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남자 혼자 하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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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는 환영(歡迎)입니다. 늘 새로 온 사람들이 거리마다 가득하고,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핑크빛 기대가 가득합니다. 언제나 신혼여행지 일 순위인 이 섬은 결혼의 섬이라 불려도 좋을 듯합니다. 여기저기 커플 티를 입고 쏘다니는 신혼커플들이 가득하고 이들을 환영하는 호의적인 인사 또한 와이키키 모래사장 모래알만큼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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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그렇게 새 인생의 시작을 축하하지만, 인생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두 사람의 몫입니다. 언제나 하와이 같다면, 우리는 들떠서 살다가, 심장마비로 죽어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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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것이,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것일 텐데, 하와이는 상승과 환희만 있는 것 같습니다. 핑크빛 신혼의 기대처럼 말이죠. 그래서 하와이는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환희는 짧습니다. 화려한 와이키키 거리의 흥분은 삼일, 사일.. 시간이 흐를수록 분주하고 정신이 없게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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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매일 떠들썩하게 만 살 수 있을까요? 천 년이고도 교토의 고즈넉함에 취해있다, 낮이고 밤이고 온통 시끌벅적한 하와이에서 나흘째, 글 한 줄 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런 사색도 성찰도 없이, 오로지 흥분과 들뜬 감정을 강요당한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듯해, 저는 하와이가 매우 피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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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의 섬 그래서 ‘호오포노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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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분위기의 외면과는 달리, 하와이의 역사와 내면은 우리만큼 아픈 사연과 깊은 성숙함이 묻혀있습니다. 하와이의 역사는 폴리네시아계 국가인 하와이 왕국(Aupuni Mōʻī o Hawaiʻi)에서 시작합니다. 하와이 왕국은 1782년 카메하메하 대왕이 하와이 제도의 다른 부족 국가들을 모두 정벌하고 세운 나라입니다.z
태평양 한가운데라는 지리적 이점에 더해서, 서구와의 교류도 활발했기 때문에 서구 문명을 꽤 많이 받아들여 상당한 수준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식민지화되지 않고 정식 국가로 인정을 받아 서구 국가와의 교류도 있었다. 이때 미국에도 많은 이민자가 와서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힘이 점점 커져서 하와이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자 위기를 느낀 역대 하와이 왕들은 영국, 일본 등 열강에게 미국을 견제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마지막 하와이 국왕인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미국인의 농장을 모두 국영화 조치를 해버리자 미국인들은 근처 미 해군 선박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그 즉시 수병 150명으로 하와이 여왕을 추방하고 하와이 왕국을 멸망시킨 후 미국에 편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 반제국주의자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였기 때문에 보류되었다.
결국 왕정을 무너트린 백인들은 자신들끼리 샌퍼드 밸러드 돌(Sanford Ballard Dole)을 초대 대통령을 추대해 임시로 하와이 공화국(Lepupalika ʻo Hawaiʻi)을 설립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1897년 합병조약을 체결한 뒤 미국령으로 강제 편입되어버렸다.
실상은 인종 차별이 엄청나다. 다만 피해자가 백인인 것일 뿐 하올리(haole)는 원래 이방인을 뜻하는 단어지만 지금은 백인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물론 나쁜 의미로. 호놀룰루에서도 백인들에 대한 공격이 종종 일어난다. 학교의 마지막 수업 날이 kill haole day라 불리니 말 다한 셈. 다만 피해자가 백인이어서 본토에서도 인종 문제라기보다는 개인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올리 남성과 비백인 여성 커플에 대한 경멸의 시선, 백인 아동에 대한 학교 내 왕따 등 본토에서의 인종차별과 달리 문화의 일부 내지는 백인들에 대한 복수라는 이름으로 넘어가지기도 한다. 하와이의 비백인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간혹 자기도 모르게 “본토에는 너무 백인이 많아”라는 진심(?)을 내뱉는 경우도 있다. [1]
하와이는 우리처럼 강제합병이라는 아픈 식민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진행형입니다. 1959년에 미국의 정식 주(州)가 되었고, 1993년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합병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답니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까지.. 참으로 하와이 섬의 20c는 혼돈과 혼란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하와이 출신 대통령까지 만들어 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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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하와이는 우리나라와도 매우 인연이 깊습니다. 하와이 주의 상징화는 무궁화이며,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도산(島山) 또한 하와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해방 이전에 주로 활동하고, 4,19이후 결국 노년까지 지내야 했던 섬이었습니다. 인하대학교의 교명도 인천-하와이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인하대학교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결성한 동지회가, 1953년 한인 기독학원을 폐교하고 그 건물을 매각하여 남은 돈 18만 달러를 미국의 MIT와 같은 공과대학을 설립하고자 하와이와 인연이 깊은 인천에 기증하여 인천 하와이의 앞 글자를 따서 인하대학교 설립의 초석이 되었다. [2]
‘사람의 영혼으로 돌아가는 땅’, ‘하와이’란 말의 뜻입니다. 서기 750년경 몇몇의 폴리네시안들은 전설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영혼의 고향을 찾아 먼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 정도의 마르케사스섬 주민들이 카누를 타고 2천 마일이 넘는 먼 항해 끝에 하와이 군도에 도착하게 된 것이 하와이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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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안들의 깊은 상처와 회복의 과정이 하와이 섬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외지인들은 그저 며칠을 머물다 가며 들뜬 휴가를 즐기지만, 어디를 가도 환영의 너그러움을 느낄 수 있는 하와이 섬의 영적 분위기는 ‘호오포노포노’라는 고대 하와이인들의 치유법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기억을 정화해 행복으로 이끄는 고대 하와이인들의 치유법, ‘호오포노포노’는 ‘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용서하세요’ 이 네 마디 말을 반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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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혼커플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핑크빛 로맨스와 화려한 해변의 기억은 뒤로 한 채,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타는 순간 시작될 치열한 장미의 전쟁 속에서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태도들입니다. 하와이에서처럼, 백마 탄 왕자님과 왕관 쓴 공주님의 들뜬 하루하루를 기대한다면, 일상에 도착하자마자, 하와이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시댁과 친정, 본가와 처가의 강제합병 시도와 치열한 정복전쟁의 폭격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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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와이는 환영(幻影)입니다. 환영(歡迎)은 여기서 끝이라고, 이건 꿈처럼 사라질 거라고, 그러나 대신 어쨌든 선택한 결혼생활, 잘 살아보려면, 이 네 마디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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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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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신을 정화하고, 환경과 공동체를 가꿔온 하와이인들의 오랜 수고가 전세계인들의 휴식처로 가장 각광받는 기념비적인 장소를 탄생시킨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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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저는 아직 제대로 쉬고 있지 못하네요. 어설프게 해변에서 텀벙텀벙하다, 핸드폰을 바닷물에 빠뜨리고, 서양인들처럼 태닝 흉내 내다 온몸에 벌겋게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전 세계 음식들이 다 모여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풍성한 하와이의 음식들은 입에 맞지 않아 서걱거리고, 시끌벅적한 거리 풍경은 정신 사나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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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시간과 고단한 일상만을 반복하던, 젊은 노동자의 서툰 휴식 놀이가 스스로도 우스꽝스러워 보이네요. 그러나 저만 그런 건 아닌 듯, 일본인들의 로망이라 불리는 하와이 섬의 위상만큼 어딜 가도 채이는 일본인들 또한 어설프게 노는 모습은 마찬가지입니다. 멋지게 웃통 벗고 서핑과 일광욕을 즐기는 서양인들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부럽기만 한 건, 저 뿐만이 아니라 위안이 됩니다. 명품 비치웨어를 근사하게 차려 입고는, 어설프게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서양인들 노는 모습만 구경 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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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쯤 하와이를 하와이답게 즐길 수 있게 될까요? 고난이(?) 익숙한 제게 즐거운 놀이(?)는 언제쯤 편안하게 다가올까요? 역시, 남자 혼자 하와이는.. 올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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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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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