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만추.. 시애틀
만추(晩秋)에 시애틀에 왔습니다. 가을 같은 도시 시애틀은 다른 도시들과 달리 정적이고 고상합니다. 영화 <만추>의 두 사람이 우연히 머문 3일간의 시간 동안, 인생의 중요한 만남을 경험하게 해 준 도시,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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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는 사람과 사람이 우연히 만나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가슴을 열고, 직면하지 못했던 자신과 만나는 과정을 그린 운명과 직면에 관한 영화입니다. 남자는 쫓기는 신세입니다. 여자는 이미 죄값을 치르고 있는 수형인입니다. 두 사람은 시애틀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삶을 마주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쫓기는 신세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남자와, 모든 것이 드러나지고 자신을 억압하던 과거와 물리적으로 끊어졌음에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여자가 스치듯 잠깐 조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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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을 마주하는 게 두렵습니다. 거울을 자주 보지 않아 자신이 낯설기 때문입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녀일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공주는 거울의 말이 듣기 싫습니다. 포장된 자신보다 진실된 그녀가 더 아름답다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를 죽여야 했습니다. 나보다 아름다운 그녀를,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죽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독 사과를 먹인 그녀는 실은 자기 자신입니다. 포장되지 않은 자기 자신, 이미지가 아닌 백설의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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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 하길 두려워할까요? 가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닌, 사람들과 사회가 씌워 준 가면을 쓰고 너무 오래 살아와,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하기가 매우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입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생각을 읽습니다. 내 감정을 느끼고, 내 감각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총합된 나는, ‘거울에 비친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거울에 비친 나’와 ‘내가 아는 나’가 일치하는 사람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장을 벗은 맨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두려운 여인들처럼, 가면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가면 뒤의 진짜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울 속의 나’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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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려면 먼저 거울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화장발이 아닌, 맨 얼굴의 나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화장발로 사람들을 만나고 변장빨로 미팅에 나갔다, 맨 얼굴을 보여줄 수 없어, 남들보다 늦게 잠들고, 남들보다 일찍 깨어나야 하는 화장 미녀의 삶처럼, 우리는 거울 속의 인물로 살아가기 위해 매우 많은 수고와 피곤을 감수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은 포장된 이미지이지만,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이미지이고 나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는 이미지입니다. 자신감(感) ? 자신이 아닌데 어떻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정확히 말하면 ‘연기감’ 입니다. 내가 연기하는 배역에 대한 감(感)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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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포장해 준 이미지 속에 갇혀 살면 피부세포가 자꾸 죽습니다. 화장을 지울 때마다 맨 얼굴은 자꾸 문드러지고 주름이 집니다. 그래서 더 짙은 화장을 하고 더 과도한 변장을 합니다. 그럴수록 자신의 본 모습은 사라져가고, 변장된 이미지 속, 알 수 없는 누군가만 남습니다. 사실 나는 거울 속 그녀가 싫습니다. 동경하면 할수록 그녀는 내가 아니고,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들통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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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게 거울은 본래의 자신이 아름답다고 계속 직언을 합니다. 그래도 계속 거울을 찾습니다. 포장된 자신을 자꾸 들여다보고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할 수 없는 마법의 거울은 힘들게 또 얘기합니다.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 백설공주에게 말입니다. 그러나 포장된 자신을 동경하는 공주는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본 모습의 자신이 죽어야 자신의 가면이, 자신의 화장술이,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죽여가고 있습니다. 포장된 사회적 자아를 위해, 꿈꾸는 영혼의 자신을 매일매일 죽여가고 있습니다. 거울 속에서, 담배 연기 속에서, 1층 복도 화장실 옆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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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여자는 남편을 죽이고 감옥살이를 합니다. 남자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기다 결국 잡히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남녀처럼, 쫓기거나 구속당한 채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운명은 시애틀에서의 두 남녀의 72시간처럼, 잠깐의 틈 속에 불현듯 나타납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마음에 묻어둔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여자를 대신해, 남자가 말을 합니다. “남의 포크를 가져다 썼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죠.” 정작 남이 쓰기 좋은 포크로 살아온 건, 여자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녀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옛 남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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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주는 건 자신입니다. 가면인 내가, 가면 속의 진짜 나 자신에게 매일매일 칼을 꽂는 것입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상처를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의 포크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카르마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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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자를 직면시킨 남자는 잡혔고, 이제 여자처럼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누군가를 자기 자신과 직면시키고 자신은 누군가의 죄값을 대신 치르게 되는 일. 우리는 이를 구원이라 부릅니다. 남자와 여자는 시애틀에서 3일 동안 만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여자는 독이 든 사과 대신 포크로, 가면 쓴 자신을 직면하였고 백설공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백마 탄 왕자님은 사라지고, 그들이 만난, 시애틀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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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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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