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가식의 신세계

2019.02.23 

 

위선과 가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자신은 100% 순수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또는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바보 멍충이라고 하겠지요. 세상 사는 일에 모두 방식이 있고 규칙이 있습니다. 함께 살자고 시작한 공동체, 사회생활에는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지켜야 할 규칙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건 우리가 만든 거고, 계속 고치고 시대에 맞게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도 상투를 틀지 않고 남녀가 칠세가 넘었다고 다른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지키자고 서로 약속한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고 있는 가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아닌 척, 착한 척하고 있는 위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법규정에 기록되어 있고 그것을 위반했을 때에는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법규정이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없으니 사회의 통념이라는 관습의 법이 존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관습의 변화이며 인식의 차이입니다. 동네마다 고스톱 규칙이 다르듯, 우리가 선(線?善?)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모두 천차만별입니다. 그것은 모두 세계관의 차이이며 관습과 인식, 성향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고스톱 치기 전에 먼저 규칙부터 정하는 거 아닙니까? ‘쪽은 있기 없기? 따닥은 몇 장?’

그걸 매번 정하고 시작하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모임과 회합, 새로 구성되는 공동체와 단체들의 시작은 모두 애매모호한 겁니다. 절차를 밟아 정관도 세우고 내규도 만들고 하면서 기준을 정하는 작업을 매번 할 수도 없습니다. 시작되는 모임은 다 그렇습니다. 일단 눈치게임을 시작하는 겁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가? 이 모임의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나? 모임의 분위기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탐색전들을 하고 또 누군가는 먼저 치고 나와서 모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겁니다. 그걸 이리저리 온갖 다양한 레이다를 들이대며 빠르게 판단해 가는 일이 모임의 시작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다들 그래서 일단 좋은 얼굴하고 앉아 있습니다. 탐색해야 하니까요. 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처음부터 자신의 색깔을 마구 표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 아니면 도입니다. 자기 색깔이 먹혀서 모임을 주도하게 되거나, 단박에 개무시 당하고 썰렁해지거나..

어쨌든 탐색의 방법은 다양하고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너무 순수합니다. 그들은 가장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드러나지는 그대로 상대를 인식합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탐색은 모임의 예의입니다. 일단은 모두가 서로를 모르기에 정중하고 예의 있게, 또는 최소한의 의사 표현으로 신중하게 서로에게 접근하는 겁니다. 그것은 위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의이고 매너입니다. 문제는 탐색의 시간이 저마다 제각각이고 방식 또한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름 탐색전을 끝내고 마구 자기를 드러내고, 또 누군가는 좀처럼 의심의 끈을 놓치 않고 탐색전을 지속해 가는 겁니다. 그 시간의 차이와 방식의 차이가 갈등의 시작을 만들어 냅니다. 아하.. 이런 너무 빨랐군요. 아니요 저는 아직 탐색 중입니다.

어찌할까요? 누군가는 너무 믿었고, 누군가는 아직 자신을 드러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식으로 드러낼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중에 누군가는 탐색을 끝내고 입장을 정했습니다.

‘음.. 나랑 잘 안 맞는군. 하지만 알아두면 좋을 사람들이야.’

‘이야, 정말 괜찮은 사람들인데 이 모임에 헌신해도 좋겠어!’

‘저기 누군가는 이런 가면을 쓰고 있군, 저기 누군가는 꼼수가 좀 보여. 상처 꽤나 입었나 보군. 그래 적당히 거리를 둬야겠어.’

‘이런 모임이 있다니 나는 정말 이 모임이 좋아. 내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테고, 사람들도 모두 멋있네. 열심히 나와야겠어.’

말해 뭐 하겠습니까? 온갖 동상이몽이 마구 교차하는 것이 모임 초기의 상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방 마음을 열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임의 호감 여부에 따라 1~100까지 제각각 마음을 열고 적당히, 소극적으로 아니면 매우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차이에서 위선과 가식의 가면무도회가 벌어지는 겁니다. 누군가는 가면을 얼굴부터 발끝까지 덮고 있고, 누군가는 벌거벗고 자신을 모두 드러낸 채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 모임이 어떤 형식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제한선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나 초기의 모임이고 별 규정이 없는 친목의 모임이라면, 이건 뭐 알아서 피해 가고 알아서 치고 빠져야 하는 관계의 기술을 부려야 합니다. 사람과 차와 소가 어우러져 복잡한 인도의 교차로처럼 말이죠. 그래서 더 재미있고 자유롭기도 하고 그래서 더 위선적이고 가식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내가 어떤 태도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느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사람은 가식의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는 누군가가 매우 못마땅할 겁니다. 아직 마음을 열지 못해 가면을 벗고 있지 않는 누군가는 벌거벗고 들이대는 누군가가 매우 부담스러울 겁니다. 그러나 그게 다 모임의 재미입니다. 인간관계의 스릴입니다. 그걸 모두 정해놓으면 그게 군대고 학교가 되는 거지요. 개성이라고는 없는..

온라인 가상세계.. 위선과 가식의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여기서는 상대의 무엇을 알아차릴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익명성의 공간이라면 우리는 더더욱 자신을 마구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 신세계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탄생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마구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선과 가식을 넘어 창조에 이르렀습니다. 진짜가 뭐고 가상이 뭔지 스스로도 착각할 만큼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신세계에서 위선과 가식을 따지는 것은 어쩌면 매우 무의미해 보입니다. 로그아웃하고 사라진 상대를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실체는 있을 겁니다. 그러한 존재를 만들어 낸 실체 말이죠. 그러나 네티즌 수사대를 총동원해서 찾아낸들, 그가 정말 내가 온라인 가상세계에서 만난 그일까요? 범법을 행했다면 처벌할 수는 있겠지만 나와 온라인 가상의 세계에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던 그는, 현실 세계에서 찾아낸 그가 이미 아닌 겁니다. 그의 현실의 캐릭터는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예의 바르며, 적절히 자신을 처세하는 우리 주변의 바로 그 이웃일 테니 말이죠.

 

내가 나를 모르는 데

아무도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자신의 어떠한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불쑥 튀어나온 엉뚱한 생각과 말에 스스로 상처 입기도 합니다.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고, 성장하고 있는 모든 존재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그러니 위선과 가식, 그것은 어떻게 떨쳐 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제의 나는 너와 이런 마음을 나누었겠지만, 오늘의 나는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엄마의 으름장에 빠짝 쫄아 어제의 호언장담을 잊은 새로운 누군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매일 새로 만나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매일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어제와 오늘은 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어제 꿈속의 나와 내일 꿈속의 나가 같지 않듯 말이지요.

우리는 지금 당황하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의 모임과 회합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는 오랜 관습으로 인해 적당한 룰과 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지역과 배경, 세계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요)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이 신세계, 온라인 가상세계에서의 나는! 나 자신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그건 모두 처음 해보는 일입니다. 갓 입대한 이등병처럼 서로 어리버리 할 뿐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첫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정해진 말을 하고 정해진 룰에 따라 생각하던 누군가가, 익명의 공간에서, 마음껏 자신을 변조하고 창조할 수 있는 이 신세계에서, 평소에 보지 못한, 자신도 그런 내면이 있는지 몰랐던,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당황스럽고 때로는 역겹기까지 한.. 그러나 그것조차 내 안에 있던 것들입니다.

적당히 가면 쓰고 아닌 척하고 있기에는 이 익명의 가상 신세계는 너무도 자유롭습니다. 유혹 만빵입니다. 그래서 좀 가면 벗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현실에서는 눈들 때문에, 관습 때문에 좀처럼 해보지 못하던 행동과 말 태도를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혹이고 그래서 온라인은 해방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누군가와 부딪힙니다. 여기도 사회니까요. 나와 다른 누군가들이 함께 떠들어 대고 있으니 결국 또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집어 들어야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에 우리는 또다시 좌절합니다. 여기도 똑같구나.. 네 그렇습니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자신의 모드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해방구였던 신세계가 현실 세계와 똑같이 변질되어 갈 때 우리는 또 다른 해방구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술은 그것을 계속 뒷받침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꾸 자아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다중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의식이란 결국 하나로 규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처세하고 자신을 바꾸어 왔으니까요.

뭔가 횡설수설을 자꾸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인격은 그렇습니다. 현실에서는 거의 말이 없지만 이 글을 쓰는 인격은 자꾸 뭐라 합니다. 네 어떤 게 진짜 자신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위선과 가식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모두 그이고 모두 나입니다. 그러니 위선과 가식은 오히려 자신을 누군가에게 맞추려고 할 때, 누군가를 배려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일이고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예의였는지 모릅니다. 또는 처세였는지도.. 그러나 그게 무엇이었건,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고 주권일 겁니다. 물론 그 책임 역시 본인에게 있는 것이구요. 그러니 너무 ‘위선'([명사] 겉으로만 착한 체함. 또는 그런 짓이나 일.) 떨어줄 필요 없습니다. 내가 착한 척해서 좋은 건 나보다 상대일 테니까요. 눈앞에서 못된 짓 하면 좋겠습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길 바라는 거겠습니까? 배려를 ‘가식'([명사] 말이나 행동 따위를 거짓으로 꾸밈. 임시로 장식함)으로 평가한다면 더 이상 임시의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래 어디 벌거벗고 맞짱 한 번 떠 보던가, 것도 귀찮으면 조용히 로그아웃하면 그만인 겁니다.

변화된 누군가의 모습을 보게 되어 당황스럽다면 가상 관계의 유통기한이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상대와 더 적극적으로 부딪혀 가면을 벗겨 버리던가 아니면 관계의 종말을 고하던가. 그럴 가치가 있나요? 있다면 죽자고 덤벼서 가면을 벗겨 놓읍시다. 상대는 예의와 매너를 논하겠지만 벌거벗고 덤벼드는 거 알면서 상대하고 있는 그도 예의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싸울 거면 똑같이 벗어야지요. 에그 그게 뭔 꼴이야 싶으면 그냥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겁니다. 세상에 모임은 많고 스트레스 받아 가며 참여할 만한 공간인지는 자신이 더 잘 압니다. 그런데 다들 못 떠나고 기웃댑니다.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거든요. 그러니 까짓거 제대로 한번 붙어 봅시다. 세상 신나는 게 불구경, 싸움구경 아닙니까.

위선과 가식의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여기 스티밋은 익명성과 보상체계가 어우러져 그 가면무도회가 더더욱 판을 제대로 벌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신세계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멋모르고 춤추다가 제 풀에 상처받고 나가떨어진 누군가들이 한 트럭입니다. 적당히 위선하고 적절히 가식하는 누군가들은 여기서도 그냥저냥 이 공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그건 잘하는 일일까요? 뭘 얻으려고.. 벌거벗고 맞짱 뜨는 이들은 난자당할지라도 성장합니다. 적어도 어디를 맞으면 아프고 어디를 때리면 상대가 움찔하는지 경험치가 늘어가고 맷집도 단단해집니다. 물론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알아차리는 인간관계의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예리해집니다. 좀 더 성장한다면 상대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러니 나는 너를 왜 피하고 싶은지도 알게 됩니다. 더 성장한다면 그럼에도 왜 너를 받아줄 수밖에 없는지까지도.. 그러나 눈치만 보며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위선과 가식의 처세 신공을 부려대는 존재들은.. ㅎㅎ 네 잘하고 계십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읍시다.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너!

여긴 다른 줄 알았다고 실망하고 있는 너라면 나가서 온 세상을 돌아다녀 보십시오. 어디라고 너 받아줄 유토피아가 있는지, 세상 온갖 커뮤니티를 다 뒤지고 다녀 보십시오. 위선과 가식이 판을 치지 않는 공동체가 존재는 하는지.. 있습니까! 있나구요!! 그럼 나 좀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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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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