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사하는 법부터 배웁시다

2018.03.22 

 

관계의 기본 단위

관계의 방식이 전면 재고되는 시점입니다. 그러면 다행입니다. 우리는 관계라는 것이 권력과 이꼴인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실상이 어떠하든, 계급사회의 종식을 모토로 사회를 발전시켜 가고 있고.. 지금의 미투 운동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관계란 무엇일까요? 관계의 기본 단위는 존재입니다. 남녀노소, 상사부하, 선배후배, 시어머니 며느리 등등의 역할은 부차적인 것이고, 관계의 기본 단위는 인간 대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가족 가부장제 시스템 속의 인간은 집단의 종속물, 전체의 부분일 뿐입니다. 전체의 일부로서 역할이 있을 뿐.. 인간은 존재로서가 아니라 역할로서 분류되는 것입니다. 그럴 땐 그저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관계의 방식이 생겨납니다. 역할을 감당할 수 없으면 대체되면 그뿐.. 그래서 아이들조차 노동력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낳고 길러졌으며.. 그 과정에서 탈락하는 아이들은 연민의 대상일지언정, 구제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실패 빈도(영유아사망률)에 근거하여, 잉여 노동력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대가족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인간의 지위이자 필요였습니다.

빠른 산업화는 가족공동체의 급속한 해체를 가져왔고, 우리는 미처 인식을 전환하고, 의식을 확장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도 전에, 그냥 개인으로서 정글사회에 던져져 버렸습니다. 관계의 방식은 둘째치고, 살아남는 게 최선인 사회가 되어 버렸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일단 최대한 빨리 사다리에 올라타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머리 밟힌 누군가를 동정할 새도 없고.. 어떤 순서대로 사다리에 올라가야 할지 질서를 정할 새도 없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온갖 편법으로 사다리 올라타기에만 매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 도달하여 뒤돌아보니, 잘려나간 팔다리와 단절된 관계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고.. 사다리 어디쯤 오른 듯한 나도,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사다리에만 매달려 있는 꼴이 된 것입니다.

사다리 올라타기는 끝이 났으니, 우리는 모두 각자가 되어 정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폐라는 이름으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정산에 들어갑니다. 처절한 은폐와 적나라한 폭로의 밀고 당기기가 치열하게 벌어질 때마다, 인권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개인주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의식을 함양하고, 머릿속에 인권이라는 개념을 확립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빨라진 기술발전과 환경 변화는 수많은 부작용을 내며 거친 파열음들을 양산하기에..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이제 性을 매개로 한 관계의 방식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아.. 이제는 당사자의 명백한 동의 없는 모든 성관계에 대해 강간죄로 처벌하겠다고 하는군요.

정현백, ‘당사자 명백한 동의 없는 성관계’ 강간 성립 추진

당사자의 명백한 동의.. 이걸 어떻게 증명하죠? 사전 동의서라도 받아야 할 참입니다. 모텔 사장님께 공증이라도 받아야 할 판입니다. 법적 분쟁의 요소를 완벽히 제거하기 위해, 동의서의 항목에는 강압성을 측정하기 위한 신체 사이즈와 근력 정도, 임신 위협을 측정하기 위한 정자 갯수와 활동성 측정 자료, 생리유무와 배란주기 자료를 첨부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 계약 파기를 위한 단서조항도 달아야죠. 남성의 발기 지속시간과 여성의 교성 데시벨 정도를, 단위별로 기준을 설정하여, 상대가 원하는 기준에 맞추지 못할 시, 즉각 성관계를 철회하고 상대에게 수배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조항도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이게 뭡니까.. 어쩌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나 동물적 기준을 들먹여야 할 만큼 처참한 관계로 떨어졌단 말입니까?

 

우리는 먼저 人間이다

관계의 방식을 설정하기 위해, 우리는 그 대상을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상사와 부하,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의 역할로 볼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 대 인간의 구도에 바라봐야 합니다. 인간 대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모든 일은 남녀노소, 역할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불가不可한 일인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예쁘다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무례하게 외모 평가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동의 없이 모텔에 끌고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점심 메뉴를 묻지도 않고 짜장면으로 통일하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동의도 없이 TV 채널을 제 맘대로 독차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함께 놀이동산에 왔는데 무조건 바이킹만 타야 된다고 제멋대로 구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물며 커피를 사면서도 ‘너 뭐 마실래?’ 하고 묻습니다. 카페인 때문에 못 마신다는 사람에게, ‘카페에 따라 들어왔으면 마셔야 될 거 아니야!’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예의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미투 운동을 젠더에 국한시키면 본질은 날아가 버립니다. 마땅히 인간 대 인간 사이에 일어난 폭력으로 처벌할 문제를 성폭력이라고 범주화해버리면, 아직 性에 대한 공동체적 합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폭력은 남여의 젠더 논쟁 뒤로 숨어 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처벌받아 마땅한 폭력을 저지른 인간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랑이었다’하고 빠져나가버리게 뒷문을 열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인간 대 인간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상사와 부하, 며느리와 시어머니 등의 모든 관계에서 역할과 상관없이 일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래서 어제 두 번이나 내 발을 밟아 놓고서도, 미안한 척조차 하지 않고 유유히 내려버린 아줌마사람에게도 마땅히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자 사람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여자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부모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하사람의 동의 없이, 바쁘니까 짜장면으로 통일을 외치는 상사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며느리사람의 동의 없이, 현관 비밀번호를 제멋대로 누르고 아무 때나 들이닥치는 시어머니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어머니사람의 암묵적 동의를 가정하고, 제멋대로 아이를 맡기고는 연락도 안 되는 며느리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인간 대 인간의 문제인 것입니다. 역할이 아니라 사람.. 사람의 관계에 기본적 예의와 태도 말이죠. 우리는 미쳐 그것을 학습하지 못한 채 사회에 벌거벗고 내던져진 터미네이터입니까?

남의 발 밟았거든.. 지나가다 어깨를 부딪혔거든.. 정중하게 ‘미안합니다’ 합시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재벌이든, 노숙자든 말이죠. 사랑이라 퉁치고, 동료니까 퉁치고, 가족이니까 퉁치고, 나이가 많으니까 퉁치고, 이리저리 퉁치지 말고.. 정확하게, 예의 바르게, 매너 있게, 모든 사람에게 정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간強姦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의 강간強間이 문제인 것입니다.

 

인사부터 합시다

아메리칸들이 만나면 ‘Hi’ 손 흔들고, 웃고, 과도하게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는 일이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여차하면 쏴버릴지도 모르는.. 그들의 문화에서 나온 일이라는 유례를 떠올리며.. 어쩌면 우리도 서로의 성기를 늑대다 꽃뱀이다 하며 흉기 취급하고 있으니.. 그들처럼 과도하게.. 서로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옆집, 앞집, 이웃집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고.. 아버지가 퇴근하고 들어오셔도 인사하지 않고.. 오히려 누가 길에서 말이라도 걸면, 흠칫 겁부터 나는 공포 사회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심지어 내 가족조차도 잠재 범죄자 취급을 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코를 베일 지 모르는 일상에 처박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범죄자가 아니고 나 또한 당신 해칠 의사가 없으니, 우리는 먼저 서로에게 ‘범죄의사 없음’을, 인사로 알려야 하는 시대를 일단 거쳐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이파이브든, 악수든, 방가방가든.. 일단 인사하는 것이 인간됨의 기본이 되는 시절에 접어든 것입니다.

암묵적.. 암묵적으로다 대충 퉁쳐대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으니 우리는 그놈의 암묵적, 묵시적을 집어치워버리고 먼저 인사부터 합시다. 그리고 명확하게 자기 의사를 드러내고.. 해칠 의사가 없으니.. 부담스럽지 않게.. 알아서 관계의 거리를 정하라고.. 자신을 표현해 줍시다.

짜장면인지 짬뽕인지 명확히 말을 하란 말입니다. ‘그냥 너가 알아서 시켜..’해 놓구선, 뒤에 가서 식당 인테리어가 구리다는 둥, 단무지가 노란색이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지 말고 말입니다.

그 표현 방식이 뭐가 돼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간 대 인간, 집단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이, 서로에게 어떻게 의사를 표시하고 예의를 갖출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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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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