그런데 말이요. 그게 무서운 거요. 그게 힘이라구요. ‘쓸 사람’. 누구든 쓸 사람만 있다면, 그 화폐는 국가가 갖는 절반의 힘을 갖게 되는 거요. 통화 발권력, 재력 말이요.
거미 대장 : 아, 그걸 국가가 가만두겠소? 당장 불법 화폐로 잡아들이지.
찰스 : 아.. 뭐 그렇겠지만, 다국적 기업이나, 개인이라 할지라도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소? 어차피 국가란 허상 아니요. 개인들의 집합체이니, 개인들이 어떤 구심점을 중심으로 모이느냐에 따라, 그것이 국가의 형식을 결정할 수도 있지 않겠소? 결국 사용자를 확보할 수만 있으면 국가를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요. 무력은 재력에 달려 있으니까.
거미 대장 : 아.. 그렇다면 다국적 기업 같은 곳들은 국가를 세울 수도 있겠군. 세계적인 팬덤을 가진 팝스타들도 그럴 테고.. 오호 이거 심상치 않은데..
찰스 : 문제는 확산력이오. 국가가 어쩌기 전에 급속도로 확산할 수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물론 치밀해야 하겠지만..
거미 대장 : 아니, 그런데 그럼, 그걸 미국이 가만두겠소? 자신들의 패권이 사라지는 건대?
찰스 : 가만두지 않거나, 자신들이 하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소? 어차피 미국이란 나라도 개인들의 연합체 아니오.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 내부 권력투쟁은 어디나 있는 거고, 대표적인 기득권인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갈등이 블록체인/암호화폐로 전이될 수도 있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겁니다. 중요한 건 이거요. 그간의 달러 패권의 고착화로 세계 경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리고 심지어 미국조차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상황이지. 누구든 먼저 시작하면,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거요. 어쩌면 물고는 이미 트였는지도 모르오. 국가와 개인의 엄청난 이합집산이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이지. 물론 종국에는 또 패권이 등장하겠지만..
거미 대장 : 아.. 그렇다면, 사라지는 국가도 나올 수 있겠군. 유명무실해지거나.. 우리 제국도 심상치 않은데 말이야. 지진도 잦고 게다가 원전 사고의 여파가 가늠할 수도 없으니.. 이러다 국가가 사라지면 경시청도 역시..
찰스 :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소. 국가가 없어진다고 해서 치안과 안보의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아, 그런데 그걸 기계가 대체할 수는 있겠네. 블록체인 시대에는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공권력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
거미 대장 : 아… 그건 또 무슨 말이요? 로보캅이라도 나온다는 말이오?
찰스 : 왜 아니겠소? 그거야말로 당면한 미래지.
로보캅 이야기가 나오자, 딱딱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시청 요원들이 술렁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암울한 미래가 찰스의 입에서 선언되는 듯해 당황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미 대장은 시름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등록금이며 대출금이며, 쌓여있는 빚과 앞으로 들어가야 할 노후비용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데,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찰스의 협박에 마음에 심란해진 것입니다.
거미 대장 : 에이~ 아무리 그래도 공권력은 존재하겠지. 어쨌든 누구라도 다스리긴 해야 하잖소? 질서도 유지해야 하고, 나쁜 놈도 잡아야 하고.. 현장 인력들이야 기계들이 대체한다 쳐도, 지휘는 인간이 해야 하지 않겠소? 기계만 믿을 순 없잖아!
찰스 : 하하 미래에 대해서 묻는 거라면 그거야 어찌 알겠소? 다만 우리 마법사들은 현재의 인류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그것이 이미 예언되어 있고,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 이들이라오. 우리는 무엇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소. 힘의 균형에 대해서만 분별할 뿐이오. 인간 사회의 진화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나아가는 것이니, 지금 어느 쪽으로 에너지가 쏠려 있는가,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어떻게 반전될 것인가를 측량해 볼 뿐. 그런 과정으로 볼 때, 달러 패권으로 기울어진 에너지가 필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소? 그러면 그것의 반전은 어떤 형태로 일어날 것인가, 그 반전에 국가 시스템은 여전히 존재할 것인가, 상징적일 뿐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될 것이냐 하는 문제들 말이오. 누구도 미래를 확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지만, 이미 등장하고 있는 흐름으로부터 시작되고 연결되고 영향을 받을 거라는 것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런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블록체인 시스템이고.
거미 대장 : 아.. 그렇군요. 그럼 그 블록체인의 관점에서 경시청의 미래는 어떻겠습니까? 이 체제가 계속될까요?
불안해진 거미 대장의 태도가 점점 누그러지고 있습니다. 아니 누그러지다 못해 심지어 공손해질 듯합니다.
찰스 : 글쎄요? 그건 이미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멀린에게 물어봐야 할 듯 한데, 우리도 실은 그게 궁금해서 이번 회의를 개최했으니까. 어떻소 멀린? 경시청은 계속되겠소?
찰스는 갑자기 멀린을 지목하며 대화를 돌립니다.
멀린 : 네? 아.. 저한테 물으신 겁니까? 경시청의 미래요? 글쎄요. 근데 이건 좀 풀어주시면 안 되나요. 답답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데, 소변도 좀 마렵고..
거미 대장 : 아.. 아, 그래요. 내가 이거, 대화에 집중하느라 깜빡하고 있었군. 미안하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이해 좀 해주시오. 내 당장 풀어드리리다.
거미 대장이 다시 팔을 크게 뒤로 젖혔다 놓으니, 마법사들을 묶고 있던 포박이 스르륵 풀리며, 다시 거미 대장의 손목 쪽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공중에 2열 종대로 매달려 있던 마법사들은 포박이 풀리며 부드럽게 바닥에 착지했습니다. 최신 포박 장치의 안정성이 꽤나 첨단으로 느껴졌습니다.
거미 대장 : 아, 이 장치가 뭐냐하면, 우리 제국 경시청에서 새로 발명한 안전포승줄이오. 국제대회에서 상도 받았지. 곧 이보다 더 개선된 신제품이 출시된다니, 마법사들도 구입할 생각 있음 나한테 말하쇼. 직원가로다가 내가 잘 해드릴 테니. 자자, 화장실 다녀오실 분들은 저 우리 요원들 안내를 받으시오. 대신 한 번에 두 사람씩만 다녀올 수 있소.
하루카 열차를 타고 도착해서 플로팅 되어 있는 내내 화장실 갈 새가 없었으니, 멀린의 오줌보가 터질 듯도 하겠습니다. 멀린은 부리나케 일어서 요원을 따라나서고, 다른 마법사들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돌립니다. 아.. 이건, 도망칠 타이밍이 아닐까요? 마법사들, 상황을 파악하느라 두리번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와중, 거미 대장의 생각은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 포승줄로 장사나 할까? 아니야, 그 블록체인인가, 암호화폐인가로다가 보안 화폐를 발행해서, 그걸로 결제하게 하는 것도 좋겠네. 요즘 경호산업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니까. 아! 그렇지 국가가 없어지면 사회가 난장판이 될 테니, 경호산업이 더 발전할지도 몰라. 그러면 이 화폐로다가, 은퇴한 선배들이나, 잘린 요원들을 쫘악 끌어모아서 글로벌 경호 업체를 만들면.. 으흐흐흐. 우리 제국 경시청의 실력이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전 세계적으로 주문의뢰가 쏟아질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아, 이거, 대박인데, 갑부 되겠어. 아니 찰스 말대로 아예 나라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겠네. 제국 경시청 출신 인력들의 보호를 받는 경호 국가 말이지. 오호~ 이거 장난 아닌데.. 아, 근대 그러면 제국 경시청뿐만 아니라. CIA, 모사드, KGB.. 다 국가를 만들겠군. 이거 그럼 경쟁이 너무 치열해질 텐데.. 괜히 사업 시작했다가 망하기라도 하면..
그래, 월급이 최고지. 게다가 우린 공무원이니 연금도 포기할 수가 없지. 이거이거 안 되겠어. 국가는 유지되어야 해.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고시 공부하느라 고생하신 우리 부모님들 봉양도 해야 하고, 자식들 뒷바라지할 일도 한참인데. 안돼, 안돼, 사업이라니! 내가 미쳤지. 이 자식들, 이 마법사들, 혼쭐을 내서라도 그놈의 블록체인 못하게 막아야지 안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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