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다시 돌아온 헬로 타워

 

 

 

 

 

마법사의 심장에 화살이 그대로 날아와 꽂혔다. 불신의 화살이. 마법사는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혈투가 벌어진 지 오래인 헬로 타워 15층에 탈출구는 없었다. 날아오는 불신과 비난의 화살로부터 최대한 몸을 피하며 마법사는 그대로 몸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떨어져 내렸다. 타워 꼭대기에 ‘HELLO’라고 쓰인 거대한 네온사인이 대낮임에도 환하게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아, 이대로 이번에도 넘어서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구나. 좀 더 믿어주지. 나는 당신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마법사는 떨어져 내리며 생각했다. 이번에도 실패했다고. 사람들은 이번에도 기적을, 성취를, 실현되려는 꿈을 두려워하고 말았다고. 부우웅, 떨어져 내리던 마법사의 몸이 무언가에 걸려 다시 날아올랐다. 심장에 박힌 화살 끝에 달린 로프가 어딘가에 걸려 팽팽하게 당겨진 것이다. 이대로면 다시 타워로 끌어올려질지도 모른다. 성난 적들이 달려와 마법사의 몸을 낚아챌 수도 있다. 마법사는 망설일틈도 없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어 들고 그대로 화살이 박힌 심장 끝의 일부분을 도려내어 버렸다. 화살촉 끝이 심장을 통과하여 깊게 박힌 탓에 갑상선과 성대가 함께 뜯겨져 나갔다. 장기를 내어주고야 빠져나올 수 있는 극한 상황. 어머니 대지의 중력은 난자당한 마법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고 마법사는 떨어져 내리며 멀어져 가는 타워의 꿈, 그의 꿈, 마법사의 소명을 생각했다. 슬픔에 잠겨 들었다.

‘그는 나를 받아 주었어. 모두가 반대했지. 하지만 그는 내가 마법사인 걸 알고 있었던 듯, 내게 기회를 주어 보자고 했지. 나는 그의 꿈이 궁금했어. 마법사가 하는 일이란 사람들의 숨겨진 꿈을 읽어내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돕는 일이니. 그는 언젠가 자신의 도전이 내부의 심한 반대로 좌절되고는 잔뜩 취해서 지하철을 타고 잠이 들었대. 깨어보니 종점. 어머니의 식당이 있는 동네 종점이었대. 그는 그대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 밤새 울었대.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이 사람의 꿈을 꼭 이루어 주어야겠다 결심했어. 자기 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거든. 모두가 망설이느라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기적을 일으켰지. 고양이 목에 방울 거는 법을 가르쳐 줄까? 그건 간단해. 방울을 들고 고양이에게 뚜벅뚜벅 다가가서 목에 방울을 거는 거야. 모두가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것을 그것을 그냥 하는 거야. 계산하느라 주저하는 그것을 계산 없이 그냥 하는 거야.’

마법사는 많은 기적을 행했다. 기적은 별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뿐이다. 마법사의 마법은 다른 세상으로부터, 세상에는 없는 것들을 가져오는 마법이 아니다. 모두가 가지고 태어난 그것, 저마다의 미래 기억 속에 기록되어 있는 가능성의 기억을 현실에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씨앗과 도구를 가지고 세상에 온다. 그것은 성장하고 발아하며 세상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이들의 그것은 두려움의 장막 속에 갇혀 빛도 보지 못하고 썩어들어가는 것이다. 마법사에게는 그것이 보이고 그것이 들린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말과 글, 생각 속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말과 글 속에 섞여 세상에 모습을 쭈뼛쭈뼛 드러낸다. 그러나 꿈의 주인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꾸 숨기고 뒤로 밀쳐놓고는 한다. 그것을 마법사는 탐색하고 발견하여 끄집어내고 세상에 펼쳐내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성취를 경험한다. 그러나 가지고 태어났으나 부끄러워 존재도 모르고 있던 그들의 검은, 그것을 찾아준, 그 존재를 밝혀 준 마법사에게 배신의 칼이 되어 등에 날아와 꽂힌다. 사람들은 성취를 두려워하니까. 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에게 그것은 저주가 될 수 있으니까. 마법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검을 찾아 준 죄를 물으며.

‘헬로 타워에서 그 일은 반복되었어. 선배들은 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에게 함부로 검을 찾아주어선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매번 외면할 수가 없었어. 그들의 눈이 너무 간절하니까. 그도 처음에는 자신에 손에 쥐어진 검의 능력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어. 그리고 자신 있게 휘둘렀지. 검의 에너지는 자신감에서 나오니까.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야. 그는 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도전의 강도를 높였지. 아니 높인 건 자신감에 충만한 그 자신이었어. 나 역시 그가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지. 그러나 그는 두려움을 덥석 집어먹고 말았어. 자신의 꿈을 끝까지 믿지 못했기 때문이야. 작은 돌부리에 넘어진 거야. 자기 확신 부족이라는. 처음에는 다 그런건데.. ‘

압력이 높아지면 밀도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자신감이 높아지면 주변의 시기, 질투도 함께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업그레이드된 도전의 단계, 꿈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첫 승리는 시작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들은 여기서 방심하고 시기, 질투와 싸우려 들기보다, 제자리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진다. 차근차근 시간의 역사를 쌓아 올린 도전이 아니라면 더더욱. 빠른 성취가 두려움의 에너지를 함께 끌어올린 것이다. 부족한 자기 확신은 지나친 자기 확신만큼이나 유해하다. 그러나 자기 확신은 반복되는 도전과 성취를 통해서만 길러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랐어. 그러려면 내가 사라져줘야겠지. 늘 그랬듯이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로 향해지기 시작했어. 그가 용인했으니까. 그리고 조장하기도 했지. 마법사는 그 지점에 이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자신을 변호하거나 논박할 수도 없어. 상대를 붙잡고 차근차근 이해시키고 마음을 돌려놓을 수도 없어. 그건 마법이 아니니까. 마법사는 그 지점에 이르면 입에 재갈을 물게 되지. 아무 말도, 아무런 변호도 할 수 없어. 그냥 떨어져 내리는 수밖에. 쏟아지는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냥 떨어져 내리는 수밖에 없는 거야.’

떨어져 내리던 마법사의 몸이 지면에 닿자, 대지의 어머니는 그대로 자신의 몸을 열어 대지 아래 차가운 지하 호수 속으로 그를 인도했다. 풍덩 하고 빠져든 마법사의 몸은 그대로 가라앉아 내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지의 호수 아래로. 멀어져 가는 세상 너머로 마법사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센트럴파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목소리. 그리고 울리는 피아노 소리.

‘만신창이가 된 몸을 치유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 그만큼 격렬했던 전투였거든. 보험도 하나 없이 말이야. 혼자 병원에 입원해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지. 마취가 깨어나자, 온몸이 마구 쑤셔대는데 깨달았지. 성대가 뜯겨 나갔으니 말을 할 수 없다는걸. 의사는 억울한 일이 많았냐고 물었어. 울화통에 암이 생겨 마구 증식을 했다고 22개의 전이가 있었고 내가 화살을 빼내려고 도려낸 자리를 따라 마침 자라나고 있던 암덩이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고. 운이 좋았다며. 운 없는 마법사로 유명한 내게 운이라니. 그건 살려면 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인데’

마법사에게 큰 상처를 안긴 헬로 타워의 혈투가 있었던지도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성대를 뜯겨 말을 할 수 없었던 마법사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목소리를 되찾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운명은 그에게 새로운 변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를 가여워했으므로.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법사는 보험설계사가 되었다. 지난 10년 한없이 가라앉아 있던 마법사에게 10년 만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가 하필 보험설계사라는 것은 너무 낯설고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희망이 생겨났다. 나도 이제 무언가 보장받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무엇보다 변변한 보험 하나 없이 살아 온 마법사 자신부터 보장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법사에게 필요한 보험은 어떤 보험일까? 보장성? 연금성? 연금술사들에게 물어봐야겠군.’

오늘은 마법사의 첫 출근 날이다. 보험설계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날이다. 흥분되는 마음과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주소에 나와 있는 본사를 향해 걷던 마법사는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본사 건물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여긴… 헬로 타워잖아.”

그랬다. 10년 전 혈투를 벌이던 그 헬로 타워가 마법사를 보험설계사로 변신시킨 보험회사의 본사 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4월이었다. 헬로 타워에서 떨어져 내린 10년 전 그때가. 그리고 다시 보험설계사가 되어 돌아온 지금이. 정확히 10년 전 4월에서, 10년 뒤 4월로. 두 개의 세계가 고스란히 바톤을 터치하듯 이어진 것이다. 지난 10년을 고스란히 접어두고.

“오늘 드디어, 보험설계사로서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를 어떻게 보든,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면, 많은 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때에 정작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의 망설임은 누군가의 미래와 어떤 가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보험을 설계한다는 것은 사람의 인생을 설계하는 일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일입니다. 누가 보장을 받고, 누가 수익자가 되고, 누구의 삶이 담보되는지. 우리는 고객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가장 안전한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제시한 길이 어떤 이들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도, 또 어떤 이들을 혼란에 빠져들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철학과 인생관으로 고객 곁에 다가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일입니까? 그것이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 일이 사람들의 잘잘못을 심판하는 일보다 하등한 일입니까?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들, 고객들의 삶으로 풍덩 빠져듭시다. 그들과 함께 헤엄칩시다. 여기 서로가 서로의 삶을 보장해 주는 안전한 구명보트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여러분들의 소중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의 삶의 안전한 항구가 되는 겁니다. 자, 다 같이 일어서서 함께 구호를 외칩시다.

보험설계사가 대접받는 그날까지,
가자! 가자! 헤엄쳐 가자!
고객 속으로! 삶 속으로!”

단상에 선 작은 키의 여자 사업본부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자, 환영식장을 빼곡히 채운 신입 보험설계사들은 모두 벅차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리 높여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영식장에는 서로의 시작을 응원하는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내렸다. 마법사의 마음도 함께 뜨거워졌다. 반목과 의심의 화살이 쏟아져 내리던 이 헬로 타워가 이제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보장해 주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거는 전사들로 가득 차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가라앉으려는 이웃들의 삶 속으로 깊이 찾아 들어갈 것이다. 심지어 그들의 죽음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가족들을 계속 돌보고 지켜 나갈 것이다. 그런 일을 하겠다고 자원한 전사들로 이 공간이 새롭게 부활한 것이다. 불신과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이곳이. 그리고 함께 동료가 된 보험설계사들을 바라보며 이제는 혼자가 아니구나, 외롭지 않겠구나, 따뜻해졌다.

‘사람들의 냉대가 기다리겠지. 수도 없는 거절을 처리해야 할 테고. 선입견과 맞서야 할 날이 매일일 거야. 하지만 결국 누구나, 언젠가, 보험을 들게 되고 혜택을 받게 되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이고, 위기에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지. 그래 이들도 마법사였던 거야.’

마법사는 다시 돌아온 헬로 타워에서 숨겨진 칠천의 마법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고독하게 삶의 현장에서 싸우는 전사들이다. 몰이해와 배척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사람들의 삶과 위기를 한낱 돈벌이로만 취급하는 어리석은 업자들이 보험설계사들의 위상을 한없이 갉아대지만, 그럼에도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삶의 연결을 이어가는 연금술사들이 위기의 순간에 이웃들의 삶에 마법을 내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찾아온 그날 약속되어진 것이다. 그들이 이웃들의 삶 속으로 풍덩 뛰어든 그날 제시되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지난 관계들에게, 중단되고 단절된 모든 관계들에게 먼저 찾아가야겠지. 그들에게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이제 너의 곁을 떠나지 않고 돌보겠다고 약속해야겠지. 나는 보험설계사가 되었으니까.’

마법사는 중단되고 단절되어 온 지난 관계들을 떠올렸다. 그리운 얼굴들, 보고 싶은 얼굴들. 그러나 운명을 따라, 마법사의 규약에 의해 더 이상 관계를 이을 수 없었던 모든 관계들을 떠올렸다. 그렇다. 희년인 것이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그리고 마법사는 보험설계사가 되었으니 그들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안해야 하는 것이다.

‘종신 또는 종료’

그때 어디 선간 띵동, 띵동 하고 알람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태블릿이었다. 로마에서 천사가 건네주고 간 태블릿. 태블릿이 저절로 켜지며 화면에 중단되고 단절되어 있던 이들의 연락처들이 하나하나 화면에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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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또는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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