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대장의 습격

+ 마스터 회의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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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대장과 대관료

 

“쇼들 하고 있네, 새로운 이는 무슨.. 머리에 이는 없나 몰라. 여기 책임자가 누구요?”

갑자기 회의장 천장이 강제로 뜯기며, 상공에서 수십 명의 회색 제복을 입은 경시청 요원들이, 거미처럼 생긴 드론 바이크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회의장에 착륙하자마자 마법사들을 향해 손목에서 흰 액체를 마구 쏘아댔습니다. 날아간 그것은 마치 스파이더맨의 그물처럼 손과 발을 먼저 휘감더니, 그대로 마법사들의 몸을 칭칭 감으며 포박해 버렸습니다. 급작스러운 습격에 마법사들은 옴짝달싹할 새도 없이 제압당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마법사들을 태운 하루카 열차는 이미 출발하여, 마법사들 대부분이 회의장을 떠난 뒤였습니다. 1대의 하루카 열차만이 남아, 찰스와 멀린, 아이작과 남준을 비롯한 집행부 100여 명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제국 경시청에서 신고를 받고 나왔습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시죠?”

“네, 접니다만..”

경시청 요원들 중, 상사쯤 되어 보이는 검은 제복의 사내가 단상 앞으로 나와 책임자를 호출합니다. 이번 마스터 회의를 주관한 이는 그랜드 마스터 찰스였습니다. 찰스는 올 줄 알았다는 듯한 묘한 눈빛으로 경시청 상사의 호출에 응합니다.

“이 친구 이거, 기분 나쁘게 생겼네.. 얼굴이 진화되다 말았어. 이봐 당신이 찰스요? “

찰스가 호출에 응하자 누군가 이도가 앉아 있던 백색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매우 거만한 말투로 내뱉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회색 제복 요원들의 대장쯤 되어 보였는데, 풍겨나오는 분위기가 매우 음산하고 기분 나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의 외모는 매우 기이하게 생겼는데, 190cm쯤 되어 보이는 큰 키에, 팔다리는 가는데 그 길이가 거의 몸통에 두 배쯤 되어 보였습니다. 팔은 유난히 길어서 축 늘어뜨리면 바닥에 닿을 듯하고 다리는 얇아서 마치 팔과 다리의 구분이 가지 않을 듯 보였습니다. 게다가 몸통은 큰 애드벌룬 하나와 작은 애드벌룬 하나를 붙여 놓은 듯 비대해 보였습니다. 얼굴은 매우 음산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는데, 눈은 옆으로 길게 찢어졌고, 눈과 눈 사이의 미간에는 공간이 거의 없어 마치 하나의 눈처럼 보였습니다. 몸통의 절반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별로 남지 않아 두 갈래로 길게 길렀는데, 잘 고정이 되지 않는지 마치 더듬이처럼 앞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 외모가 마치 거대한 거미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다른 요원들도 마치 복제인간들처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요원들은 체력단련을 열심히 했는지 모두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소. 내가 찰스요. 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 문제가 많지.. 당신들 여기서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시끄러워. 노래를, 노래를 하지 않나. 이 야밤에 말이야. 소란스럽다고 신고가 들어왔거든. 그런데 여기 대관료는 냈소?”

“대관료? 아니 대관료도 안 내고 행사를 치렀겠습니까? 당연히 냈죠.”

“이봐, 여기 대관료 납부됐나 확인해 봐.”

“넵! 각하!”

거미처럼 생긴 대장 사내는 검은 제복의 부하 상사에게 장소 대관료 납부상황을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상사는 타고 온 드론 바이크의 트렁크에서 족히 1,000페이지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장부를 꺼내더니, 움직이는 마법의 성의 10년 치 대관료 납부상황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소유는 알케미스트 파운데이션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관료는.. 납부한 기록이.. 올해가 2018년이니까, 어디 있나, 가만 보자..”

검은 제복의 상사는 장부를 맨 앞장부터 펴서 일일이 확인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연도별로 정리가 안 되어 있는지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장부를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거 천천히 해. 시간 많으니까.”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우리는 당당하게 대관료를 납부하고 정상적으로 행사를 치렀단 말이요.”

찰스는 이 상황이 어의가 없는지, 결박된 채 바닥에 자빠져서 소리를 빽빽 질러댔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열리는 마스터 회의, 대관료가 납부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찰스가 얼렁뚱땅인 것 같아 보이긴 해도, 매우 용의주도하고 치밀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마법사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랜드 마스터의 지위에 오를 수가 없었겠지요.

 

쿠바산 시가

 

“아니 근대, 이 마법의 성이 연금술사들 꺼였나요?”

포박당한 채 남준과 등을 맞대고 있던 멀린이 남준에게 물었습니다.

“네 맞아요. 우리 마법사들이 이런 걸 살 돈이 있겠습니까? 연금술사들이 마법사들 불쌍하다고, 중고 드론을 잔뜩 사다가 이 성을 만들어서 임대해 줬어요. 이게 회의장이 온통 하얀 게, 중고 드론들을 이어붙여 만들어 그렇습니다. 위에 다 흰 페인트칠을 해서 덮어버렸죠. 짜식들 기왕에 하는 거, 새 걸로 좀 만들지.”

“아.. 그렇군요. 그런데 소유권을 주진 않았나 봐요? 선물을 한 게 아닌가 보죠?”

“연금술사들이요? 그 자식들이 그 얼마나 구두쇠인데 공짜로 주겠어요. 이것도 아마 무슨 리스 상품인가, 장기 임대인가.. 뭐 암튼 복잡한 방식으로 렌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마녀들도 자주 이용하나 본대, 아주 원성이 자자해요. 엄청 까다롭게 군다고 말이죠. 어쩜 이 경시청 요원들도 연금술사들이 보냈는지도 몰라요.”

“예? 왜요? 대관료를 납부 안 했나요?”

“그럴 리가요. 찰스가 얼마나 철저한데요. 대관료를 못 낼 거였으면 회의가 열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아마도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저러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그레이트 마스터는 먼저 가셨나? 안 보이네. 회전운동 하느라 많이 피곤해 하시던데..”

“그러게요. 안 보이네요.”

“누구야!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조용 안 합니까!”

마법사들이 여기저기서 소곤대는 소리가 거슬렸는지 검은 제복 상사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아마도 장부를 세다 자꾸 헷갈리나 봅니다.

“거 오래 걸리겠구만.. 천천히 찾아 천천히. 시간 많으니까. 그리고 당신들 아까 오다 보니까 하늘로 막 날라가던데 떼거리로 어딜 갔다 온 거야? 여기 야간비행 금지구역인 거 몰라? 이거, 공중교통법 위반 사항이야. 일단 딱지 하나 끊고. 그리고 저기 저거, 저 단상 옆에 저거 뭐야? 저거저거, 아 그거 말고, 저 누런 막대 말이야.”

거미 대장이 지휘봉으로 단상 옆 구석에 떨어져 있는 누런 물체를 가리키자, 요원 중 한 명이 거미처럼 스스슥 달려가 물체를 집어들고는 보고 합니다.

“각하, 담배입니다. 시가 종류 같은데요.”

“뭐! 시가라고? 어디 산이야?”

“음.. 쿠바산인 것 같습니다. 아, 메이드 인 하바나라고 쓰여있네요.”

“뭐, 뭣이라고! 쿠바산이라고?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빨갱이 담배를, 여기 빨갱이 새끼가 숨어 있었군. 어디 앞으로 나와 보시지.”

“내가 폈소. 시가가 쿠바산인 게 무슨 문제가 있소? 시가 하면 쿠바인데.”

아 담배.. 아까 찰스가 멀린에게 건네 준 그 시가였습니다.

“아하 찰스, 이 반동분자. 당신 어디서 왔소? 여기 제국에서는 적국 국가의 생산물은 반입금지라는 걸 모르오? 이거 공중보건법 위반 사항이요. 게다가 적성국 제품 소지는 제국안보법 위반이란 말이요. 이게 얼마나 큰 중죄인 줄 알아? 당신 이제 큰일 났소.”

“담배 한 대 피운 걸 가지고 무슨..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요?”

“그냥 불러 봤소. 설마 다윈이 할아버지는 아니지? 가족 중에 백신 만드는 사람이 있소?”

“의사 말이요? “

“아니 컴퓨터.”

“난 마법사요.”

“오호 마법사라. 그래 알지. 오늘이 마법사들의 마스터 회의라며.. 근데 당신들 무슨 회의를 한 거야? 이거 쿠바산 시가를 반입한 걸 보니 공산혁명을 모의하고 있는 거 아니야? 다 들은 정보가 있어. [스팀시티].. 미니스트릿 사건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며?”

‘아니 어떻게 알았지?’

거미 대장이 [스팀시티]를 거론하자 마법사들, 특히 멀린은 섬뜩해졌습니다. 이 정체불명의 요원들과 거미처럼 생긴 저 기분 나쁜 사내가 어떻게 [스팀시티]를 알고 있으며, 이렇게 마법사들을 포박한 채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건지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짓 신고

 

“멀린이 누구요? [스팀시티]의 마법사 멀린,”

“아.. 저 접니다만.”

거미 대장이 갑자기 멀린을 호출합니다.

“아, 당신이요? 음.. 잘생겼구만. 마법사답지 않게 훈남인데.. 그런데 당신, 왜 대관료를 내지 않고 도망친 거야? 신고가 들어 왔어 신고가!”

“네? 무슨 얘기죠? 대관료라니요?”

“어허 이 친구 모른 척하기는, 내가 다 이미 알고 왔어. 발뺌하려고 해봐야 소용없어! 미니스트릿을 했다며… 합정동 카페에서 이틀 동안 플리 마켓 행사를 하지 않았소?”

“아.. 네 [스팀시티]의 첫 번째 공식행사였죠. 했습니다. 지난주에..”

“그러니까, 그런데 당신이 그 행사 대관료를 안 내고 도망갔다고 신고가 들어왔단 말이요!”

“신고요? 도대체 누가 그런 신고를.. 그리고 저는 그 행사의 책임자가 아닙니다. 저는 마법사 일 뿐이라구요.”

“책임자가 아니라구? 이 친구 이거 거짓말하는 거 보소. 아니 당신이 책임자가 아닌데 왜 당신을 신고하나!”

“아.. 그건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스팀시티]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액팅 마법사이지, 결정권을 가진 총수가 아닙니다. [스팀시티]는 총수가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총수? 아, 그 두 명의 총수? 맞아, 그 기록도 있던데.. [스팀시티]는 총수가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소? 책임도?”

“네.. 그럼요. [스팀시티]는 총수가 모든 권한과 모든 책임을 갖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어요. 미니스트릿 행사도 [스팀시티] 오프라인 플랫폼의 총수인 라라총수가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고 치러진 행사라구요.”

“총수라.. 바지사장 아니고? 에이~ 바지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거 다 당신이 뒤에서 조종하고 꾸민 일 아니야? 맞지? 그러니까 신고가 들어 왔지. 그렇지 않고서야 총수가 빤히 있는데 왜 가이드를 신고하겠어?”

“아.. 그건 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그 탈중앙화를 모토로하는 블록체인 시스템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블록체인? 아.. 그 [스팀시티]가 블록체인에 설립된 단체인가 보지? 요즘 말 많은 그 블록체인? 근데 그거 사기 아니야?”

“글쎄요. 사기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명 나지 않았습니다만, [스팀시티]는 블록체인에서의 리더십 구조에 대한 실험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탈중앙화의 시스템에는 지도자, 리더가 필요 없는가? 블록체인 시스템의 핵심은 커뮤니티라고 하는데, 커뮤니티가 리더십 없이 결성되고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에이~ 리더 없이 무슨 조직이 되나? 이렇게 탁 틀어주고 정신 못 차리게 돌려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놈들, 사고 치는 놈들이 나오는데 그게 되겠어?”

“아.. 그게 저.. 그래서..”

“그래서 그걸 실험해 보려고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스팀시티]가 말이죠.”

멀린이 긴장이 되는지 답변을 잘 이어가지 못하자, 함께 묶여 있던 남준이 이어서 거미 대장의 질문에 대응을 합니다.

“아하.. 실험이라.. 음, 흥미롭군. 내가 말이야, 전공이 정치경제학이라 리더십에 대해 좀 아는데, 요즘 말이야, 너무들 수평, 수평 한단 말이지. 그게 세상이 평평하기만 한 게 아니란 말이지. 질서라는 건 원래 수직적인 거 아니겠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질서란 말이야. 옆으로 주욱 늘어만 놓는다고 모두가 해피한 게 아니야. 대중은 오히려 무질서를 더 싫어한다고. 잣대는 나에게만 관대하길 바라지. 타인에게는 혹독하면서 말이야. 그 블록체인 머시기, 그거 나도 처음에는 관심이 되게 많았어. 내가 체인을 좋아하거든, 이 체인 말이야.”

거미 대장은 말을 하다 말고 백색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갑자기 양팔을 벌리고서는 손목에서 무언가를 촤르륵 쏟아내었습니다. 그것은 가는 금속 체인이었습니다. 거미 대장의 손목에서 쏟아져 나온 금속 체인은 마치 거미줄처럼 회의장 사방으로 뻗어 나가, 100명의 마법사들을 2열 종대로 묶어 세워 버렸습니다. 마법사들은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기둥처럼 2열 종대로 묶인 채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그래그래, 이거 보기 좋잖아. 모름지기 나란히 쭈욱 늘어선 종대야말로 아름다운 질서의 극치이지. 가만가만. 움직이지 말라고, 자꾸 꿈틀대면 체인이 더 조여 올 테니. 갑갑해진다고..”

“당신, 무례하고 잔인하군요. 무슨 권리로 우리들을 이렇게 구속합니까!”

찰스가 참다못한 나머지 거미 대장에게 거칠게 항의하자, 거미 대장은 팔로 체인들을 잡아채며, 마법사들을 더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결속시켰습니다.

“무례하다고? 잔인? 그게 자연의 질서야. 찰스, 당신이 더 잘 알 거 아니야. 다윈 계열이라며.. 내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지 알아?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다윈이야. 약육강식의 원리. 다윈, 당신네 계열의 수장이 발견한 진리인데 당신도 따라야지 어떡하겠어?”

“자연의 질서라니. 이게 어떻게 질서요? 당신은 아직 우리에게 영장도 보여주지 않았소. 그리고 우리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 장소를 대관했고, 대관료도 모두 완납했단 말이오. 무슨 권리로 이러는 거요 도대체!”

“무슨 권리? 그건 저 잘난 마법사 멀린에게 물어보시지. 난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하고 있을 뿐이니까. 이봐요 멀린, 총수가 이런 거요? 이런 힘을 보여주는 총수를 원했소?”

거미 대장은 2열 종대의 체인에서 멀린을 확 뽑아 올리며 비아냥댑니다. 그러나 멀린, 밀리지 않고 팽팽하게 맞섭니다.

“물리적 체인으로 사람들을 묶으면 누가 그 체인을 좋아하겠습니까? 블록체인에 모여든 사람들은, 당신이 숭배하는 상명하복의 질서에 신물이 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수직적 세계를 탈출하여 수평적 신세계를 찾아 나선 이들이라구요.”

“그래서? 그래서 찾았나? 블록체인 땅은 그런 곳이던가? 그렇다면 왜 총수를 뽑은 거지?”

“[스팀시티]가 찾은 총수는 그런 상명하복의 질서를 추구하는 총수가 아니에요. 비전을 제시하고 직접 실천해 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실천적 리더상을 구현하려고 했던 거란 말입니다.”

“푸하하하. 무슨 그런 성인군자가 요즘 세상에 어디 있어? 비전을 제시하고 직접 실천해 보인다고?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꼬여서 호주머니를 털어먹으려는 거겠지. 그래서 바지사장을 찾은 거 아니야. 내가 다 알지. 그런 놈들 잡아들이는 게 바로 내 일이라고. 그게 우리 경시청 리더십 관리본부 요원들의 직무란 말이요. 당신 같이 말하는 인간들, 수도 없이 봤단 말이지. 다들 하는 말이 똑같아. 비전 제시, 동기 부여, 함께 하는 공동체.. 그딴 소리 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뒤로 호박씨 까는 인간들 뿐이라구. 당신이 그렇지 않다는 보장이 어디 있소? 어디 증명해 봐!”

거미 대장의 호통에 마법사들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을 자신의 꿈으로 이끌고,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마법사들의 삶은, 언제나 몰이해와 모함으로 부정되기 일쑤입니다. 수많은 기적의 역사와 놀라운 반전의 기록에도 마법사들은 자신들을 변호할 수가 없습니다. 마법사들의 규약은 그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드러나면 더이상 꿈꾸는 이들을 만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명성과 유명세가 마법사들을 떠올리면 마법사들과 꿈꾸는 이들의 만남은 단절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검은 돈과 제국대학 정경학부

 

아이작 : 찰스 마스터시여, 좀 나서 보십시오.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답답해진 아이작은 그랜드 마스터 찰스에게 대응을 청해 봅니다. 그러나 그랜드 마스터로서는 더더욱 변호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그런 몰이해의 세월을 견뎌냈기에 그랜드 마스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찰스 : 아이작, 못 견디겠습니까?

아이작 : 아니,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거야말로 불법이고 모함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스팀시티] 때문에 신고가 들어 온 거면 멀린 한 명만 조사를 하면 되지, 마법사들 전체가 이런 취급을 당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남준 : 아이작, 너무 하시는군요. 마법사들의 연대를 지금 깨자는 말씀입니까? 게다가 멀린 마법사만 남겨 놓고 도망가자구요? 아.. 이럴 때 그레이트 마스터가 계셨어야 하는데..

아이작 : 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찰스 : 조용조용, 저 자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신고는 핑계인 것 같아요.

아이작 : 네? 핑계라구요? 그럼 왜 이러고 있는 거죠?

멀린과 거미 대장 간에 공방이 오가는 동안, 아이작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는지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멀린을 남겨 놓고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온몸이 포박되어 있어, 주문을 외우고 성호를 그어 마법을 실행할 수도 없습니다. 거미 대장 역시 마법사들을 쉽사리 놓아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거미 대장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그에게 접수된 신고내용은 무엇일까요? 그는 어떤 꿍꿍이를 갖고 있는 걸까요?

찰스 : 저, 여보시오. 대장 양반. 질문이 있소.

찰스는 답답해하는 아이작에게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고는, 멀린과 공방을 벌이고 있는 거미 대장의 주위를 돌리려 질문을 신청합니다.

거미 대장 : 뭐요? 찰스, 당신 말이 좀 많아.. 입 좀 닥치면 안됩니꽈아~

찰스 : 하하, 이 양반. 나는 그 안이 안이오. 헤헤 보아하니 우리 회의 내용을 다 들은 것 같은데 맞소?

거미 대장 : 눈치하군.. 그렇소. 일단 집회 신고가 들어오면 경시청에서 집회 내용을 다 청취하게 되어 있소. 이건 제국의 법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마시오. 여긴 프라이버시가 발달한 서편 지역이 아니니까. 동편에서는 다들 이렇게 한단 말이오.

찰스 : 아 네, 뭐 그건 이해합니다. 회의 장소를 선정할 때 이미 체크한 사항이니까요. 아무튼 우리 마법사들의 회의 내용을 다 들었다니 하는 질문입니다만, 동편 지역의 블록체인 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인주의 문화가 아직 보편적이지 않은 동편 지역에서, 탈중앙화의 블록체인이 유난히 주목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거미 대장 : 아 그거야. 검은 돈이 많으니까.. 흠.. 어험.. 아 그게 아니고, 아무래도 전통적인 질서에 사람들이 억압되어 있어 그런 게 아니겠소? 블록체인이 아무래도 좀 자유로워 보이니까..

찰스 : 네 맞아요. 검은 돈. 검은 돈이 많아 그런 것일 수 있죠.

거미 대장 : 아, 그건 내 말이 잘못 나온 거지..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찰스 : 아닙니다. 그것이 본질일 수 있습니다. 그 검은 돈이, 어디까지를 검은 돈으로 볼 것이냐 하는 부분이 중요한 논점이 될 수 있는데, 탈세한 돈만을 뜻하는 거라면 동편이나 서편이나 그 수요는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발권력에 관한 부분이라면 그건 얘기가 또 달라집니다. 동편 세계는 사실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 않습니까?

거미 대장 : 무슨 소리요! 우리 제국의 통화는 이미 기축통화로 인정을 받은 지 오래요.

찰스 : 네 그렇긴 하지만, 그래 봐야 달러에 종속되어 있는 건 매한가지 아닙니까? 양키 놈들이 환율 조정하라면 그냥 찍소리 못하고 따라야 하잖아요?

거미 대장 : 쩝.. 뭐 그렇긴 하지..

찰스 : 그러니까요. 검은 돈은 하얀 돈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빛과 그림자 같은 거라구요. 달러 패권이 강화될수록 패권에서 벗어나려는 반작용의 에너지는 점점 축적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거미 대장 : 이봐 찰스, 지금 날 가르치려는 거요? 이래봬도 내가 제국대학 정경학부 출신이란 말이요. 전공이 정치경제학이라니까.

찰스 : 그렇다면 또 묻겠습니다. 달러 패권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습니까?

거미 대장 : 어허 이 양반, 그것도 질문이라고… 뭘 그런 걸 물어요. 내가 점성술사요? 당신들처럼 마법사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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