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자전거 도둑
[MOVIE100] Oct 16, 2021 l M.멀린

생각해보니 인생의 어느 때에 낭패스러운 감정이 드는 순간에, 나날들에, 마법사의 곁에는 늘 자전거가 있었다. 아니 자전거를 찾았다. 무의식적으로. 자전거 위에 올라타 하염없이 내달리다 보면 낭패스러운 감정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했다. 낭패스러운 감정은 발목을 붙들리는 듯하니까.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기적의 산물이 아니고서야 우주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기적도 그렇지. 지나고 보면 ‘아, 공짜가 아니었네.’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에게도 그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수많은 실업자들 중에 운 좋게 직업을 얻게 된 아버지는 이제는 가난 끝이라며 기뻐했지만, 자전거가 없으면 그 가난은 끝나지 않는 거다. 하필 그걸 담보 잡혀 버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구원은 가족에게서다. 전후의 패전국에서 국가의 돌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일 테고 각개전투에 나선 개인들은 가족만이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리고 가족은 덮고 자던 이불보를 기꺼이 내어주고 모두의 목구멍을 위해 담보 잡혔던 자전거를 찾아오기로 한다. 다행히 이불보를 찾기 위한 담보금액은 가족수당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가족을 위해.
그러나 가족을 위해 구원과도 같은 자전거를 잃어버렸으니 이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해 헤매고 다니는 일요일 하루 동안의 여정 속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다. 아들과 함께.
아버지 : 자전거만 찾았더라면… 다시 돈을 벌고 잘 살 수 있을 텐데… 생각해 봤는데, 보여 줄게. 초봉이 12,000 리라로 시작해서… 죽 적어 봐. 12,000리라, 잔업 수당 2,000 리라고, 가족 수당이… 하루 800리라. 800리라를 30일로 곱하고.. 모두 더해 봐. 더 바랄 게 없잖아? 하루아침에 그걸 잃으라고? 그걸 잃고 싶지 않아. 왜 꼭 찾아야 하는지 알겠지? 못 찾으면 우린 먹고살지 못해. 어떻게 해야 하겠니?
아들 : 우린 그걸 찾을 거예요. 우리 매일 시장에 나가 봐요.
운이 좋았던 거다. 모두가 직업이 없는데 아버지는 직업을 얻었고 자전거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걸 잃어버린 건 죽는 일이 아니라 운을 잃는 일이다. 대가를 지불할 수 없으면 나의 운이 아니겠지. 그런데 그걸 다시 붙들려고 발버둥을 쳐봐야, 잡힐 듯 말듯 해봐야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걸 꼭 쥐려고. 내 것이 아니었을 그것을 꼭 쥐려고.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족은 돌보지 못하고 아들은 빗길에 넘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채인다. 그리고 곤경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는 일은 모두 아이의 몫이다.
누가 뭐랄까. 세상의 모든 가장들이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살다 낭패스러운 상황에 갇혀 버리고 낙망한 채 자기가 지키려던 가족들로부터 멀어지는데. 이 가족은 행복하게도 모두 아버지를 꼬옥 쥐고 있다. 책임감에 몸부림치는 아버지를 위해 정작 애를 쓰는 건 아내와 아들, 가족들이다. 그리고 그건 행복인 거야.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오히려 영화가 내내 보여주는 수많은 실업 인파 속 아버지는 그들보다 조금은 나은 행운의 사나이였고, 끝까지 자신을 꼬옥 쥐고 있는 가족들과 함께인 행복한 사나이였다. 애를 쓰다 못해 얼굴이 먼지와 눈물로 뒤범벅이 된 아들이 그의 손을 꼬옥 쥐고 놓지 않고 있으니. ‘우린 그걸 찾을 거예요. 우리 매일 시장에 나가 봐요.’ 이런 아들은 자전거보다 더 든든하다. 그만 그걸 모른다. 부모보다 자식의 사랑이 더 크다. 세상에 유일하니.
아버지는 자전거를 찾았을까? 아버지는 자전거를 다시 구했을까? 아버지는 직업을 되찾았을까? 직업을 잃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버지와 가족을 이어주는 건 12,000 리라가 아니라 함께 하는 손이고 붙들고 놓지 않는 마음이다. 그러니 이 가족은 해피엔딩. 비록 자전거는 잃었더라도. 가족수당은 받지 못해도.
어느 해 가을 교토의 어느 골목에서, 한겨울 한강 변의 어느 자전거길에서 마법사를 안고 바람을 가르며 시름을 달래 주었던 자전거는 지금은 어느 것도 마법사의 곁에 남아 있지 않다. 늘 자전거는 떠나가고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났다. 그것은 붙들지 않아도, 찾지 않아도 그것이 필요할 때 나타났다 사라진다. 하지만 마법사는 어릴 때부터 그것을 동경했다. 발로 구르면 나아가는 그것. 어디든 데려가 주는 그것. 그런데 그것은 잘 사라지고 떠나간다. 누군가 훔쳐 가기도 하고. 놓을 곳이 없어 팔려 가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좋아하는데. 언덕과 산이 많은 이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지지가 않는 그것을 이제는 나도 갖고 싶다. 발달한 기술은 전기로도 달리게 해주니 언덕과 산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것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더더욱. 이제 다시 마법사에게도 자전거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시름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꼬옥 쥐고 놓지 않을 손들을 위해.
위즈덤 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