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미생(未生) 그러니 반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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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층에서
남산타워를 뒤로한 채
서울역을 내려다보며
나도 있었는데..

같은 긴장
같은 오해
같은 압박
같은 시련
그리고
같은 성과를
내었는데..

우리가 달랐던 건,
네겐 우리가 있었고
내겐 우리가 없었다는 것

난 혼자였다는 것

네가 양말을 팔던
서부역 건너편
그 사우나에서
고된 밤을 나도 보내고
네가 상념에 젖어 거닐던
남대문 식당가를
나도 헤매었건만

네게는 우리가 있고
내게는 우리가 없었다.

너는 회사를 더 다닐 수 없었고
나는 회사를 더 다니지 않았다

그 잔인한 4월에..

그러나
네가 그토록 원했던
정규직에 묶여
석율은 점점 더 생기를 잃고
영이는 시달리다 차가워지고
백기는 건조한 채 창백해지고
김대리는 영혼을 잃어가고
마는 거야.

그러다
박대리처럼 행복하지만 두려운 가족을 등지고 도피처를 찾아 헤매게 되고
박과장처럼 알아서 살길을 찾다 위험해지고
마부장처럼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거나
최전무처럼 능수능란하나 외로운 기계가
되어 가는 거야.

그러니
네 등 뒤로 흐르던
그 노랫말처럼

그곳은 네 자리가 아니야
거기서 멈춰있지 마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

그런 수모도 견뎌낸 네가 내가
그런 설움도 견뎌낸 네가 내가
그런 압박도 견뎌낸 네가 내가
그런 시선도 견뎌낸 네가 내가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오르지 못할 산이 없다
이루지 못할 꿈이 없다

그러면
석율은 생기를 얻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영이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사람들을 감싸 안으며
백기는 탁월하고 멋지게 사람들을 이끌며
김대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박대리는 겸손과 배려가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박과장은 수고에 대한 보상과 능력에 대한 인정이 사람을 얼마나 성장하게 하는지
마부장은 강하고 거친 힘으로 부정과 어떻게 맞서는지
최전무는 탁월한 능력과 사리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기에서 보호하는지
보여주고
살아주고
느끼게 해주었으리라

그러니
그래야, 장그래야
너는 이제
너의 가능성을 폄하하는 이들에게
안그래라고 말하고
너의 능력을 보여주렴
너의 가치를 보여주렴

두려워 말고
날개를 활짝 펴서
멋지게 날아올라
그들이 볼 수 있게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오차장에게
그의 회사명 ‘이상 네트웍스’처럼
남의 회사에서
자신의 이상을 찾지 말고
자신의 회사에서
우리의 이상을 실현해 보자고
도전하고 보호해주렴
일이 아닌 철학으로..

그러면
오상식사원
오상식과장
오상식차장
오상식부장
오상식사장은
보여줄 거야
사람의 상식이 무엇인지
삶의 상식이 무엇인지
일의 상식이 무엇인지
관계의 상식이 무엇인지
너에게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줄 거야.

이제
너도
나도
우리도
남대문 자락
남산타워 아래
서울역 앞
그 공간을 떠났지만

여전히 해는 떠오르고
새로운 인턴들은
현실을 뒤로한 채
긴장하며 출근하고
어깨가 쳐진 동료들은
담배만 만지작
거리고 있으니,

잊지 말자
그래야
우리는 확실히 날아올라
인생은 안그래
실망하지 마
좌절하지 마
포기하지 마
말해주자
토닥여 주자
불질러 주자

그들의 어깨에서도
숨겨진 날개가 돋아나기를..

고마웠다
그래
끝까지 버텨줘서
이겨내 줘서
좀 많이..
아주 많이..

더할 나위 없었다

ziphd.net
2015년 1월 8일

ziphd.net
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