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狀異夢).. 동상동몽(同狀同夢)..

 

동상(同狀).. 같은 곳을 본다.
이몽(異夢).. 다른 꿈을 꾼다.

동상(同狀) 하는 동안
우리는 동지라고 생각한다.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놀라운 狀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그들은 狀을 함께 경험한 것으로
서로 충분히 결속되었다고 느낀다.

이와 동시에 각자의 머리와 가슴은 異夢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狀은 각자의 경험과 사고의 차이만큼이나 왜곡되기 시작한다.
필름으로 또렷이 남겨 놓았다 한들,
전, 후의 일련의 흐름에 관한 이견은
시력만큼이나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그것은 꿈꾸는 순간부터이다.
狀을 머리로 가슴으로 옮겨 夢 하는 순간부터,
진실은 멍해지고 異夢 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중 누군가 狀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모두들 同狀 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다.
그러다 말을 꺼낸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狀이 아닌 夢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하나, 둘 夢에서 깨어나고,
異夢 되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확인하게 된다.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공기는 답답해진다.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야?’
또 다른 누군가가 정적을 깨어버리면서
싸늘해진 분위기는 서늘해지고
답답해진 공기는 매서워진다.

그렇다 異夢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당황하고 왜곡의 거대한 증식이 뒤따른다.
그때부터 동지였던, 친구였던, 연인이었던, 상대가
실은 거짓말쟁이이며 편협한 시각을 가진 꽉 막힌 존재로 돌변하고,
나는 세상의 유일한 목격자로 자세를 고쳐잡는다.

동상동몽(同狀同夢)..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꿈을 꾼다.

우리는 생각을, 판단을 멈추기 이전에 同夢 할 수 없다.
꿈꾸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한 것이고
狀을 드러내는 것은 우주의 자유에 속한 것이다.

보여진 狀과 꾸어진 夢.
이것은 변화시킬 수 없는 우주와 인간의 운명이다.
같은 곳을 보고 전혀 다른 꿈을 꾸는 너와 나는
결국 우주의 놀라운 창조적 발현이기 때문이다.

신은 異夢 하는 우리들을 위해
들을 수 있는 귀와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었다.
나는 너의 夢을 들음으로써
나의 삶이 너에게 강요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나는 나의 夢을 말함으로써
너를 나의 삶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하게 된다.

異夢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진실이 무엇인지 되돌려 확인하려들 필요도 없다.
나와 함께 바라본 네가 여기에 있고
너와 다른 꿈을 꾸는 내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마주 보며 서로의 異夢을 직시할 수 있다면
진실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狀은 夢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이다.

 

[2009.09.23_ 一山_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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