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은퇴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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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그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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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 이전에 은퇴란, 공직자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서민에게 은퇴.. 양반을 은퇴할까요? 노비를 은퇴할까요? 선비를 은퇴할까요? 늙어서 힘없고, 거동하기 어려워 더 많이 일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전 국민이 일정한 시점에 이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백수가 돼야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은퇴란, 산업사회에서 노동력이 약해진 고령 직원을, 그럴듯하게 해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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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평생고용의 시대에는,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은퇴하더라도, 노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정도의 목돈을 쥘 수 있었죠. 여기서 노년은 10년에서 길어야 15년입니다. 아시다시피, 백세시대의 은퇴연령은 도리어 젊어졌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서, 은퇴 이후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말은 해괴망측한 괴담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임금수준은 더더욱 떨어지고, 물가는 올라서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워진 전쟁 같은 시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기 싫은 일이라도 직장을 구해서, 은퇴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모아서, 노년을 준비한다는 생각은 머리에서 지워버려야겠습니다. 그런 지극히 비현실적인 관념은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려야 합니다. 공무원은 다를 것 같습니까? 기술의 발전으로 기계의 인간 대체 영역이 눈에 띄게 확대되는 이 시대에, 단순 행정업무야말로 사라질 직업 1순위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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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할 줄 알았으면, 치킨 튀길 거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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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중에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을 못 간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 가구점에 취직했습니다. 남들은 대학 가고, 유학 가고 하는 동안 이 친구 가구점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30대 초반이 되어,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습니다. 그는 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저를 불렀고, 저는 사회 초년병의 모습을 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고 있었습니다. 가구점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고, 돈을 좀 모아 자기 점포를 냈는데 장사가 잘 돼서 돈 좀 벌었답니다. 30대 초반입니다. 저는 사회생활 초년병이고 이 친구는 사회생활 10년입니다. 저는 대졸이고 이 친구는 고졸입니다. 학력의 간극은 1칸인데 공력의 간극은 10칸입니다.

40,50에 은퇴하고 (겨우 인생을 반 살았는데 은퇴라니)할 수 있는 건, 치킨집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20살부터 치킨집을 할 걸 그랬습니다. 대학 등록금에 결혼비용이면, 치킨집 차리고도 남았을 텐데.. 몇 번을 망했더라도 젊음이 재산이라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텐데.. 실패와 시행착오를 감당하기 더욱 힘든 나이에, 태어나 처음으로 도전이라는 걸 해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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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닭을 팔았으면, KFC 같은 세계적 체인의 대표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30년 배달을 했으면, DHL 같은 국제적 물류 회사의 오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30년간 무얼 했으면, 시장 한 귀퉁이의 내 가게에서라도 죽을 때까지 단골 장사하며, 인생을 좀 더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새로 오픈하는 거대 쇼핑몰과 신규 입주하는 대단지 아파트의 상권 좋다는 점포에서도 번번이 망해 나가떨어지는 게 자영업인데, 오래된 재래시장이나 저개발 지역 낙후된 상권의 세탁소, 참기름집, 떡집은 망하지도 않고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단골과 오랜 상점의 주인이 모두 바뀌지 않은 채 시간의 역사를 공유해 가는 곳, 산업사회 중흥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터전을 일궈간 장인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은퇴 없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이어나가고 있습니다.(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쫓겨날지언정). 유행에 휩쓸렸던 누구는, 멋모르고 남 따라갔던 바보들은, 은퇴를 훈장처럼 달고 파고다 공원을 떠돌고,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타보지 않은 스쿠터를 타고, 알바로도 해보지 않은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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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 말아야 합니다. 제2의 인생 어쩌구저쩌구 하며, 대기업 임원으로 은퇴하여 음식점 서빙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속삭이는 광고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100세 시대, 미리미리 은퇴 준비하려면 보험이 최고라는 사기에도 속으면 안 됩니다. 어차피 목돈 생기면 파리가 들끓고, 취직도 못하는 자식 사업비용, 결혼비용으로 홀랑 다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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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부터 집어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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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쩔까요? 은퇴, 은퇴란 말부터 지워버립시다. 인생 절반밖에 못 살았는데 은퇴라니요. 은퇴밖에 기대할 게 없는 직장이라면 ‘퇴!’ 하고 그만둬 버립시다. 당장 때려치우고 나와, 먼저 있는 돈을 탈탈 털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고 싶은 걸 사는 겁니다. 세계 일주가 꿈이었던 사람은 세계 일주를 하고, 스포츠카가 사고 싶었던 사람, 명품백이 사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그걸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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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돈으로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걸 다 하는 겁니다. 당연히 모자랄 겁니다. 그러니 더 돈이 벌고 싶어질 테고, 그래서 일을 하고 싶을 겁니다.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돈이 벌고 싶어져야 합니다. 또 말하지만 이게 중요합니다. 원하지 않는 거, 그냥 어쩔 수 없는 거, 해야만 하는 거를 위해서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열심히 하게 되지도 않습니다. 발전도 없고, 성과도 없습니다. 그냥 시간만 때우게 됩니다. 아.. 아까운 시간.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시간뿐인데 말이죠. 그러면서 은퇴하고 나서 해야겠다고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는 다 미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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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직 50년을 더 살아야 하니, 아직도 하고 싶은 건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계속할 수 있는 원하는 일자리도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것부터 사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인생이 만족스럽고, 입맛이 돌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일하고 싶어집니다.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를 위해 일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일이 즐겁지 않아도 결과가 즐겁고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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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쓰자, 먼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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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먼저 돈을 탈탈 털어, 원하는 거, 사고 싶은 거를 사야 합니다. 그래서 빈털터리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일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그만두냐구요? 다시 못 들어가면 배달하면 됩니다. 50세에 할 배달을 지금부터 하는 겁니다. 30세면 20년, 40세면 10년입니다. 10년 배달하면 도가 틉니다. 마을 지리를 샅샅이 알게 돼, 부동산 보는 눈이 뜨일지도 모릅니다. 동네 사람들과 전부 안면을 트게 돼, 구의원, 시의원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배달의 달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TV에도 나오고, 책도 쓰고 유명인사도 될지 모릅니다. 적어도 50세에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이고, 그것도 기술이라고 노하우가 쌓일 겁니다. 그런데 빈털터리가 돼야 배달할 수 있습니다. 다시 취직할 데가 없어야 배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좀 버틸만해도, 우리는 배달 안 합니다. 우리는 호떡 안굽습니다. 그러다 50세에 합니다.평생 모은 돈, 생고생 스트레스 이빠이 발라서 겨우 받은 명퇴금, 나는 한 푼도 못써보고 엄한 놈이 한 방에 다 날려 버립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어 배달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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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할 배달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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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의 법칙, 10년의 법칙.. 다 별거 아닙니다. 한가지 일을 10년 동안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똑같이 시작해도, 10년 뒤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게 되고, 저절로 그 분야에 주요 인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간을 버텨내려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거, 10년을 해도 지겹지 않은 거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은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은퇴하려면 사람들이 말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그게 뭐든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돈이 벌리든, 안 벌리든, 내가 원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반드시 있는 돈을 탈탈 털어버리고 시작해야 합니다. 똥줄이 타지 않으면 절대 시작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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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냥 할만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배수의 진을 쳐야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는 없지만, 관두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일일수록 당장 그만두어야 합니다. 아니면.. 아니면.. 50에, 60에 스쿠터 타게 됩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물려받을 유산이 있다면, 많다면, 그냥 맘대로 살아도 됩니다. 대신 부모님께 충성하며, 대충 살아도 됩니다. 물론 반드시 유산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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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했다며 사회환원하겠다는 부모님이 있으면 묻고 따져야 합니다. ‘땅따먹기 다 끝났는데, 어디 가서 땅을 파란 말이요’ 하고 말입니다. 부모 세대의 성공은 시대가 만들어준 어부지리입니다. 그때는 빈 땅이 수두룩했고, 깃발만 꽂으면 내 꺼였습니다. 그리고 땅따먹기는 이미 다 끝났습니다. 기라성 같은 대기업들조차 새로 먹을 땅이 없다며 남의 땅 뺏기를 하고 있는데, 자투리만 한 애들 땅마저 뺐고 있는데, 네 힘으로 성공하라니요? 국민 모두가 김연아, 박지성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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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달라, 당당하게 주장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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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는 어려워도,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게는 분명히 그럴 수 있습니다. 미래세대의 영토까지 싸그리 먹어버린 탐욕스런 할아버지, 아버지들에게 “내 땅 내노슈!!”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누진세든, 부유세든..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무료로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야 합니다. 평생 벌어도 집 한 칸 구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 대형 평수 아파트를 수도 없이 깔고 앉아 ‘요즘 애들은 게을러빠졌어’ 이따위 소리나 하는 기성세대에게, 당당히 ‘내 집 내놔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는 10년만 모아도 내 집 살 수 있었고, 아르바이트만 해도 등록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 비용에 몇 천만 원씩 쓰지 않았고, SUV가 혼수 필수품도 아니었습니다. 퇴직하기 전에 축의금 챙겨야 한다고 서둘러 결혼시켜 내쫓구선, 나 몰라라 하는 어른들은 혼구녕이 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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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식까지 팔아 한몫 잡고는, 놀지 말고 신문배달이라도 하라는 어른이 있으면, 신문보급소에 데려갑시다. 돌릴 신문도 없습니다. 요즘 누가 신문 봅니까? 탐욕스러운 그대들이 얼마나 탈탈 털어먹었는지, 자신들은 천한 직업 취급하던 환경미화원 선발에도 명문대 출신들이 몰려듭니다. 애가 공부를 못하면 대치동 엄마는 학원을 알아보고, 청담동 엄마는 과외 선생을 알아보고, 동부이촌동 엄마는 애 명의로 살 빌딩을 알아본다는데.. 물려줄 빌딩 없는 부모는 애 닦달해서 좋은 직장에 밀어 넣으려고 야단입니다. 10년이라도 다니면 다행인 직장에 들여보내려고 학원에, 대학에 줄을 세웁니다. 어차피 스쿠터 인생은 따논 당상인데 말입니다. 그 돈 모아 가게라도 하나 차려서 30년째 해왔더라면, 직장 못 잡고 헤매는 자식에게 이거라도 물려받으라며 근심을 덜었을 텐데, 자신도 60세에 쫓겨났으니 자식에게 물려줄 거라곤 명퇴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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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의 대물림, 은퇴의 대물림, 무얼 주고 무얼 받겠습니까? 물려줄 유산도 없는 부모를 두었다면, 그냥 두 손 붙들고 스쿠터 타러 가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스쿠터 타면 먹고야 못 살겠습니까? 자영업, 어차피 인건비 따먹기라는 데, 아버지, 아들 둘이 배달하면 입에 풀칠은 하겠지요. 받을 유산이 있다면 악착같이 받읍시다. 받을 유산이 없다면 악착같이 스쿠터를 타는 겁니다. 자빠져도 덜 쪽팔린 젊은 날을 하기 싫은 일하며 허송세월 하지 말고, 평생 할 수 있는 일, 평생 해도 지루하지 않을 일을 찾아 바닥부터 헤딩합시다. 그렇게 10년만 합시다. 그러면 그러면, 은퇴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10년 뒤엔, 대저택에서 외제차는 못 굴려도, 파고다 공원에서 무료급식 먹는 신세는 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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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 10년입니다. 은퇴 후, 10년을 위해 평생을 고생하던 아버지들의 시대는 끝나고, 10년을 고생해 평생 은퇴 없이 사는 희망(?)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10년간의 도전, 어릴수록 쉽습니다. 빠를수록 덜 쪽팔립니다. 하루라도 말입니다. 10년 뒤에 다시 이 글을 보고 후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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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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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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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