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가 되면
[06日] Jul 02, 2021
사람들은 외롭다고 게으르다고 말하지만, 실은 나는 고립되어 있다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이 고립되어 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자신이 루저임을 인정하는 듯하고 누군가에게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말한다. 나는 외로워. 나는 게을러.
고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외롭지 않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 외롭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군중 속에서도 고독감을 느낀다. 고독감은 고립감과 다르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고립감은 물리적으로만 둘러싸여 있을 뿐 마음을 나누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외롭다는 건 고립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려면 연결되어야 한다.
고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게으를 새가 없다. 분주하다. 연결된다는 건 준비해야 할 일투성이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다. 심지어 혼자서도 바쁘다. 고립이란 꼭 사람과의 단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대상은 다양하다. 동물일 수도 전자기기일 수도 있다. 취미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고립감에서 풀어지게 하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대상이 사라지고 단절되면 게을러진다. 마음을 쏟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게으름은 모두 마음을 쏟고 마음을 받고 하는 상호작용이 멈추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연결이지 습관이나 태도가 아니다. 고치라고 다그치지 말라는 얘기다.
고립된 사람은 강퍅해진다. 마음을 주고받고 싶지만 대상이 마땅치 않고, 자꾸 고립되다 보니 혼잣말만 하기 때문이다. 소통하는 법을 잊게 되고 존재감이 자꾸 희미해지니 불안해진다. 불안은 방어기제를 자꾸 만들어 내고 타인의 접근반경을 점점 넓게 차단해 가기 마련이다. 접근금지. 다가오면 쏴버림.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우리는 고립된 이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미안하다. 감히 구원이라는 말을 쓴다. 너의 처지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늪에 빠져드는 너를 무슨 수로 건져낼까? 게으르렴. 외로움으로 무장한 채 가까이 오면 다 갈겨버리렴. 우리는 그냥 지나칠 테니.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려면 일단 기절시키는 게 상책이다. 자칫 손을 내밀었다간 불안이 모두를 삼켜버려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니까. 그런데 무슨 수로 기절시킨단 말인가? 인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운명은 가혹한 채찍을 내리친다. 뭔가 일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괜히 터져 나오는 게 아니다. 고립된 통에 에너지가 축적되었으니 폭발은 당연한 수순이다. 세상의 모든 힘은 가두면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볼썽 사나운 모습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름은 터뜨리기 좋은 시기다. 이 시기에는 뭐든 터져 나온다. 땀도 불만도 갈증도 원망도 터져 나온다. 그리고 날씨 탓을 하면 된다. 그러면 좀 게을러도 용서가 되고, 외로운 이들조차 더위 탓에 슬슬 기어 나온다. 방구석이 얼마나 더운가.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틀어놓아도 여름날 방구석에서 느끼는 고립감만큼 지독한 것이 또 없다. 게다가 여름밤은.
니들 이제 나올 때가 됐다. 춘자가 여름밤을 화려하게 꾸며놓고 기다리고 있단다. 멤버스 온리이긴 하지만, 내민 손을 뿌리치는 춘자가 아니다. 게다가 20세기 소년은 참으로 관대하다. 그에게 손절을 당하는 이들이라면 괴물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이 황홀한 20세기의 여름밤을 방구석에서 고립감에 치를 떨며 보내지 말고 나오라. 일어나 나아오라. <20세기 소년>의 포탈을 통해 외로울 새도 게으를 새도 없는 이상한 나라로 나아가자. 동동 동대문이 열렸다. 남남 남대문이 열렸다. 열두 시가 되면은 문이 닫힌다. 여기는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 장충동이다. 8월 31일 12시가 되면은 문이 닫힌다. 그러니 어서 어서 여기 여기 붙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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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