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이가 운다.
어른인 줄 알았던 아이가 운다.
아이는 과거를 살고 있다.
생애 첫 운동회 날 점심시간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왁자지껄한 교실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혼자 김치와 감자볶음뿐인 도시락을
펼쳐놓고 있는 아이가
몇십 년이 흐른 뒤에야 서러워 운다.
워크맨을 갖고 싶던 아이.
그래도 성의껏 사준 아버지의
마이마이를 들고 마치 소니인 듯
가방 깊숙이 넣고서는,
이어폰으로 아닌 척하며 듣던
그때의 아이가 애처로워 운다.
늘 칭찬을 듣던 아이는,
늘 성실하다, 착하다 소리를 듣던 아이는,
‘쟤가 저 정도 밖에 안되니?’
‘못난 애였구나’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하기 싫어도, 성질에 맞지 않아도
꾸역꾸역 해대던 아이는
한이 차올라 비명을 지른다.
사람들이 놀리든 말든,
비아냥거리든 말든,
함께한다 했던 사람들에게서
버림받고 버림받던 아이는
예수가 아니다.
아이는 아이다.
그래서 운다.
아이야 모진 세상에
바닷속 생물들도
들판의 동물들, 식물들도
자신을 지킬
독하나, 가시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그것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키라고
검 하나씩을 쥐여준 것이다.
세상이 평화였으면 검이 웬 말이겠느냐?
창조세계로 뛰어든 너에게
우주는 너 스스로를 지키라고
검을 쥐여주었을 텐데,
너는 그것을 어디에 버려두었느냐?
도대체 어쩌다 방어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만신창이가 되었느냐?
죽어가는 너에게
이 검이
이제 다 무슨 소용이냐?
살겠다면 그래도 살겠다면
너는 검을 집어 들라.
네 검에 베일 누군가 따윈
더 이상 배려도, 염려도, 미안해도
하지 말고..
네가 검을 들면
그들도 검을 들겠지.
철과 철이 서로를 강하게 하듯
너의 검과 그들의 검은 서로를 날카롭게 할 거야.
그래서 너도 살고 그들도 살겠지.
그것이 자연이 수만 년, 수십억 년 동안
살아온 방식이다.
아이야 살려거든 검을 들어라.
그리고 휘둘러라.
네게 들러붙어
너를 착취하던
염들을 베어버려라.
또한 그 착취에 갇혀 있던
영혼들은 그제야 비로소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검을 드는 것이다.
우리 모두 검을 드는 것이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하던 네게,
가족은,
네가 사랑한다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건 네 사정이고..’
‘이자는 언제 부칠 거니?’
‘보증은 서줄 수 없네’
아이는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거리에 좌판을 깔았지.
팔려버린 건 뻥튀기가 아니라 아이의 꿈이었다.
팔려버린 건 멸치가 아니라 아이의 삶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구멍이 나버린 건
신발이 아니라 아이의 가슴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말했지.
‘게을러..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그 정도 가지고..
의지가 약해. 쯧쯧쯧’
아이는 어느새 무책임하고 게으르고
허영에 가득한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들,
가족들,
사랑한다는 사람들,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들,
진실과 대면하기가 두려운 사람들,
그들은 네게 그들처럼
남들 눈치 보며
남들만큼 하고 살기를 원했지.
아이는 사랑을 위장한 폭력과 억압에
자신을 속여나갔지.
‘다들 이렇게 살아.. 이런 게 행복인 줄 알고 살아’
어느새 아이의 몸에는 스트레스가 쌓인다.
십 킬로쯤 되는 스트레스는 몸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었어.
남들처럼 살려다
남들처럼 돌연한 죽음이 가까워 오고 있었어.
십 킬로짜리 스트레스
십 킬로짜리 암덩어리
스트레스로 죽으나
검을 휘두르다 죽으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이야 죽어가련?
아이야 나빠지련?
너는 무엇을 선택하련?
상처 주느니 죽겠다고?
죽겠다는 네게 사람들은 말하지.
‘이유가 뭔데?’
‘무슨 그런 생각을 하니? 그 힘으로 살아!’
‘나는 어쩌라고..’
이 순간에도 너를 생각해 주지 않는 사람들
사람들은 그렇게 잔인하다.
죽겠다는 사람에게 이유를 대래.
살아갈 힘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 힘으로 살래.
네가 죽으면 너 기대 살던 나는
어떻게 사녜.
아무도 네 마음의 어둠, 슬픔, 외로움, 설움은 보지 않는다.
너는 차라리 나쁜 놈이 돼라.
너도 그들처럼 잔인하게 살아.
그러면 그러면
사람들은 차라리 네가 죽어주기를 바랄 거야.
나쁜 놈보다는 죽은 놈이 견디기 쉬울 테니.
죽음은 곧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산사람은 살기 마련이니까.
나쁘련?
죽으련?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11.08_ osaka_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