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입장이 아니야
2018.03.23
생각은 생각입니다. 입장은 입장이구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둘의 경계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오랜 독재사회와 검열, 블랙리스트가 판을 쳤으니.. 말을 내뱉으면 입장으로 간주되고 재단되었던 시간을 살았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생각은 생각입니다. 생각으로는 세상을 다 가질 수도 있고, 돈더미에 파묻혀 헤롱댈 수도 있습니다. 지구를 구할 수도 있고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란 것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아, 자꾸 떠들고 옥신각신하고 소통하고 왔다 갔다해야 성장하고 견고해집니다. 그런데 입 꾹 다물고 머리만 굴리다 ‘자 너 말해봐! 정답은?’.. 이런 도식 속에 살아오다 보니 기자가 질문도 하나 못합니다. 질문하는 게 일인 기자가 입을 꽉 다물고 침묵시위를 합니다. 회견장에서요..
생각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마음껏 합시다. 그리고 대화를 하는 겁니다. 아무 말 대잔치여도 좋으니 이 말 저 말 다 합시다. 대신 입장을 묻거든 신중해져야 하는 겁니다. 이 말 저 말 떠들었더라도 누군가 ‘입장’을 묻거든, 그때에는 생각을 골라야 하고, 말을 골라야 하는 것입니다. 입장은 책임이 수반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도통 ‘입장’을 묻는 경우가 없습니다. 누군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게 입장이라고 간주해 버립니다. 그러니 무서워서 말을 못합니다. 게다가 ‘입장’이란 게 의사결정자가 갖는 것이지, 해당 사항이 없는 사람이 가져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입장을 강요받습니다.
“그러니까 니 생각이 뭐냐니까?”
“아무 생각 없는데..”
“왜 생각이 없어. 니 생각을 말해 봐.”
“입장을 묻는 거야?”
“뭐? 생각이 입장이지.”
“내가 왜 입장을 가져야 하는데?!”
생각을 물어야 할 때는 생각을 묻고, 입장은 입장을 가져야 할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어떻게 입장을 갖습니까? 생각을 갖는 것이고, 많이 나가야 의견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건 그냥 생각이고 의견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할 수 있는.. 아직 사정을 잘 모르니 해볼 수 있는..
그래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 대화를 해야 합니다. 입장을 가져야 한다면, 더더욱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말과 생각을 고르고 발전시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얼마나 다양합니까? 한 사람의 생각안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데, 여러 사람의 생각의 파노라마는 우주를 다 덮을 정도 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하나의 입장을 갖는 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어렵고 신중해야 하는 일인가요.
그런데 그놈의 입장 때문에.. 입장을 물은 것도 아니면서.. 입장을 밝힐 입장이 아닌 사람에게.. 계속 생각을 입장으로 왜곡해 대는 그놈의 사회적 압박 때문에.. 일단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지도 않은 머리만 굴리다 잔머리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입니다. 자꾸 입장을 밝히라고 들이대니까요. 자꾸 누구 편인지 정체를 대라고 협박하니까요.
우리는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도 입장을 묻지도 않았고, 입장을 가질 입장도 아니니.. 그냥 생각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님들의 생각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생각해 보는 겁니다. 입장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귀를 막거나, 이리저리 우물쭈물 왔다갔다 하고, 생각을 확장하고 소통해야 할 사람들은 남의 생각을 들을 생각도 없이, 누가 물어보지도 않은 입장을 막 강요하고..
생각을 말이죠. 생각을 합시다. 아니 생각을 말합시다. 그래야 님 생각이 뭔지 알게 아닙니까? 그래야 옥신각신도 해볼 거 아닙니까? 그래야 진짜가 뭔지, 진실이 뭔지 가려도 낼 게 아닙니까?
생각을 들려주세요. 입장 말구요. 입장을 물어본 게 아니랍니다.
ziphd.net
ziphd.net
ziphd.net
ziphd.net
ALEPH 알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