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잃어버린 기술, 쓰담쓰담 토닥토닥

 

외국에 나와서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 있습니다. 연인끼리 서로 등을 쓸어 주는 모습입니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자주 마주치고, 그게 너무 낯설어 눈에 자꾸 걸리다 보니,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연인들은 서로 쓰다듬어 주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보니 그런 광경을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수 십 년을 살았는데 왜 연인끼리 서로 쓰다듬어주는 모습이 이리도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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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엄만가? 누난가? 싶었는데.. 가만 보니 키스를 하네요. 얘네들이 아무리 개방적이어도 자기 엄마랑, 누나랑, 키스를 하지는 않을 테니, 것도 길거리에서.. 연인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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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깨를 쓰담쓰담, 토닥토닥해 주었던 기억이 있었던가요? 가만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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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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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갔나요? 쓰담쓰담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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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한국 커플들은 서로 쓰다듬는 행위를 잘 하지 않습니다. 주로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끌어안고 있을지언정, 나란히 앉아 상대의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공감하며, 위로의 손짓과 따뜻한 손길을 보내는 경우가 드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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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인 동작들에서 정서를 유추해보면, 남자나 여자나 서로 인격적인 교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결핍을 충족시키고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상대와의 상호작용보다는 내 감정과 욕구의 결핍과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연애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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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상대의 불행에 매우 낯설어합니다. 상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첫 번째 드는 생각은 ‘그럼 나는..’이니 말입니다. 아내가 아프거나, 남편이 암에 걸렸거나, 두 사람 중 누군가가 실직을 하거나, 큰 실패를 했을 때, 우리는 상대의 감정과 고통을 공감하려 하기 보다, 먼저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겉으로야 큰일이라고, 어쩌냐고 마음이 힘들겠다고 위로하지만, 속으로는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먼저 들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그러다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 한 배우자의 장례식장에서도 ‘혼자 가면 나는 어찌 살라고,’ ‘저 어린 것들을 두고 어찌 살라고’ 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그게 관용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보고 싶어 어찌 살라고’ 만이 아닌 줄은,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의지할 상대가 없어졌다는 말을 하고 있는걸,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돈 벌어다 줄 사람이, 집안일 해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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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강조하지만, 서로 의존된 관계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동반자, 함께 성숙해 가기 위해, 같은 길을 가는 친구가 아니라, 내 결핍을 채우는 보충제이자, 위기 때 나를 지켜 줄 보루로 서로를 여기기에, 상대의 고통과 실패 앞에 우리는 어린애처럼 ‘그럼 나는..’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쓰담쓰담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아니 그래서 우리는 쓰담쓰담이 목말라 얼굴도 모르는 네티즌들에게서 대신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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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담쓰담 하려면, 토닥토닥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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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쓰담쓰담 할 수 있는 배경은 일상 속에서 늘 ‘나’를 우선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모든 말이 ‘우리’로 시작하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모든 말을 ‘나’로 시작합니다.

I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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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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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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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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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그래서 내가 존중받기 위해 늘 ‘너’에 대해 묻습니다.

Would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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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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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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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그렇게 홀로 서고, 스스로 선 사람끼리, 서로 만나 상호작용하고 진짜로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 진정성이 무의식으로 표출되어 자연스럽게 쓰담쓰담 합니다. 우리는 어색한 쓰담쓰담이 이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이유입니다. 그래서 부럽습니다. ‘나’가 없이 살아온 우리의 한계이고, 경험해 보지 못한 신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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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없는 공동체는, 공동체가 아니라 집단에 불과합니다. 공동체는 ‘나’ 들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어 가는 것이고, 상호작용을 통해 더 큰 ‘나’로 확장해 가는 것이지, 개인을 묵살하고, 깡그리 뭉뚱그려서 혼합 죽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죽사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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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지는 인간 피라미드 쌓기가 아닙니다. 하나가 넘어지면 다 같이 넘어지는 2인 3각이 아닙니다. 각자 뛰어내렸다가 큰 원을 만드는 스카이다이빙이며, 자신의 싸움을 싸우다가 필요하면 하나로 합체하여 거대한 파워를 내는 독수리 오형제인 것입니다. 가족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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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고, 계약은 어길까 봐 하는 겁니다. 그리고 믿음은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쓰담쓰담 하는 손짓에 믿음이 실려 있습니다. ‘힘들구나..’, ‘걱정 마, 내가 옆에 있잖아..’하며 상대를 위로하는 몸짓에 우리는 일방적으로 의지하기보다 격려 받고 용기를 얻고, 힘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도망갈까, 버려질까 두려워, 꼭 끌어안으려 드는 외로운 고아처럼, 매달리고 업히는 일을 우리는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요? 내 감정, 내 의사와 상관없이, 버려질까 두려워, 모텔에 끌려 들어가는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내가 싫어질까 두려워, 불평 한 번,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절절 매는 쪼다 같은 짓을 언제 그만 둘까요? 의존적인 상대를 종처럼 부리고, 빨리 종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사탕발림과 과잉친절, 헌신으로 사람을 혹하게 하는 버릇은 언제 없어질까요? 동반자가 아닌 안전한 노예를 쟁취하기 위해, 비싼 돈과 노력을 들여가며, 스펙을 쌓고 출세를 하고, 무리하게 근육질 몸을 만들고, 끝도 없이 얼굴과 몸을 고치는, 뻘짓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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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쓸데없는 소모전은 언제나 끝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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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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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