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거절 처리 보고서
“아니, 선배님 아니세요?”
“쉿, 조용. 사람들 들어요.”
그는 마법사가 소속된 오성지점의 부지점장이다. 마법사의 신입 교육 담당자이자 직속 상사이기도 하다. 마법사는 지점 구성원들과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 그를 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마법 학교의 선배를 여기서 만나다니.
“아니 어떻게 여기 계신 거예요? 그동안 소식이 전혀 없어서 다들 선배님이 마법사를 관두신 줄 알고 있다구요.”
“아, 그게 그렇게 됐어요. 중간에 연금술사로 특채되었거든.”
“네? 연금술사로요? 아니 대륙으로 발령받으시지 않으셨어요? 다들 엄청 부러워 했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그냥 이대로 마법사 인생 순탄하게 풀리나 보다 하고 있었지. 근데 뭐 편하기만 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변두리 작은 나라에서 대륙으로 발령 받아왔다고 백인 마법사들 견제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그리고 가만 보니 마법사 해선 먹고 살기도 힘들 것 같고. 내가 애가 셋이거든.”
“아, 그렇군요. 애들이 셋이세요?”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마법사는 대부분 독신이기는 하지만, 간혹 가정을 이룬 마법사들이 있다. 과업을 감당하며 가정을 함께 이루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이기는 하지만 용기 있는 마법사들은 두 가지 과업을 함께 감당해 나가기도 한다. 그들 중 일부는 전략적으로 연금술사로 전향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연금술사로 전향하셨군요. 어떠세요? 할 만하세요? 제 후배도 연금술산데 서로 모르시나?”
“왜 모르겠어요. 그러잖아도 마법사님 온다는 얘기는 진작에 들었죠. 그리고 그 후배가 초창기에 내 상사였어. 그땐 잘 나갔었는데 말이죠. 회사에서 아주 유명했지.”
“네,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녀석이 사업만 안 했어도, 저도 선배님도 다 편하게 지원받으며 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뭐, 사람이 다 때가 있는 거죠.”
마법사는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같은 마법사 출신을 만나니 낯선 곳에서 의지할 이가 생긴 것 같아 더더욱 힘이 되는 것 같았다. 부지점장은 연금술사로 전향한 지 15년째라고 말했다. 마법사는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부지점장인 것이 의아했다.
“뭐 때가 있겠지. 근데 나는 이 위치가 나쁘지 않아.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실적 압박이 장난이 아니거든. 적절하게 텐션을 조절할 수 있는 자리라 괜찮아요.”
‘그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은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어. 사람이 운을 다스릴 수 있으면 결과를 최대로 낼 수 있거든. 마법사들은 주로 타이밍을 마법으로 사용하니까 최적의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는 버릇 같은 게 생겨. 너무 재도 안좋은데 말이야.’
부지점장은 지나치게 기다린 게 아닐까? 마법사는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그 정도의 경력에 학교 때의 실력을 생각하면 이미 높은 자리에 올랐어도 벌써 올랐을 텐데. 지점장도 아니고 아직 부지점장이라니.
“먼저 경험한 마법사로서 한가지 당부하면, 거절에 익숙해져야 해요. 거절을 친구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 보험설계사는. 마법사들은 직관을 따르다 보니 타이밍에 익숙해져서 거절당할 일이 별로 없는데. 보통 먼저 거절해 대잖아요. 이번 생은 여기까지라며. 여기 일은 그렇게 하면 안 돼. 거절은 거절이 아니거든. 거절은 시작일 뿐이에요. 어쨌든 나를 만나줬으니까. 연락을 받아 주고 있는 거니까. 사정이 있는 게 아니고 단지 마음이 없는 거라면 마음을 만들어 가야 해요. 삶의 위기에 대해서, 기회에 대해서 이해를 확장시켜야 하고, 보험에 대한 마음을 만들어 가야 해요. 이미 많이 들었겠지만, 보험은 누구나, 언젠가 들게 되어 있거든.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니고 본인이어야지. 우리는 마법사니까. 그들에게는 특권일 테고. 알게 된다면 말이야.”
“그렇군요. 거절이라.. 선배님도 이 일하시면서 거절당하신 적이 있으세요?”
“왜 없겠어. 초창기에는 장맛비가 쏟아지는데 6시간 동안 건물 처마 밑에서 기다린 적도 있었지. 작은 중소업체 사장이었는데 안 만나 주더라고. 자기가 불러서 왔는데 말이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갔지. 그런데 이번에는 3년 뒤에 다시 찾아오면 그때 들어주겠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요? 다시 찾아가셨어요?”
“찾아갔지. 어쨌든 안 만나겠다고 하는 건 아니니까. 3년 뒤에 다시 찾아갔지. 내가 나타나니까 깜짝 놀라더라구 그런데..”
“그래서요? 보험을 들어 주던가요?”
“아니. 내가 다시 나타날 줄 몰랐나 봐. 지독한 놈이라고 하더니 결국 안 들어 주더라고.”
“아..”
부지점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옛날 일들이, 거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이제 막 보험설계사가 된 후배 마법사를 애처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돼요. 나는 그 사람을 내 주소록에서 지워버렸지만. 마법사님은 그런 일을 당해도 포기하면 안 돼요. 그런 일은 보험설계사의 일상이니까. 마법사 출신 보험설계사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지워버렸지 포기한 게 아니야.”
마법사는 지워버렸다면서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부지점장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종신 또는 종료’라고 이름을 짓고 시작한 이 일의 무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업무를 시작한 마법사 역시 거절을 맞닥뜨려야 했다. 첫 업무가 거절 처리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거절은 첫 계약을 낳았다.
다음은 마법사의 첫 거절 처리 보고서이다.
<첫 거절, 첫 계약에 대한 보고>
그에게 보험을 제안했습니다. 일종의 종신계약 같은 걸 맺자고.
FC 교육 때 강사님이 그러더군요. 인생에 두 번 평가받을 일이 있는데 한 번은 죽었을 때고, 다른 한 번은 FC가 되었을 때라고. 그때 아, 이거 다 했습니다. 인연을 정리하는 방식.
그에게 제일 먼저 제안을 한 건, 그가 먼저 자신의 일과 관련하여 종신계약 같은 프러포즈를 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에 호응하여 조건을 제시한 겁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보험을 들라고. 더 줄 테니까.
그에게는 독특한 단점이 있는데,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얼버무리며 회피하거나 잠수를 타버린다는. 그냥 거절해도 되는데 그는 거절의 말을 하는 게 세상 제일 어렵다며 차라리 일단 잠수를 타고 나중에 혼나는 게 낫다는 식이었습니다. 저의 제안을 받아 든 그는 ‘이번에도 역시’였습니다. 저는 그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저의 신입 FC 컨셉은 ‘종신 또는 종료’가 되었거든요. 그것은 저의 인생 시즌2의 컨셉이기도 합니다.
종료를 선언했으므로 그와의 일들도 종료되었습니다. 문득 잊고 있던 이모님의 주식계좌가 생각났습니다. 어떻게 되고 있지? 아니 이런, 연초에 2%대였던 수익률이 10배쯤 올라 있었습니다. 그때 이모님은 그냥 빼자고 하고 저는 좀 더 기다려 보자 했거든요. 그리고 수익 난 계좌와 종신보험 설계서를 이모님께 내밀었습니다. 거절하기에는 뭣한 이상하고 아름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모님으로 계약을 하려고 보니 근래에 병력도 있으시고 연세도 있고 해서 적절치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자 이모님이 계약자를 저에게는 육촌인 본인의 딸로 하겠다 하시더군요. 종신보험을 상속 재원으로 삼겠다고. 그녀를 만나 일사천리로 계약을 마쳤습니다. 10년에 한 번쯤 보는 그녀가 저의 첫 계약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에게는 종신이 보장되었습니다. 그건 인생의 계약이니.
청약서에 열심히 싸인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아, 10년 전 이맘때 그녀는 출장 가느라 빈 저의 집에서 며칠을 묶은 적이 있다고. 이전의 그 현장 말입니다. 지금은 보험왕들의 파트너 센터가 되어버린 그 타워 근처에 잡았던 그 집,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타워에서의 전투가 언제 끝날지 몰라 야전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집. 그녀는 그 집, 그 전투의 시작에 객이었고, 이번에도 다시 객이 되어주었습니다.
우연찮게도 저는 이 일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다시 그 동네로 돌아와 살고 있습니다. 청약을 마친 그녀에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10년 전 그 동네에 살고 있다고. 10년 뒤에도 그럴 거라고. 그러니 너는 내게 보험을 잘 들었다고.
그러니 저는
10년 전 그 현장,
그 타워로
다시 돌아가야겠습니다.
마크툽!
그렇게 기록되었으니
‘이 사람, 역시 출신은 감출 수가 없군.’
부지점장은 마법사의 거절 처리 보고서를 결제하며 흐믓하게 웃었다. 그리고 마법사의 보고서 위로 자신의 15년 전 시간이 겹쳐 흐르기 시작했다. 비오는 처마 밑에서 6시간 동안 떨어지는 빗방울 바라보며 곱씹었던 생각들, 다짐들. 장사치 취급하며 문전 박대하는 고객들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을 간신히 붙들고 정중히 인사하던 옆구리에 바짝 붙인 떨리던 팔과 꼬옥 쥐고 있던 손. 불의의 사고로 젊은 가장의 임종을 맞은 가족들 앞에서, 지금은 바쁘니 다음 달쯤 종신보험 계약을 하겠다던 가장을 한 번 더 설득하지 못한 후회와 자책. 결국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때와 시절이 있으니 그 간극을 잇는 일은 보험설계사와 마법사의 공통적인 과업이라고. 뒤늦게 이 업業에 입문한 후배 마법사의 거절 처리 보고서를 읽으며 자신의 초심과 아픈 기억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때, 부지점장의 휴대폰 진동이 묵직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네. 여보세요?”
“자네, 나 기억하나? 임 사장이네.”
“네? 누구시라구요? 임 사장님이시라구요?”
“그래. 오랜만이지.”
휴대폰 너머에서는 연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초임시절 부지점장을 6시간 동안 세워놓고도 모자라 3년 뒤에 찾아오라고 하고선 결국 보험계약을 해주지 않은 바로 그 업체 사장이었다.
“그때는 내가 미안했네. 보험을 안 들려고 한 건 아니었어. 그전에도 보면 기껏 사정사정해서 보험을 들어주면 얼마 안 가 관둬버리고 신경도 쓰지 않는 설계사들 때문에 골탕을 먹은 적이 많았거든. 내 그래서, 자네를 소개받고는 초임이라고 하니 얼마나 버티나 보자 하고 시험을 해 본 거야. 나도 자네가 3년 뒤에 진짜로 다시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지 않겠나. 하다 그만뒀을 거라 생각했으면 했지. 당황해서 그만 한마디 한 건데,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자네가 벌써 가버리고 없더군.”
사장은 당시 3년 만에 다시 나타난 부지점장을 빤히 쳐다보며 ‘아주 돈독이 올랐구만. 이런다고 내가 들어줄 줄 알아’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부지점장은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다 사무실을 떠났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휴대폰에서 사장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벌써 15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자네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네. 내가 그렇게 심한 말을 했는데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였지. 그새 내 사업도 많이 성장하고, 미안하지만 중간에 다른 설계사를 통해서 보험도 들었는데, 자꾸 자네 생각이 나더라고. 한 번쯤 다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다리곤 했는데 말이야.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연락을 한 건, 내가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상속도 좀 생각을 해야 하고, 이것저것 벌려놓은 재산들을 좀 정리도 하고 관리도 해야 할 때가 돼서 말이야. 주변에 누구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있나 아무리 찾아봐도, 영 다들 못 미더워서 말이지. 근데 자네 생각이 딱 나더라고. 분명 자네라면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나서 이렇게 전화를 걸어보았네. 역시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구만. 자네 답네. 어때 내 재산을 좀 맡아 관리해 주겠는가? 내 정식으로 사과할 테니. 이 성질 사나운 늙은이의 옛 과오는 좀 용서해 주고 말이야.”
부지점장은 휴대폰을 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걷어붙인 팔뚝을 따라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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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또는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