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안녕, 바다

[CITY 100] Oct 12. 2022 l M.멀린

“평화로워 보이시네요.”

그는 글을 쓰고 있는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뭐라 말을 더하려다 씨익 웃고는 즐기라며 테이블을 마저 정리하고 지나쳤다. 크루즈의 스텝들이 모두 강력한 친절 교육이라도 받은 듯 미소가 넘치지만, 한가롭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그의 눈에도 꽤나 평화롭게 보였나 보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바다는 그 평화를 가득 품고 있는 것인가. 호수처럼 잔잔한 지중해 위에 떠서 끝없이 변화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왜 내가 진작 바다 위에 있지 않았는가, 왜 나는 바다를 떠나 이토록 메말랐던가 안타까운 감정이 밀려온다. 물이 부족하다며, 아니 자신만 생각하면 부족한 건 아닌데, 나무가 너무 많아서, 물을 대야 할 숲이 너무 가득해서 늘 소진되는 거라고. 마법사의 사주가 그렇다고. 그래도 물을 흘려보내는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들은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메마른 눈으로 쳐다보고, 본능은 막을 수가 없어서 내 목을 축이기에도 모자란 물을, 물을 자꾸 부어대는 거야. 마른 숲에. 자라나느라 끝도 없이 벌컥대는 싹트는 숲에. 그렇게 살았거든. 물 대는 버릇을 멈추지 못하고. 그런데 바다 위에서,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위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물천지인 바다 위에서 깨달은 거야. 여기였구나, 나의 우물이 여기였구나, 아무리 퍼마셔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크루즈 사업을 하는 후배 탓에 크루즈 얘기를 수없이 들어도, 차라리 남들에게 추천해 줄지언정, 나는 탈 마음이 정말 1도 없었다. 그건 말이지, 대륙을 달리는 마법사에게 물 위를 둥둥 떠 있는 건 매우 한가해 보인단 말이지. 그건 달리는 말에게 미안한 일이고, 걷는 사람에게 조바심 나는 일이고, 옴짝달싹 못하는 유배 되는 일 같고. 그런데 어쩌다 오른 크루즈에서, 그리고 잘 훈련되었겠지만, 여유와 평화가 넘치는 크루즈의 분위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 바다에 매혹되고 말았어. 아, 바다라니, 물이라니, 나는 이제 목을 축이는구나. 낮밤을 내내 내려다보고 앉아있어도 질리지 않는 바다, 바다, 바다.

“형은 참 감상적이시네요. 보통 크루즈를 타도 처음에만 나오고 이렇게 발코니에 내내 앉아 있는 사람 별로 없어요.”

나는 목이 말라. 내 마음은 촉촉해질 틈 없이 언제나 바짝 말라 있거든. 즐길 거 많고 먹을 거 넘치는 크루즈에서, 사람들은 좁은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하늘빛을 즐기지만, 목마른 마법사는 내내 흐르는 바다를 바라보는 거야. 광활한 바다에 지친 마음을 던지는 거야. 그렇게 목을 축이는 거야. 갈증을 해소하는 거야. 900년 만에.

바다 사람은 무엇을 가질까? 언제나 하나 가득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바다가 이렇게 넓은데 무얼 더 가지고 싶을까? 육지는 나를 밟으라고 달리라고 유혹하지만, 바다는, 이 바다는 내게 그저 떠 있으라고, 아무 생각 말고 그저 둥둥 떠 함께 흐르자고 속삭이지. 나는 바다의 유혹에, 땅의 손짓에 어쩔 줄 모르지만. 육지에게 너는 너무 거칠어 내 살갗을 늘 갈라지게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밟으며 서 있을 거라고, 바다에는 나무가 없으니 숲이 없으니. 바다에게는 그래도 나의 고향은 여기라고, 그러니 지금의 나는 좀 쉬어야겠다고. 너의 품에 누워 마른 마음을 좀 축여야겠다고. 작은 물통을 가졌지만 하나 가득 채워 다시 육지로 가야겠다고. 숲에게 나무에게 가야 한다고.

운이 좋았다.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크루즈에 타고 게다가 스위트로 업그레이드되는 바람에 두 배의 발코니를 가지게 되었다. 스위트 객실 손님에게만 주어지는 각종 특별 서비스들, 웰컴 드링크와 미니바는 물론이고 런드리 서비스까지 Just Free. 별도의 공간에서 특별한 서비스와 메뉴들이 제공되는 디너 서비스까지. 벌써 크루즈를 몇 번이나 탔는지 모를 후배마저 감동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특급 서비스가 주어진 건, 바다의 은혜일까? 바다의 보상일까? 마법사에게, 지친 마법사에게. 그러나 그 모든 혜택에도 가장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는 건, 역시 바다, 바다, 바다.

그래도 여기서 나는 손님이라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삶은 이 시대에 부의 척도와 같은 거라고. 그러나 이제까지 수많은 바다 사람들이 거친 풍랑과 싸우고, 넘치는 파도와 싸우면서도 여기를 떠나지 못한 것은 우리의 고향이니까. 여기 끝도 없이 무한히 주는 바다를 영원히 떠나 살 수는 없는 거니까. 다시 육지로 향하며, 바다의 품은, 어머니의 품은 지친 마음을 축이러 오는 거니까. 세상은, 대륙은, 여전히 도전장을 내밀고 그저 둥둥 떠 흘러가려는 마음을 돌려세우는데. 나는, 마법사는, 다시 숲으로, 그 속을 알 수 없는 나무들 사이로 물을 대러 가야지.

안녕, 바다
ziphd.net
ziphd.net
위즈덤 레이스 

 이전글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