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마법사들 (3)

[34日] Oct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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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에도 총량이 있습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가지고 태어난 운에도 크기가 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저는 만화를 그려야겠군요.”

10년쯤 되었나? 그의 말에 의하면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전공과 다른 길로 나와 마구 굴러다니고 버텨낸 세월이 벌써 그만큼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건 모르는 이야기였다. 삼십대 중반에 벌써 그만한 시간을 버텨내었다니.

십 년이면 뭐가 되도 될만한 시간이다. 물론 어떤 분야, 어떤 일은 그에 두 세배가 더 걸리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다다를 수 없기도 하지만 그의 2021년은 누가 보아도 대운이 들었구만 할 만큼 끝없는 행운의 연속이었다.

그건 매일 아침 울리는 증권 어플이 증명해 주고 있다. 7월쯤 20세기소년에 합류한 그에게서 없는 돈을 긁어모아 뭘 하나 사두었다는 데 그게 좀 오르기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었건만, 지난 몇 주, 몇 달간은 매일같이 그의 종목이 신고점을 달성했다는 알람을 받아봐야 했다. 이런, 그때라도 따라 들어갈걸.

그런다고 되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그것을 연일 들고 있었겠는가. 십 년을 버틴 사람은 십 년을 기다릴 수 있지만, 남 따라 들어간 사람은 줏대 없이 남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시간은 자신의 길을 갈 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니까.

그런 시간의 흐름을 익히려면 십 년은 족히 든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은 어디서 무얼 하든 하나의 역사가 어떻게 무르익고 열매를 맺는지를 충분히 경험할 만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오롯하게 특히 한 분야에서 경험해 낸 누군가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그건 자기 경로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다.

갈지자 횡보를 반복해 온 이라면 가질 수 없는 그것이다. 제자리를 지키고 가던 길로 언제든 복귀할 수 있는 균형감각 같은 것 말이다. 그건 매우 감각적이고 직관적이라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것이 어느 것의 어떤 때, 어떤 일의 어떤 방향을 감각하게 하고 금세 균형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바로미터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것을 터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건 정말 한 우물을 제대로 파지 않으면, 그리고 충분한 집중의 시간이 없으면, 그게 뭔지도 모를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노가다를 했다고 했다. 하고 많은 일 중에 그 일을 선택한 건, 매이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육체노동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시대에 드물다. 대부분은 육체노동을 감수하기 싫어서 시간의 노예로 살아간다. 그러나 시간을 지배한 그는 자신의 시간을 최대한 자신의 꿈에 쏟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만화를 그리고 그것을 한 편, 한 편 완성해 왔다. 그리고 아마도 첫 판매는 미니 스트릿에서였다지. (마법사도 한 권 샀지)

그리고도 3년이 흘렀는데 그간에도 열심히 만화를 그리고 노가다를 뛰었다고 했다. 그걸로 큰돈을 벌 수는 없지만, 시간을 지배하기 위해 최소 생계비만큼만 일하고 남은 시간은 만화를 그리는 데 최대한 활용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지난주에는 어떤 단골 손님이 자신의 제자라며 진로를 좀 상담해 주라고 데리고 왔다. 그 제자는 국내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미대생이었다. 그런데 진로가 암담하다며 경찰대 편입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안타까워 단골 손님은 웹툰을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그에게 상담을 권한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그 제자가 그에게 배워야 할 것은 웹툰을 그리는 법이 아니라 시간의 지배자가 되는 법일 것이다. 가세가 기울어서 돈을 벌어야 하게 생겼다는데, 그게 노가다를 뛰면서까지 시간을 지배하려고 노력해 온 그의 형편보다야 어려울까. 그렇더라도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 학생이 단지 좀 더 안정된 삶을 위해 공무원의 길을 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발적 노예가 되는 선택이 아니고 뭐겠는가.

‘이봐요 학생, 세상은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랍니다. 스스로 노예가 되기에는 우주는 너무도 많은 행운을 준비하고 있다구요.’

그 행운의 주인공이 그다. 그를 곁에서 지켜본 우리는 심지어 그의 행복한 꿈속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소원의 방향대로 상황과 환경이 흘러가고 있음을 이곳, 장충동 20세기소년에서 매번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얄미울 정도로.

그러나 인색하지 않은 그는 무엇이 실력이고 무엇이 운인지 그간의 경륜으로 잘 알고 있어서 언제든 자신이 받은 것을 나누는 데 인색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번 그의 ‘오늘도 올랐으니 오늘도 내가 쏩니다!’에 환호하며 배부르게 위장을 채워대지만 돌아서면 다시 시작되는 그의 대운을 다시 목격하며 ‘아, 이거 우리 운까지 다 빨아 먹고 있는 거 아니야.’ 하는 묘하고 쎄~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한 것이다.

아무튼 그의 대운은 우리를 프랑스로 쏘아 버릴 준비를 하고 있고 그것은 그의 어릴 적 꿈이었다나 뭐라나. 심지어 20세기소년에서 함께 바텐딩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데쟈뷰로 본 기억이 났댔나? 2년 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나? 뭐 암튼,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내년에는 그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서 프랑스에 살러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독한 타인의 대운이여.

시간의 지배자인 그의 꿈에 딸려 들어가고 있는 우리는 기분 좋게 그가 쏘는 야식에 만족스러워하고 있고, 뭐 흘러가는 대로 가도 좋지 딱히 다른 걸 바라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심지어 대운이 든 사나이 옆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이 쏠쏠하기도 하니 대충 모두 만족스러운 기분이다. 그러나 그 모든 행운의 기틀에는 무엇이든 언제든 경로로부터 벗어나면 예민하게 자신의 본래의 자리로 빠르게 돌아오는 그의 민감함과 단호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관찰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법사로서는 그간 수많은 만남들 중에서도 마법사의 직관에 이렇게나 빠르게 반응하는 이를 좀처럼 만나볼 수 없었으니, 그는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언제나 관심 있게 귀를 기울이고 마법사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들은 마법사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한 귀로 듣고는 ‘뭐라니’ 하고 흘리거나, 헐레벌떡 놀라서 ‘아, 이건 뭐지?’ 어리둥절해 하다가 뭔 말도 질문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 불시도착, 정시출발해 버린 마법사의 ‘휘리릭~’ 자취에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닌가 하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그런 만남의 연속에서 짜증과 귀찮음이 마법사의 만감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매우 반갑고 유의미한 질문을 연속적으로 쏟아내는 걸 보며, ‘이 친군 뭔가 아는군’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곧 그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타이밍의 마법사에게서 많은 타이밍을 획득해낸 그가 대운의 사나이가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리고 그것이 프랑스를 향해 뻗어있다. 올해가 끝인 줄 알았던 그의 대운은 아직도 2년이 더 남았다니. 이건 뭐, 우리의 야식도 2년이 보장된 것으로 감사하면 되는 일인지, 친구의 기쁨에 배를 살짝 아파해야 할 일인지. 어쨌거나 내년 이맘때쯤엔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 바게트를 뜯으며 프랑스어로 번역된 그의 만화를 보게 되면 그의 대운에 멋진 마무리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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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여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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