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앞바다에 리튬이 떠도 컵이 없으면

2019.02.20 


어떤 나라의 팔자

볼리비아는 남미 최대의 빈국입니다. 또한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정치는 매우 불안정해서 1825년에 독립한 이후 정변이 185년간 200여 차례나 일어났으며, 게다가 그마저도 평균 9개월에 1번 꼴로 쿠데타가 터지며 정부가 전복된 것이 190번이라고 합니다. (나무위키)

뭐 더 볼 게 있겠습니까? 이 나라 잘 사는 게 더 이상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주변국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1836년에는 페루와 편먹고 칠레,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하고, 1879년에는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해 태평양 해안 지대를 모두 빼앗기고 내륙 국가가 되고 말아버렸습니다. 브라질에게는 주요 고무산지인 아크레를 강탈당하고, 1932년에는 석유가 대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그란 차코’ 지역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파라과이 전쟁을 벌였다가 10만 명에 육박하는 사상자를 내고는 독립 당시 영토의 40%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체 게바라도 실패하고 사살당한 나라, 볼리비아의 역사입니다.

식민지로서 스페인에 수탈당한 이전의 역사를 빼고라도 볼리비아의 현대사 또한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냥 참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역사를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오며 힘없는 군소 국가들의 삶이 만만치 않은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볼리비아만큼 지독스럽게 팔자 사나운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생에도, 더럽게 팔자 센 인생에도 쨍하고 볕들 날이 있을까요?

인생을 살다 보면 능력과 기술, 노력으로도 되지 않고, 운으로만 가능한 국면들을 수도 없이 만나고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원망하지만, 타고난 운명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겁니다. 그래서 팔자 탓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볼리비아의 팔자란 근현대사만 놓고 보아도 장난 아니게 빡센 팔자임을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생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팔자라는 것이 육십갑자를 놓고 순환하며 10년을 단위로 또한 순환하니, 위가 되었다가 아래가 되기도 하고 하늘로 치솟았다가 소나기를 맞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초년 운이 좋았던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르느라 중년, 말년을 고생하기도 하고, 지지리 복도 없이 살아온 누군가는 말년에 이르러 편안한 노후를 맞이하게도 됩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라도 ‘그래 저 친구 복 좀 받아야 돼. 정말 고생했어.’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기도 합니다. 볼리비아가 좀 그렇습니다. 저 치고받고 싸워대는 대가리들이야 지 선택이라 그렇다 치고, 불쌍한 서민들의 인생은 참으로 팍팍하기 그지없는 팔자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싶은 겁니다. 과연 이런 생에도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올까요? 아니 해 뜰 날 있기나 했을까요?

그런데 그런 빡센 팔자 볼리비아에 쨍하고 해가 떠버렸습니다. 바로 리튬이 발견된 것입니다.

 

리튬 Li-ion 배터리. 이런 기호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휴대폰 배터리에 표기되어 있는 저 기호 말이죠. 전기자동차, 휴대폰의 전성시대에 그 배터리 원료로 사용되는 리튬은 그래서 ‘하얀 석유’라고 불리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 리튬의 매장량 70%가 안데스 산맥에 매장되어 있고, 그중 볼리비아의 리튬 매장량이 세계 최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리튬(Li)은 우주 빅뱅 때 수소 헬륨과 함께 생성된 은백색 금속으로 1817년 스웨덴의 아르프베드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리튬은 수소폭탄의 재료인 동시에 항우울제, 치매예방제의 원료로 쓰일 뿐만 아니라 물에 뜰 만큼 가볍고 쉽게 자르고 펼 수 있어서 전기 자동차, 휴대폰 배터리의 주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리튬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싼 물질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하얀 석유’가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 우유니 일대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매장량으로 말이죠. 말 그대로 황금을 깔고 앉아 있었던 겁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쓸 줄도 모르고, 일단, 아무튼, 황금밭에서 소금을 캐고 있었던 겁니다. 발밑에서 말 그대로 하얀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이 지역을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그러나 볼리비아, 그리고 졸지에 부자가 되게 생긴 볼리비아인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저 눈앞에 새하얗게 펼쳐져 있는 이 하얀 석유를 어찌할 줄 모르고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대 리튬 매장량이 발견된 볼리비아의 포토시, 우유니 일대는 이미 오래전에 은광산으로 맹위를 떨치던 곳이었습니다. 1541년 은광이 발견된 이래 엄청난 양의 은이 채굴되었고, 채굴된 은은 모두 스페인으로 흘러들어가 버렸습니다. ‘스페인에 은으로 된 다리를 만들 수 있고, 죽은 원주민들의 뼈로 또 하나의 다리를 건설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은 오히려 볼리비아인들에게는 재앙이었습니다.

식민지 국가로서 겪어야 했던 수탈의 아픔은 그렇다 쳐도, 복이 재앙이 되는 일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부를 쌓는 일, 그것은 단순히 운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부를 관리하고 축적하고 증대하는 일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이때 ‘운7기3’에서 더 중요한 것은 부를 관리하는 기술3 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일 때 더 그렇습니다.

누구나 인생에 3번의 기회는 있다고 하고, 따지고 보면 아무리 팔자 센 인생도 쨍하고 해 뜰 뻔 했던 순간들이 찾아보면, 되새겨보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순간으로 지나가버리거나 축적되지 않고 날아가 버린 것은 모두 제 탓입니다. 물론 축적의 방식과 활용의 방법에 따라 그 양상이 천차만별이겠으나, 부를 축적하는 일, 기회를 활용하여 다음 기회로 이어가는 일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먼저 그것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회를 노리는 습관. 그리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함. 그리고 잡은 기회를 뿌리내리게 하는 집중력. 거기에서 많은 성공과 실패가 갈림길을 맞습니다. 그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면서도 실은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인생의 전부입니다. 선택 말이죠.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떻게 선택하고 있는가는 바로 그 사람을 보여주는 전부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자신과 운명에게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볼리비아는 이미 한 번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은 광산 말이죠.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그것은 그들에게 아픔과 좌절의 상처로 남았고 그 이후의 많은 시간을 빼앗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절망하고만 있었다면 다시 찾아온 리튬의 기적은 상처를 재현시켜줄 뿐일 겁니다. 또 빼앗기겠죠. 또 당하고 손가락만 빨겠죠. 냉혹한 국제질서에, 악착같은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에, 그리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의 유혹에..

그런데 볼리비아, 일단은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에게 이 전기자동차, 휴대폰의 시대가 늦게 찾아온 것은 천만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균 9개월에 1번씩 터지던 군사 쿠데타의 시절에 리튬의 전성시대가 찾아왔다면, 그대로 자원을 헌납하고 몇몇 독재자와 다국적 기업들이 그 부를 독식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뒤늦게 찾아온 행운은 그들에게 숨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게 되었습니다

 

농사꾼 출신 원주민 대통령 모랄레스

2006년 볼리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당선됩니다. 그는 남미 좌파 세대의 마지막 세대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국호에서부터 공식적으로 다민족 국가를 표방하며 (2009년 헌법 개정 당시 ‘볼리비아 공화국’에서 ‘볼리비아 다민족국’으로 변경) 본격적으로 원주민과 메스티소 모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한 국민으로 포용해 가는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볼리비아의 주요 수입원인 탄화수소 사업과 전력망, 통신을 국유화하며 재정 수입을 개발 사업에 재투자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또한 교육정책을 통한 문맹률 저하, 관공서와 국영기업의 절차 간소화, 토지의 재분배 및 토지등록제의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을 적극 펼쳐, 도시의 극빈층이 24%에서 14%로 감소하고 시골의 극빈층은 63%에서 43%로 감소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덕분에 모랄레스 집권 이후 볼리비아는 4~6%대의 성장률로 남미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최저임금은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를 추월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리튬 복권 당첨까지! 샤사샥!!

이런 지도자를 국민이 가만 둘리 있겠습니까. 코카잎을 재배하던 농부 출신의 이 원주민 대통령을, 볼리비아 국민들은 2009년 재선에서 64%의 지지를 몰아주며 당선시켰고, 2014년 3선에서도 61%의 득표율로 당선. 그리고 지금은 2019년 4선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랄레스가 올해 2019년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2025년까지 무려 20년간의 집권을 기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장기집권이라면..)

어쩌면 볼리비아인들에게 행운은 리튬이 아니라 모랄레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리튬 개발에 관해서도 존엄과 주권을 갖춘 산업화를 다짐하면서, 외국 기업의 손을 빌리지 않고 볼리비아 국영 기업의 힘으로 리튬을 채굴하고 이를 가공해 배터리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하며, 외국에 의한 국가 자원의 ‘약탈’에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또한 볼리비아 정부가 리튬으로 만든 모든 프로젝트 처리 및 제조 제품에서 동등한 파트너가 되도록 요구하면서 외국인 투자에 엄격한 요구 사항을 부과했습니다.

체 게바라도 실패한 이 나라에서 원주민 출신 대통령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요? 기술의 발전이 그들에게 선사한 이 ‘리튬 대박’에 모랄레스는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얀 석유’가 될지 아니면 한때 히트칠 뻔했던 원자재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새로운 배터리 원료의 대체재가 나온다던가 국제사회질서의 폭압적인 횡포로 경제가 고립된다던가 하는 변수는 언제든 대두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볼리비아 국영 기업의 힘만으로 리튬을 개발하겠다는 선언은 자칫 호언장담이 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볼리비아의 리튬은 다른 지역의 리튬과 달리 마그네슘과 다른 원소의 함유율이 높아 처리하기가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추출 과정에서 벌어질 환경파괴에 대한 대안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볼리비아는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한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법의 이름은 [어머니 지구 법]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를 다국적 기업의 마구잡이식 개발에 대응할 만한 법규정을 마련된 것일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리튬을 채굴, 개발할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결국 리튬을 개발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외국, 다국적 기업과 손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 독일, 테슬라 등과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사막, 말 그대로 우유니 Uyuni
 

존엄과 주권을 갖춘 행운

볼리비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모랄레스는 과연 무자비한 국제사회의 질서 속에서존엄과 주권을 갖춘 산업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요? 그를 뽑은 볼리비아의 국민들은 고생 끝에 복락을 누리는 행운을 경험하게 될까요? 아니면 또 한 번의 거친 혼란 속에서 모든 걸 빼앗기고 말게 될까요? 사람들은 행운과 기회를 원하지만, 막상 그것이 쏟아졌을 때 그것을 받아 담을 컵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뜨면 뭐 하겠습니까? 컵이 없으면 마실 수가 없는 데 말이죠. 컵도 컵 나름입니다. 컵의 크기에 따라 내 복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복이 쏟아져 내려도, 맨손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좋은 날들을 그냥 지나쳐 보내게 되는 게 대부분의 인생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기다립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심지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직관을 따라, 운명을 따라 자신에게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누군가는 그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냅니다. 그리고 성장시켜 냅니다. 그것은 염원하는 자에게만 보입니다. 그것은 기다리는 자에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게 기회였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칩니다. 그리고 팔자 탓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팔자도 기회가 있습니다. 팔자는 순환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모든 팔자에 봄이 기다리고 있으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가을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겨울이 오는 것도 역시..

그렇게 받아 낸 행운을 존엄과 주권을 갖춘 부와 결과물로 성장시켜 가는 사람에게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충만합니다.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진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성장해 나온 자존감과 자신감 만이, 행운을 존엄과 주권을 갖춘 권리로 가꾸어 줍니다. 졸지에 부자가 되어 천박한 자기인식을 만천하에 드러내다 개망나니 취급을 받는 자본주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게 해 주는 것입니다.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에 리튬 사이다가 떴습니다. 볼리비아인들에게 그것을 받아 마실 컵이 준비되어 있는지 없는지는 앞으로 볼리비아의 역사가 말해 줄 것입니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의 컵이 되어줄까요? 그것은 한 지도자의 힘만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그대의 인생에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까? 컵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팔자 탓만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온 세상에서 단 한 명만 알고 있었던 방주를 만들고 있습니까?

bol.jpg
*무엇이든.. 볼리비아인들의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한 선조들의 노고의 보상을 한껏 받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랄레스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베네수엘라 꼴 나지 말고..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ALEPH 알레프

 이전글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