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수트 입은 마법사

 

 

 

 

 

“형은 참 극단적이우. ‘종신 또는 종료’가 뭐예요? 될 때까지 하는 거지. 보험은 들 때까지 그냥 계속 관리하는 거예요. 들면 좋고 아님 마는 거고. 설계사가 보험금 줍니까? 회사가 주는 거지. 우리는 그냥 중개만 하면 된다구요. 그렇게 무겁게 생각하심 이거 오래 못해요. 암튼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다들 극단적이라니까.”

“그러니까 니들 연금술사들이 연금쟁이 소리를 듣는 거야. 사람이 돈으로만 보이니? 관계, 관계가 중심이어야지. 보상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잖아. 영업에 대한 대가만이 아닌 거잖아. 앞으로도 계속 고객의 삶을 잘 관리하라고 회사와 고객이 주는 비용인 거 아니야?”

“그러기엔 한참 부족하죠. 수당 받아서 경조사 챙기면 없어요. 노골적으로 때마다 선물 요구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형도 해보면 느낄 거요. 만만치 않습니다. 이 일.”

“그래서 니가 부자들만 쫓아다니는구나. 맨날 의사, 변호사 뒤꽁무니만 쫓더니. 내가 교육을 받아보니, 보험은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거더라. 부모 잘 만난 금수저들이야 받을 유산도 많은데 가난한 이들은 받을 유산이 없잖아. 그거 미리 준비하는 거더라고. 부모님을 피보험자로 종신보험을 들고 나중에 돌아가시면 유산 대신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겠더라고. 그런 방법이 있는 줄 몰랐네.”

“맞아요. 그게 정석인데.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보험을 못 들어요. 내다가 못 낼까 봐. 정작 부자들이 세 개, 네 개 들어요. 상속세 준비하려고 말이에요. 그러니 전들 어쩌겠어요. 불러주는 이들이 부자들인데.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백날 설명해 봐야 서로 한숨만 나와요. 사정이 빤하니까”

“나도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이가 이만치 드니 보험료가 만만치가 않으니 말야. 그런데 너는 왜 나한테 보험 들라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니? 신기한 게 나는 여태까지 그 흔한 보험설계사를 만나 본 적도 없고, 누가 보험 들겠냐고 물어본 적도 없어. 주위에 보험과 관련된 사람은 딱 너 하나였는데 말이야.”

“아.. 그야, 형은 돈이 없잖아요. 어차피 내지도 못할 텐데.”

“아니, 그래도 너가 보험 한지가 벌써 언젠데. 아니 내가 십 년 전에 암 걸렸을 때보니까 다들 억대 보험금을 타더라. 그땐 생각도 못 했는데, 이번에 교육받으면서 보니 왜 쟤는 나한테 연락은 계속하면서 보험 들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했나 생각이 들더라고. 아무리 내가 돈이 없기로서니 암보험 하나야 안 들었겠니? 그러면 나도 보험금 좀 탔을 거 아니냐구.”

“에구, 형. 형은 내가 아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제일 돈이 없었어요. 어차피 내다 못 내고 실효될게 뻔한데 말해 뭐해요.”

마법사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기억해 보면 연금술사 후배가 찾아올 때마다, 보험 들라고 그러면 어떡하나, 부담스러웠던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마법사에게 보험을 권유한 적이 없었다. 그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맙기도 하면서 서운하기도 한 일이다. 매번 잊지 않고 자신을 찾아준 것. 수많은 중단된 관계들 속에서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던 힘이 보험설계사들의 영업매뉴얼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하면 일견 서운하기도 하지만, 한편 그런 형식이 주는 일관성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제까지 이어오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보험설계사들에게는 유지율이라는 것이 있어서 고객이 보험료를 연체시켜 실효가 나거나 청약이 철회되면 보상률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마법사는 그가 왜 자신에게 보험을 권유하지 않았는지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연금술사의 업業이니까. 업業을 견고하게 세워 가기 위해 리스크를 조절하는 일은 중요하지. 게다가 녀석의 성실한 업무 습관이 우리의 관계를 지금까지 이어오게 만들었잖아. 중단된 관계들 속에서도 말이야.’

“아니, 그 나이에 양복도 한 벌 없어요?”

면접장에 들어서는 마법사의 복장을 본 본부장이 마법사를 위아래로 훑으며 한마디 했다. 검은 별이 박힌 캔버스 운동화에 블랙진, 이것은 마법사의 제복이자 근무복이기도 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구를 걷고 걸으며 상호작용을 이어가야 하는 마법사에게는 활동성이 제일 우선이기 때문이다. 면접 복장이 정장이라고는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최소한의 예의랍시고 넥타이에 재킷 정도만 걸친 마법사는 별생각 없이 면접장에 들어섰다가, 당황하는 본부장의 눈빛을 보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다른 세계에 들어서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마법사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잠깐 외도를 한 적이 있다. 과업을 중단하고 직장을 찾아 입사지원서를 낸 것이다. 월급을 받으려고. 다양한 상호작용의 결과물 덕택에 이력과 프로필이 빵빵하니 입사 전형은 일사천리로 통과하고 임원면접만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그때 마법사는 흔들렸었다. 면접 조건도 아니었는데 양복을 꼭 입어야 할 것 같고 마법사의 상징인 수염과 귀걸이를 빼야 할 것 같았다. 합격하고 싶었으니까. 취직하고 싶었으니까. 안정된 급여를 누리고 싶었으니까. 밤새도록 번민에 시달리던 마법사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면도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차마 수염을 밀 수는 없었어. 그건 마법사의 신분을 포기하는 일이니까. 모든 마법사가 수염을 기르는 것은 아니지만, 수트를 입는 마법사들도 많지만, 나는 마법사가 되면서 스스로 결심한 것이 있었어. 수염과 귀걸이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정장을 입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법사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면접에 나가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수화기 너머 담당자는 이런 일은 세상 처음 보겠다는 톤으로 당황스러워했다. 형식적인 임원면접만 보면 합격인데. 취직인데. 안정적인 월급의 세계에 편입될 수 있는데. 그리고 마법사는 그대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세상에 없던 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다. 보상 대신 병을 얻었다.

‘형식에 매여서는 세상에 없는 일을 만들어 낼 수 없어. 하지만 세상에 없는 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혼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해. 세상에 없는 일이니, 이해하는 사람이 없거든. 그리고 혼자가 된 사람은 질병에 취약해지지.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마법사는 세상에 없는 일을 만들어 내고는 암에 걸려버렸다. 금덩이 대신 암덩이를 얻은 것이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관계들이 중단되고. 그는 혼자 내버려졌다. 변변한 보험 하나 없는 마법사는 돈도 관계도 없이 병마와 싸우며 홀로 버텨내야 했다. 잘라도 잘라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우울을 견디며 스스로를 돌봐야 했다.

‘그런 때에도 녀석은 잊지 않고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왔지. 그게 영업매뉴얼이었더라도 나는 고마웠어. 외로웠거든.’

“여러분 저는 말이죠. 혼자 안 다니고 꼭 팀원들과 함께 조인트 웍을 나갔어요. 제 팀원들이 어땠는 줄 아세요? 업무도 서툴고 운전도 못 해요. 저 멀리 지방까지 운전도 제가 하고 계약도 제가 했어요. 녀석들은 옆자리에서 처 잤죠. 그런데도 꼭 공동계약으로 넣었어요. 수당을 나누었죠. 혼자 하면 수당을 혼자 다 가져갈 수 있는데. 제가 왜 그랬는 줄 아세요?”

선배 강사가 교육생들에게 물었다. 왜 자신이 꼭 팀원들과 함께 조인트 웍을 나갔는줄 아냐고.

“외로웠거든요.”

마법사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법사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무슨 위대한 일을 벌이겠다고 늘 혼자였다. 언제나 함께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했고, 마법사는 어떻게든 함께 결과를 만들어 가능한 일이라고, 너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등에 업고 걸었다. 걷고 또 걸어 고지에 올랐다. 그리고 알아버렸다. 혼자 걷고 있었다는 걸.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이건 형식이지만. 세상에 왜 형식이 존재하겠어. 봄여름가을겨울은 왜 순서를 어기지 않고 순환하겠느냐고. 기다리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때에 따라 서로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야.’

외로운 마법사에게는 형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법사는 새로 정장을 장만했다. 별이 달린 운동화와 블랙진은 언제든 입을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종신토록 돌보려면 보험설계사는 수트를 입어야 한다. 그것은 보험설계사가 된 마법사의 새로운 제복이다. 외로움에 지친 마법사가 자신과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갖춰 입어야 할 정중한 갑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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