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마법사들 (2)
[33日] Oct 15, 2021
포탈의 문을 열고 들어오던 점선생은 미노스 왕에게 포도주 한 잔을 권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그를 미처 몰라보고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미노스 왕은 자신이 킵해 놓은 맥켈라니카를 비우러 와서는 그를 불러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아까는 내가 몰라보고..”
점선생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 말했고 두 사람은 대작을 시작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법사는 마치 그 모습이 신구 세대의 바톤터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마감 청소를 하는 척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두 사람은 시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본분에 따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미노스 왕은 자신의 예술적 열등감을 표현했고 점선생은 인생이 다 그런 거라며 초등학생의 작품도 예술이 될 수 있지만 세상에 초등학생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니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미노스 왕은 자기 아들뻘인 점선생이 오히려 형님 같다며 경이로워하는 듯했다. 그런 미노스 왕에게 점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그러했다. 미노스 왕은 자신감을 상당히 상실한 듯 보였다. 그는 이미 청춘의 때에 세상을 정복했고 부러울 이가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의 선견지명은 세상이 놀랄 만큼 뛰어났지만, 세상은 놀라지 않았다. 그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노스 왕의 열등감으로 자리를 잡은 듯했다. 뭐로 보아도 자신보다 못난 친구들이 단지 세상이 알아준다는 이유만으로 어깨를 빵빵하게 들고 다니는 모습에 기가 죽어 보이기도 했다. 돈만 많은 자산가가 지적 재산과 문화 자본으로 무장한 먹물들 앞에서 기가 죽는 건 그 세대의 종특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필요 없다는 맥켈라니카를 굳이 한 병 더 내놓는 일뿐이다. 술집에 와서까지 연구실 네트워크에 접속하려 드는 문화 자본가들이 블루투스를 찾아 아이폰을 뒤적이는 동안 그는 쓸쓸하게 ‘맥켈라니카 한 병 더할래?’를 묻고 있었으니.
그렇긴 하다. 그의 열등감은 쓸쓸함으로 화하여 20세기소년의 문턱을 넘지도 못한 채 담배 연기로 소진되고 있었으니. 그는 늘상 20세기소년의 대문에서 멀리 떨어진 마지막 끄트머리 야외 좌석에 앉아 쓸쓸하게 담배를 피워물고는 겨우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리는 것으로 존심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당차게 문을 차고 들어와 오늘이 킥오프가 아니냐며 ‘내가 쏜다’를 외치던 물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관리부실로 막혀버린 하수구를 마법사가 마법으로 어케 뚫어주지 않을까 소심하게 뚝딱거리는 그의 모습이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한 요즘이었다.
그걸 어케 알았는지. 점선생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라총수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달려와 문을 밀고 들어오는 와중 마주친 그에게 와인 한 잔을 권했고 그런 그를 그는 쓸쓸한 열등감에 잠겨 미쳐 몰라보았던 것이다. 뒤늦게라도 알아보고 사과를 한 건 그가 여전히 이 포탈의 문 앞에서나마 서성일 수 있는 직관적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는 그러한 직관적 자질로 세상 두려울 게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러한 자질로 20세기소년을 맞아들인 용기 역시 전성기 시절의 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단면이기는 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노쇠해진 그는 늘상 열려있는 저 포탈의 문을 넘어설 힘이 없거나, 용기가 없거나, 가오가 발목을 붙잡는 것이거나 한 것처럼 보여졌다.
그와는 반대로 젊은 점선생은 일찍이 이 공간의 정체성을 알아채고 이곳은 잔칫집이니 술이 필요하다며 연신 포도주를 길어 나르고 있었다. 그렇다. 마법사를 빈손으로 만나러 오는 이는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시장의 마법사들이 널린 이 곳은. 암튼 그는 이 공간의 정체를 일찌감치 파악하여 어찌나 겸손한 태도로 알박기를 해대고 있는지, <소수존>을 박아놓은 것도 모자라 20세기소년의 서가에 자신의 책을 마구 박아 넣고서는 라총수로 하여금 그의 서가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소수존>에 이은 <소수서가>가 탄생하게 되었으니.
점선생은 자신의 고향인 영국의 Talbot 장군의 이름을 딴 프랑스 와인을 20세기소년에 선물해 우리들의 혀를 즐겁게 해 주었는데 그 와인은 미노스 왕도 격찬하는 와인이었다. 둘은 이 영국 장군의 와인을 서로 알아봄으로써 범상치 않음을 서로에게 증명하고 있었는데, 미노스 왕의 그것이 고리타분해 보였다면, 열등감 따위는 없이 요즘 부자들이 먹는 음식이라며 우리에게 고상한 취향을 소개해 주던 점선생의 품위는 이미 세대를 넘어선 어떤 것이었다. 살짝 기가 눌렸는지 미노스 왕은 ‘나도 너 같은 놈을 만난 적이 있지.’ 하듯 자신이 회사 중역으로 있던 시절 들어왔던 인턴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는데 그 말인즉슨, 너도 그놈과 같은 종자인 듯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훗날 어느 때 엔간 다른 곳에서 점선생과 같은 누군가를 만나, 나도 너같이 Talbot에 대해서 얘기하는 어떤 젊은 천재를 만난 적이 있다고 얘기하는 광경과 같았다. 그가 그 시절 만났던 천재 인턴은 이미 수백억대 자산가가 되었다던가? 스타트업을 성공시킨 대단한 사업가라던가? 어쨌던가 같은 반열의 점선생이 [스팀시티]를 가족으로 부양하는 동안 그는 물주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20세기소년의 문밖에서 담배나 피워대며 가끔 실내에 아무도 없을 때 몰래 들어와 쭈뼛대며 담뱃재를 떨어뜨림으로써 소심한 영역 표시나 하고 있었으니. 그의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왜? 어떤 이는 알아보고도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며, 왜? 어떤 이는 부르면 언제라도 천리를 달려오는 것일까? 게다가 양손 가득 무엇을 들고 말이다. 가진 건 미노스 왕이 쨉도 안되게 더 많을 텐데. 어쨌거나 가련한 미노스 왕이 언제까지 문밖에서 담배만 피워댈지는 알 수 없다. 20세기소년은 곧 망할 거라는 그의 예언을 점선생을 비롯한 [스팀시티]의 젊은 부자들이 어떻게 뒤집어 놓을지는 관점 포인트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마법사의 눈에는 점선생이 언제나 에이전트 세븐을 대동하여 마법사 아이작으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확정 지을지가 궁금할 뿐이고, 게다가 인류 최후의 연금술사였던 그가 환생한 이 21세기의 시공간에서 어떻게 미노스 왕의 명목화폐를 암호화폐로 변환시킬지가 더 기대되는 바이다. 명목화폐로는 파산해버린 아픈 기억을 가진 그이니, 암호화폐로는 전생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이것은 연금술의 영역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인 정복전이 시작된 이 포탈에서는 연금술사 점선생의 지도 편달에 따라 <시장의 마법사들> 펀드를 조성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고 아이작 계열의 마법사답게 운의 영역을 공식으로 변환해내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훌륭한 Z세대 통역사 킴리의 통역을 따라 떠듬떠듬 따라가 보지만, 에라 모르겠다! 굿은 아이작이 하면 되고 우리는 피자나 먹으며 홀짝이나 하자고 의견의 일치를 본 뒤에, 그렇다면 올해 대운을 맞은 택슨과 타고난 찍기의 기술을 보유한 젠젠의 선택을 따라보자며 패를 뒤집는 마법사의 연전연승 덕분에 요즘 부자들이 선호한다는 잭슨 피자를 배가 터지게 시켜 먹고는 어제 모두를 감동케 한 점선생의 명언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좋은 사람의 조건은 하나밖에 없어요. 좋게 변해 가는 사람.”
미노스 왕은 좋은 사람일까? 점선생의 말에 의하면 좋은 사람의 조건은 하나밖에 없단다. ‘좋게 변해 가는 사람.’ 변화를 멈추거나 망설이는 경계인들에게 점선생은 언제나 술과 함께 충분히 권유한 뒤, 마법사의 말을 장난치듯 흉내 내며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문은 닫혔습니다.” 때론 단호한 차단으로도. 오히려 관대한 건 마법사라니까.
시대가 변하고 있다. 세대가 교체되고 있다. 그러니 이들 소수점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그대의 삶 속으로 진격해 들어오기 전에 어서들 올라타시라. 지금은 좋지 않더라도 좋게 변해갈 수만 있다면 누구든 그가 준비한 와인을 마실 자격이 있을 테니. 그게 뭔지 모르겠으면 20세기소년 <소수서가>에 꽂힌, 어떤 서점에서도 살 수 없는 책들을 읽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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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