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시인께 담배 한 대 픠워 올립니다
오늘은 아침에 눈을 뜨자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윤동주와 정지용 시인이 다녔던 그 학교. 지난 교토 체류 때 오가는 길에 이따금 들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곤 했던 곳입니다. 이 대학에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한일 관계가 하수상한데, 29세,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아름다운 청년에게 문안인사나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이라 가는 길을 검색하다 보니 오늘이 윤동주가 일본경찰에게 체포당한 바로 그날이더군요.
아.. 그래서
1943년 7월 14일. 광복을 불과 2년 앞두고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윤동주는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정체 모를 주사를 맞으며 생체실험에 시달리다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안타까운 청춘을 뒤로하고 순국합니다.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요.다들 살어가는 사람들에게
힌 옷을 입히시요.그리고 한 寢台(침대)에
가즈런이 잠을 재우시요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요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게외다._ 윤동주, [새벽이올때까지]
아이는 꼭 이루고 싶고 부모는 늘 살리고 싶습니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것은 행복한 인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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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왓든 사나이,
幸福(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십자가)가 許諾(허락)된다면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읍니다._ 윤동주, [十字架(십자가)]
괴로웠으나 행복했던 그 사나이처럼 시인도 시를 쓸 수 있어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감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00여 편의 시를 남기기 위해 별에서 날아왔던 사나이에게 행복은 슬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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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_ 윤동주, 「팔복(八福)」
슬퍼하는 자는 살아있는 자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참 인간이요.
슬퍼하는 자는 진정한 이웃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기쁨을 아는 자요.
슬퍼하는 자는 눈물 흘리는 자입니다.
슬퍼하는 자는 듣는 자이며,
슬퍼하는 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자요.
슬퍼하는 자는 예언자입니다.
저희가 그래서 슬픈 것입니다.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옷자락물결 속에서도
가슴속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
이밤을 더부러 말할이 없도다.
거리의 소음과 노래 부를수없도다.
그신듯이 냇가에 앉어스니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맥기고
가마니 가마니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_ 윤동주, [산골물]
시인은
괴로운 사람에게 괴로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놓아두고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합니다.
바다를 건너 바다를 건너
어머니가 계신
고향 땅에 고향 땅에
다다르고 싶겠지요.z
어머니!
젖을 빨려 이마음을 달래여주시오.
이밤이 작고 설혀 지나이다.이아이는 턱에 수염자리잡히도록
무엇을 먹고 잘앗나이까?
오날도 힌주먹이
입에 그대로 믈려있나이다.어머니
부서진 납人形(인형)도 슬혀진지
벌서 오램니다철비가 후누주군이 나리는 이밤을
주먹이나 빨면서 새우릿가?
어머니! 그어진손으로
이 울음을 달래여주시요._ 윤동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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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가슴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것은
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
來日(내일)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靑春(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하나에 追憶(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憧憬(동경)과별하나에 詩(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식 불러봅니다. 小學校(소학교)때 冊床(책상)을
같이 햇든 아이들의 일홈과, 佩(패), 鏡(경), 玉(옥)
이런 異國少女(이국소녀)들의 일홈과 벌서 애기
어머니 된 게집애들의 일홈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일홈과, 비둘기, 강아지, 토
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잠 “라이넬.마리아.릴케”
이런 詩人(시인)의 일홈을 불러봅니다.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북간도)에 게십니다.나는 무엇인지 그러워
이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우에
내 일홈자를 써보고,
흙으로 덥허 버리엿습니다.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부끄러운 일홈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그러나 겨을이 지나고 나의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내일홈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외다._ 윤동주, [별헤는 밤]
시인에게 별은 죽은 막냇동생이자 고국에 두고 온 친구들, 정취들, 생명들입니다. 그리고 60여 년이 흘러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자신의 청춘을 앗아간 땅에는 조국의 말이 표지판마다 새겨지고 내 나라의 노래가 사람들이 몰려드는 쇼핑몰마다 울려 퍼지며, 자신을 괴롭힌 원수들의 후손들이 한글을 배우겠다고 학원마다 몰려드는 행복한 광경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헤아렸던 예언적 헤아림입니다.
이제 수없이 헤아렸던 그 별 하나가 노래가 되고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되어 일본인의 가슴을 적시었습니다. ‘마침내 겨울이 지나고 시인의 별에도 봄이 와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 시인을 무덤에 가두어 버린 이 땅에 시인의 언어가 가득하게 덮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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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_ 윤동주, [참회록]
시인의 별로 돌아가야 할 때, 시인의 별이 되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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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직 피어나지 못한
조국의 꽃다운 청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대들은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어느 별에서 왔기에
그토록 무기력하며
그토록 덜덜덜 끌려 다니고 있느냐고..
시인이 헤아리던 그 별들은
어디로다 빛을 잃고
고시원과 학원을 전전하고 있느냐고..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은
조국의 청춘들에게
죽어서라도 별이 되어
다시 빛나주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그리고
부모, 가족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자신의 길을 걸어 간
모든 별의 후예들에게
마음을 다해 경의를 표합니다.
교토에서
한없이 슬프고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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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가와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바시여라,시원치도 않어라.역구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제비 한 쌍 떳다,
비맞이 춤을 추어,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_정지용 [압천(Kamogawa, 鴨川)]
도시샤 대학 교정에 시인 윤동주와 나란히 서 있는 윤동주가 그리 좋아했다던 시인 정지용의 시비에 적힌 시는 [압천]입니다. 교토를 유유히 관통하며 흐르는 교토의 젖줄 가모가와 강가에 앉아 고국을,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시인들에게 담배 한 대 픠워 올립니다.
처음 피워 본 담배 맛은
아침까지 목 안에서 간질간질타.어젯밤에 하도 울적하기에
가만히 한 대 피워 보았더니
– 윤동주 [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