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우리가 좋은 나라에서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보험설계사가 되겠다고 하니까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아니 네가 뭐가 부족해서 보험설계사를 하려고 하냐고. 돈 들여 공부시켰놨는데 아까우셨나 봐요. 근데 저한테 보험설계사를 추천해 준 언니의 이야기가 이미 제 마음에 딱 꽂혀버렸거든요. ‘보험설계사가 되면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어.'”

마법사는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어떤 일을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법사는 달고나를 팔기도 하고 노점에서 뻥튀기와 멸치를 팔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풍선 인형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졸업식장에서 커피를 판 적도 있다.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일은 그게 무엇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늘 혼자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 했으니.

마법사도 외도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순간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면 그도 여러 번 이제는 돈 버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은 일 대신 돈 버는 일을 선택하려면, 그곳에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만큼 고역스러운 일은 없는 것이다.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마법사가 될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돈도 버는 일이네. 이 일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 돈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만나서 누구에게 보험을 제안할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린 거잖아. 그리고 평생을 보장하는 일이니, 우선순위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겠지. 그들의 삶을 돌보는 일이 곧 돈 버는 일이라니. 세상에, 이래서 다들 연금술사가 되고 싶어 했구나.’

마법사는 마음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외로웠던 지난날은 언제나 그들의 선택에 의해 관계가 중단되고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중단과 단절은 마법사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상대의 어떤 선택에 의해 통보된다. 마법사는 위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수 영역은 최초의 상호 간의 계약에 의해 자동으로 설정된다. 꿈의 길 말이다. 그 길에서 벗어나면 마법사는 그 경계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세계는 분리되는 것이다. 물론 지구는 둥그니까 어디로 가든 목적지에 닿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마법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으면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고, 그리고 단절되고 중단되었어도 꿈의 길에서 다시 만나면 서로 환하게 웃으며 재회할 수 있을 거라 꿈꿔왔다. 그리워하며.

마법사는 지난 단절된 관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하나하나의 이름. 하나하나의 꿈. 하나하나의 마음과 하나 하나와 마주 잡은 손. 마주 잡은 두 손이 둥실 떠오르고 함께 좋은 나라로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교육장을 빼꼭히 채운 교육생들의 두렵고 설레는 마음도 함께 손을 마주 잡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 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 거예요

그곳 무지개 속 물방울들처럼
행복한 거기로 들어가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동산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고 결심했어.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일이라니. 이건 내가 그동안 마법사로서 해 온 일들과 하나 다르지 않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람을 돌보는 일 말이야. 꿈을 이루도록 돕는 일 말이야. 그런데 나는 그들이 길을 벗어나면 매번 중단하고 멈추어야 했어. 그건 내 뜻이 아니야. 내 의지가 아니야. 그건 마법사의 규약이야. 그런데 보험설계사는 그래도, 그렇더라도 찾아갈 수 있지.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어. 그게 이 업業의 소명이니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종신을 서약하는 거니까. 나는 언제나 곁에 머물 거고 나와 종신 계약을 맺은 그들은 나를 언제나 찾을 수 있지. 그들이 필요로 할 때마다.’

보험설계사의 업業은 그런 것이었다. 종신을 서로에게 약속하는 업業. 그래서 마법사는 후배 연금술사가 중간에 다른 사업을 한다고 보험설계사를 그만두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 네게 보험을 계약한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들은 누가 돌보냐고?

“형. 직업을 바꿨다고 업業을 그만둔 게 아니에요. 이 업業은 그럴 수가 없어요. 저는 지금도 저한테 보험을 계약한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어요. 그들은 일이 생기면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요. 그리고 저는 그들에게 생긴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구요. 행정적인 업무는 함께 일하던 다른 연금술사들에게 이전되지만, 저는 업業을 바꾸었어도 여전히 FC인 거예요. 우리가 맺은 계약은 신뢰 계약 ‘Faith Contract’이니까요. 그건 만기까지 종신토록 Forever라구요.”

그랬다. 마법사와 맺는 계약이 운명의 계약이라면, 보험설계사와 맺는 계약은 신뢰의 계약인 것이다. 믿음으로 고객의 남은 삶을 돌보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마법사는 운명이 다하면 ‘이번 생은 여기까지’하고 물러나야 하지만, 보험설계사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보험설계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험을 제안하는 것이다. 돈만 벌려면 누구에게나, 아무에게나 보험을 팔아대겠지만, 그러면 싫은 사람과 평생을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게 싫어 중단해버리면, 나 몰라라 하면, 이 업業은 생명력을 잃고 하찮은 보험팔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이 업業이 망가져 온 세월이 오래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험설계사들을 꺼리고 멀리한다.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사람들인데.

‘편견과 오해는 마법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야. 이 시대의 보험설계사들은 선배들의 몰지각한 영업행위 덕에 마녀사냥을 당했지.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인데. 그들은 보물을 돈과 바꾸었어. 그리고 아무한테나 보험을 팔아댔지. 책임지지도 못할 사람들과 믿음의 계약을 맺은 거야. 그리고 사라져 버렸지. 믿음과 신뢰는 종이 쪼가리가 되어 짓밟혔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보험을 그런 장사치들의 농간 때문에 필요한 때에 가입하지 못하고 중요한 때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어. 그런데 베테랑 설계사들은 다르더라고. 그들은 고객의 요청을 귀찮아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소개의 기회로 여기더라. 자신의 친절과 살뜰한 보살핌이 전염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오랜 시간, 이 업業을 지켜 온 이들은 그랬다. 온갖 사탕발림으로 계약을 마친 장사치들은 나 몰라라 하는 그것들, 한없이 귀찮기만 해 보이는 그런 일들을 이 업業을 지켜 온 연금술사들은 성심을 다해서 보살폈다. 그리고 그것은 신뢰의 증표로 전염되고 전파되어 새로운 계약으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사람이 소개한 사람이니, 그 관계 역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연결되고 연결된 관계들이 이 업業을 단단히 떠받치고 있었다. 전 국민의 97%가 가입되어 있다는 이 업業.

‘97%라니. 나는 이 관계망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거야. 여태 보험 하나를 들지 못했으니. 돈이 없기도 했지만, 누구도 내게 보험 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어. 왜 그 흔한 보험설계들이 내 주변에는 하나도 없던 거지. 왜 내 주변인들은 내게 보험 하나는 들어야 한다고 권유하지 않았던 거지. 3%에 속해 있었다니. 들 마음이 없지도 않았는데.’

마법사는 서글픈 마음이 들어 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두가 가입되어 있던 그것에, 마법사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살고 있던 좋은 나라에 마법사는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여사님은 지금 95세예요. 50대에 시작한 이 보험설계업을 아직도 하고 계신답니다. 여전히 매주 계약을 하신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강의실에는 95세가 되어서도 현직으로 활동 중인 보험설계사의 인터뷰가 상영되고 있었다. 오래 사신 것도 대단한데, 그 연세에 여전히 믿음의 계약을 계속하고 있다니. 마법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동영상 속 노년의 연금술사를 뚫어져라 올려 보았다.

‘세상에 95세라니. 나야 뭐 마법사 인생 900년이지만, 하나의 생에, 그것도 95세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계약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말년의 보험설계사와 계약을 맺는 걸까?’

마법사는 생각했다. 95세의 보험설계사와 종신계약을 맺는 고객들의 마음은 무엇일지.

‘그건 대관식에 참여하는 하객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거야. 하나의 영광된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영예. 그리고 대를 이어 전수될 믿음의 계약에 대한 신뢰. 어떤 이가 자신의 업業을 죽기까지 지켜내고 있다면, 그 업業에 대한 신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 결심했어. 나도 보험설계사가 되어야지. 이 업業을 내 종신에까지, 이번 생이 종료될 때까지 지켜나갈 거야. 내가 좋아하는 그들과 함께.’

그렇다. 계약은 상호 간에 이루어지고 지켜지는 것이다. 누구 하나가 계약을 파기하면 그것으로 계약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험의 계약은 신뢰의 계약이고 그것으로만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의 보증을 고객은 매월 납입하는 보험료로 증명하고 보험설계사는 그들의 요청에 성실히 임하고 그들의 삶을 돌봄으로써 보증하는 것이다. 이 단순명료한 계약이 마법사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마법사로서의 사명을 더욱더 잘 수행하기 위한 세컨 잡(Second Job)으로서 이 업業이 훌륭하다고 느꼈다.

‘이제 나도 좋은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지.’

보험설계사가 되기로 결심한 마법사는 97%가 살고 있다는 좋은 나라에 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나 세상에 쉬운 일이 없으니, 좋은 나라에 들어가고픈 그의 앞에는 거대한 거절의 강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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