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종신 또는 종료
교육장은 한겨울임에도 열기로 후끈했다.
‘아! 이들은 삶의 최전선으로 파병을 기다리는 전사들이구나.’
보험설계사 교육장에 들어선 마법사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세상의 편견이 이 업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럼에도 이 업業에 자신의 삶을 던지는 개개인의 사정과 마음이 어떠한지를, 교육장에 빼곡히 앉아있는 교육생들의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절실하고 간절해 보였다. 눈빛 속에는 당장 그만두고 뛰쳐나갈까, 내가 여기 왜 와 있는 거지 하는 후회막급인 생각과 새로운 삶,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절박한 마음이 격렬하게 부딪히며 싸우고 있었고, 의자 밑에서 달달거리며 초조해하는 다리와 아닌 척 태연한 척, 애써 웃고 있는 긴장한 표정이 서로 교차하며 교육장을 흘러넘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알싸한 긴장감은 마법사의 마음을 아프고 설레게 했다.
‘이것이 삶이지. 이것이 생이지.’
흐리멍텅 하루를 사는 직장 노예들이 얼마나 많은가. 산업사회의 개미들은 그저 한 달의 새경을 위해 하는 척, 듣는 척, 움직이는 척, 얼마나 많은 위장과 포장으로 하루를 낭비하며 사는가. 그들은 나약한 자신을 대신할 희생양을 찾아 온갖 가십들을 쫓으며 타인의 사생활을 검색해 댄다. 레이다 망에 걸린 그것은 점심시간과 휴게실을 점령하고 그 도마 위에는 세상의 온갖 셀럽들이 올라간다. 물론 언제나 메인 메뉴는 상사이고, 너무 잘나가 질투를 야기하는 잘난 동료, 선후배들이지만.
그러나 여기 이곳, 영업의 현장에서는 그럴 시간도 그렇게 함께 물고 뜯고 씹어 줄 동료도 없다. 누구를 씹을까? 찾을 것은 고객뿐이고 고객의 삶을 보장하는 설계로 하루를 가득 채워도 모자란 이들이다. 이들의 성과는 곧 위기를 보장하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곳이었구나. 맞아, 이 업業이야말로 마법이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법사는 시작된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낯선 단어들이 하얀 프로젝터 스크린 위를 마구 날아다녔다. 보장과 연금, 특약과 주계약, 청약, 해약, 환급금, 보험금, 20년 납과 종신.
‘아 종신, 종신(終身). 이것은 종신을 말하는구나. 이 업業은 종신을 말하는 것이었어.’
종신(終身)
: 목숨을 다하기까지의 동안.
세상 어떤 일이 종신을 말할까? 어떤 업業이 종신을 말할까? 물론 영원을 말하고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팔면 그뿐인 것들이 주로 평생을 얘기하지 않던가. 그것이 이 업業의 약점이기도 했다. 팔면 그뿐이었던 그간의 설계사들의 행태가 이 업業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색안경을 끼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강단에 선 많은 선배들이 벌써 이 업業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삶의 기회들 앞에서 선배 설계사들은 자신들의 고객을 두고 나올 수 없어 자신의 업業을 바꾸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고객은 가족이고 계약기간은 종신이니까. 그러니 이 업業을 누가 할까? 누가 할 수 있을까?
“형, 그런 마음이면 보험 잘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그런 보험설계사를 원하거든요.”
연금술사 후배는 말했다. 그것이 이 업業의 본질이라고. 종신계약으로 묶인 관계들, 인연들, 운명들. 그것은 운명적 관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보상하는 계약. 죽음의 자리에 나타나야 할 관계. 베테랑 설계사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장례식장에 어떻게 가겠어요. 고객의 죽음이 유가족에게 남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보험설계사가 무엇을 들고 가겠어요.”
마법사는 순간 흠칫했다. 그 자리가 선택이 아니구나. 존재가 세상을 떠난 자리에 새로운 기회와 위로를 매우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보장하는 설계사는, 어쩌면 유가족에게 진짜 위로를 전하는 존재이겠구나. 백 마디의 말보다 위로가 되는 현금. 자본주의적인,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이 상품은 유태인들이 만들었단다.
“유태인들이 말이죠. 사람들이 자꾸 세상에서 자신들을 지우려고 하니까 말이죠. 자신들을 존속시키는 게 언제나 당면과제였어요. 그래서 보험사를 찾아왔대요. 사망보험금을 만들어달라고. 그래서 유태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찌감치 종신보험을 준비해요. 그리고 자신의 죽음과 함께 손주들에게 보험금을 유산으로 남기죠. 그러면 그들의 자손들, 유태의 젊은이들은 사회생활의 시작점에서부터 자기 자본을 구축한 채로 도전할 수 있어요.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밑천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역사가 증명해 왔죠.”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세상에 존속시키기 위한 매우 현명하고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자신들이 딛고 서 있는 세상의 방식을 정확히 이해한. 자본주의적인, 매우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그것이 종신보험의 시작이었단다. 그리고 그들은 그 수많은 제거 시도에도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움직여 가고 있는 것이다.
마법사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간 마법사의 마법은 언제나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들에게 방패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자본으로 전쟁을 치르는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실력도 자본과 연결되지 않고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온갖 마법으로 간신히 세상에 펼쳐 놓아도 지속하는 일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혼신을 다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전부 바쳤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유지는 할 수가 없었다. 고지를 탈환해도 유지를 할 수가 없었다. 탈진하고 번아웃 되어 버텨낼 에너지가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애씀과 피나는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을 무혈입성하듯 자본이 덥석 집어먹기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마법은 김중배의 절대 반지에 굴복해야 했다.
‘종신이라, 목숨을 다하기까지 묶이는 관계라니. 그런 것이 혈연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 종신보험을 파는 보험설계사는 고객의 죽음에 동행하는 자이고 그들의 유가족을 돌보는 자이구나.’
마법사는 강사의 현란한 논리에 세뇌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논리는 마법사가 인연들에게 고하였던 메시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운명이 다하기까지 상호작용을 이어 나가는 관계 말이다. 그러나 운명은 짧았다. 그래서 중단된 관계들은 다음 운명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마법사는 그 기다림이, 매번 단절되고 다음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마법사의 운명이, 가혹하다고 느껴왔다.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운명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마법사에게 일상적 관계들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볍게 만난 관계들조차 마법사와의 운명을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 운명의 시계는 카운트를 시작해 버렸다. 그리고 중단, 중단. 단절, 단절.
‘그런데 이것은 종신이 아닌가. 계약이 시작되면 종신토록 상대와 단절될 수가 없는 거야. 고객과 그들의 가족을 돌보고 케어하는 일이 이 일의 전부니까.’
“네 맞아요, 형. 그러면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인연들을 소개해 주죠. 그렇게 고객들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일을 아주 오래 할 수 있어요. 그게 연금술의 모든 것이랍니다. 것봐요 형, 잘하실 것 같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추천한 거라구요.”
마법사는 보험설계사의 일이 마법사의 일과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그저 고객을 늘리기 위해 별 쓸모도 없는 판촉물과 스팸스러운 전단지들만을 무수하게 쌓아놓고 가는 줄 알았던 보험설계사들이, 실은 자신의 목숨이 다하기까지 삶을 관리할 인연들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는. 그리고 그것은 보상을 전제로 한다. 계약 즉시 보상은 실현되고. 보험설계사에게 그것은 뒤로 미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남은 것은 종신까지 고객의 삶을 관리하는 일. 경조사와 입,퇴원, 병과 사고. 삶의 우울하고 당황스러운 순간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들 중에 그들이 있는 것이다. 또한 질병과 사고로 닥친 인생의 위기에 보험금이라는 자본주의적 대안을 보장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마법을 대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보장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 나는 그동안 뭘 하고 돌아다닌 거지.’
매번 부족한 예산에 허덕이던 마법사는 자본주의가 잉태한 놀라운 연금술을 여직 모르고 고군분투한 세월이 한탄스러워졌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익히지 않았다면, 이 업業은 그저 그런 생계 수단에 불과하겠지. 종신(終身)은 말뿐일 테고.’
“여러분, 사람이 인생에서 두 번 사람들에게 평가받을 일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첫 번째는 죽음이구요. 두 번째는 보험설계사가 되었을 때랍니다. 여기 이 교육장을 나가서 시험에 합격하시고 보험설계사가 되시면 여러분들의 관계는 심판대에 오르게 됩니다. 살아 온 모든 관계들을 한번 다 뒤집게 되실 거예요.”
강사는 선포했다. 당신들은 이제 관계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 거라고. 보험설계사의 신분은 그런 거라고. 어떤 이들은 당신의 전화를 받지 않을 거고. 당신을 피해 다니게 될 거라고. 사람들은 기회를 의심하기에 제대로 듣지도 않고 여러분들을 호객꾼 취급할 거고, 위기에는 당당해서 나는 그런 병, 그런 사고에 걸리지도 당할 일도 없으니 보험 따위 필요 없다고. 그러나 사람은 언젠가 보험을 든다고, 인생의 위기는 목격되고 반복됨으로 사람은 언젠가 보험에 들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관심과 돌봄은 계약자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이에게 열려있어야 한다고. 사람은 언젠가는 보험을 들게 되어 있으니까.
‘아하! 이거다. 그래 이거였어! 은퇴를 준비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겠어. 그래, 보험설계사가 되는 거야. 그러면 계약이 운명이 되는 거야. 종신계약은 죽기까지 단절되지도 중단되지도 않는 것이니. 나는 그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키고 돌볼 수 있게 되는 거야. 게다가 상대의 선택과 상관없이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연결할 수 있잖아. 보험설계사니까! 잘 지내니? 연락하는 건 당연하잖아!’
마법사는 유레카를 외쳤다. 이 얼마나 단순명쾌한 방식인가. 보험설계사의 업業에 충실한 것이 곧 관계의 연속을 보장하는 일이다. 종신토록, 죽기까지 말이다.
“여러분, 이 중에 어떤 분들은 지인 영업은 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왜요? 보험설계사가 쪽팔립니까? 사람들은 꽃과 과일을 들고 병문안하지만, 우리는 보험금을 들고 갑니다. 돈을 들고 간다구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기를 맞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뭡니까? 아파서 거동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장을 잃은 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냐구요? 그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고마워합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보람을 느끼는 겁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구요. 그러니 누구를 제일 먼저 찾아가야겠어요? 자, 주소록을 모두 펼치세요.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을 적어 내려 가는 겁니다. 보험 영업,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붙잡고 하는 거 아니에요.”
강사의 말에 마법사는 지난 관계들을 떠올렸다. 단절되고 중단된 관계들. 이제는 봉인이 해제된 것이다. 그것도 대대적으로. 이제는 모든 중단된 인연들에게 마법사가 먼저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험설계사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보험을 제안할 때가 된 것이다. 종신계약을 제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간 인연의 재개는 직관적이고 운명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졌어.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다던가, 먼저 연락이 온다던가. 그럼에도 이 관계를 재개해야 하는지 마는지 신중하게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했지.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 보험설계사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당연한 할 일이니까. 그리고 나는 종신(終身)을 제안하는 거야. 내게 종신보험(終身保險)을 드는 이들은 그것으로 마법사와의 종신 계약이 성립되는 것이지. 그러면 단절은 없어. 그러나 거부한다면 나는 종료로 받아들일 수밖에. 중단은 종료가 아니니까. 그래서 중단이었으니까. 나 역시 관계의 심판대에 오를 수밖에. 누군가는 종신을 보장받을 테고, 누군가는 ‘이번 생은 여기까지’이겠지.’
마법사는 이제 관계의 심판대에 스스로를 올려놓게 되었다. 그간 인연이라고, 운명이라고 느끼며 연결해 온 수많은 상호작용과, 관계를 지키기 위해 중단하고 단절해 온 운명들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관계는 복귀할 테고 어떤 관계는 종료를 맞이할 것이다.
마법사는 이 과업의 이름을 이렇게 정했다.
‘종신 또는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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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또는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