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희년
희년
Year of Jubilee‘희년'(禧年)이란, 매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방과 회복의 해’로서, 모든 노예가 자유를 얻고, 빚을 탕감받기도 하며, 또 모든 소유가 원주인에게로 되돌려지고, 모든 경작지는 휴경하게 된다(레25:10-17).
한편, 희년은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 ‘해방의 해’, ‘은혜의 해’, ‘보복의 해’로 선포되었다(사61:1-2).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참된 자유와 회복의 희년을 가져오는 분으로 선언하셨다.(눅4:18-19).
_ 교회용어사전
희년은 50년마다 돌아온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해이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고 50년이 지나면 다시 원주인에게로 돌려놓았다. 그사이 많은 거래와 상호작용이 생겨난다. 사고팔고, 빌려주고 빚지고, 잃거나 얻거나. 그러나 희년이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려진다. 그것은 곧 카르마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작용이 있었든, 얼마나 물러나고 나아가든, 무엇을 잃고 얻든,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해. 희년은 카르마를 완성하는 해이다. 행위의 결과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마법사님, 그러고 보니 희년이시네요.”
요양병원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마법사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마법사였는 줄은 마법사도 몰랐다. 그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마법사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마법사의 신분은 가족들에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안다 해도 가족들은 믿지 않는다. 그게 뭔지는 경험한 이들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마법사와 함께 선한 싸움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꿈을 좇는 이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하는 일이 그의 주된 과업이었다. 선한 싸움이란 자신에게만 악독한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싸움이다. 그 일은 지독한 갈등을 수반하기 마련이어서,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게 된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악랄할 정도로 가혹하게 구는 일을 뜯어말리고 제자리로 돌려놓는 힘겨운 싸움을 수행해야 한다.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사람들에게 희망의 에너지를 불어넣던 그였지만,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사람들의 자기 비하의 메시지에 그도 그만 전염이 되고 말았다. 그는 마법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그런 그를 염려하여 여러 차례 자신에게 집중할 것을 권유했지만, 마음이 여린 그는 자기연민의 늪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그리고 감염된 그 역시 자신의 가능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전장을 이탈해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마법사는 붙들지도 다시 찾지도 않았다. 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잊혀졌다. 마법사는 당시 그가 거의 최종 단계까지 자신을 지켜왔기에 그의 중단을 매우 안타까워했었다. 아마도 이번 생에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 여기고 있었는데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마법사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도 마법사의 부르심을 입은 자인가? 그의 아버지가 마법사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 요양병원은 겉으로 보기엔 일반 요양병원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마법사의 신분이 아니면 입원이 되지 않으니, 마법사들은 서로 알 수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원수 같은 관계였으니. 그러다 최근에 아버지가 말기 암 진단을 받으셨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종합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고 했단다.
“병원 예약이 돼야 말이지요. 보통 몇 개월씩 밀려 있더라구요. 그래서 애를 태우고 있는데 아버지가 든 보험 중에 종합병원 예약 서비스가 있는 특약이 있더라구요. 혹시나하고 연락을 했더니 마법처럼 예약이 바로 되었어요.”
“오호 그거 다행이군요. 그래서 수술은요?”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어요. 이제 회복만 잘하시면 되는데 요즘 종합병원에 오래 입원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요양병원을 수소문해 보았는데 다행히 그 보험 특약이 요양병원 예약까지 제공해 주는 거였어요. 바로 여기로 예약을 잡아주더라구요. 좋은 요양병원 찾기도 하늘에 별 따기더라구요.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죠? 다들 불행해서 그런 거겠죠? 그러고 보니 마법사님과 치르던 전투들이 생각나네요. ‘당신이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합니다.’ 우리 전투의 슬로건이었잖아요. 저는 그만 포기해 버렸지만.”
그는 마법사와 치르던 전투들을 회상했다. 불신이 가득한 사람들의 가슴을 가능성의 에너지로, 자신의 미래 기억에 기록된 찬란한 운명을 향하도록 이끌던 치열한 전투, 싸움.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에 빠진 이들은 하나같이 되받아쳤다. 그런 건 찌질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라고. 이대로 살다 가게 두라고. 마주쳤던 거부의 벽들이 만리장성처럼 가로지르고, 그와 마법사는 그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뜨리려고 수많은 기적들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기적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때 젊었다.
“마법사님도 보험 있으시죠?”
“아니, 나는 보험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네? 요즘 세상에 보험 없는 사람도 있나요? 아니 마법사님은 직관 따라 사시는 분이니 그렇다 치고 가족들은 뭐 했대요?”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난 암도 걸렸었는데. 그런데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지금도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하나뿐인 혈육인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저는 아버지랑 연락을 끊었어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매일 무슨 일을 그렇게 하시는지. 저는 어머니가 혼자 키우셨죠. 그래도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를 그리워하시고.. 제게 늘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들어보면 항상 남 좋은 일만 시키느라 고생만 하시는 것 같던데, 가족은 어쩌고.”
그는 지금도 자신의 아버지가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마법사들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규약일 뿐만 아니라 현상이다. 마법사의 마법은 모든 사람에게 통해도 가족에게는 실현되지 않는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운명의 인연은 가족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니, 가족들에게 사용할 에너지가 늘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가족들과는 관계를 중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직관을 따라 관계를 중단할 수 있어야 하는 마법사에게 가족은 마법적 상호작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것은 마법사의 천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법사는 같은 마법사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 성심을 다해 도왔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보상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언젠가 희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희년이 되면 아버지가 돌아오실 거라고. 어머니가 사랑을 많이 주셨으니 꼭 돌려놓으실 거라고. 그렇게 아버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희년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죠. 그리고 아버지는 희년에도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아버지의 희년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이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법사님을 만나니 왠지 우리 아버지도 마법사님과 같은 인생을 사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러고 보니 마법사님도 머리가 하얗게 세셨군요. 마법사님도 희년이신가 보네요. 희년이 되면 사람들의 머리가 하얗게 변하거든요. 그건 새치와는 다른 빛깔이에요. 투명해서 하얗게 보이는 거니까.”
마법사의 머리는 하얗게 된 지 오래였다. 어쩌면 마법사의 희년은 아주 오래전에 도래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마법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마법사님 보험 꼭 드셔요. 마법사님의 가족들도 마법사님을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죠. 아버지가 드신 보험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버지를 용서할 기회도 없이 떠나보내야 했을 거예요. 이런 마법 같은 보험은 어떻게 알고 들어놓으셨는지, 심지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적잖은 보험금이 나오도록 가입을 해놓으셨더라구요. 하하 그것 때문에 아버지를 용서한 건 아니구요.”
마법사는 그의 웃음이 아프게 들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마법사인 줄 모르고 있다. 인생 전체를 헌신적으로 희생해 온 마법사들만 입원이 가능한 이 요양병원에 어떻게 그의 아버지가 입원할 수 있었는지, 그것은 보험의 힘이 아니라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의 보상인 것이다. 최선을 다해 운명들을 돌봐 온 아버지의 헌신의 결과. 그리고 그 보상은 마땅히 가족에게 돌려져야 한다. 함께 희생한 가족들에게 보험금으로라도 돌려져야 한다. 인생의 수레바퀴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한 마법사와 그들의 가족들은 부족한 보상으로나마 보험금을 타게 되어 있다. 그리고 희년의 기회가 주어진다. 모든 마법사들은 그들의 과업을 마치고 생을 이동하기 이전에 하나의 생 동안 벌어진 모든 상호작용의 결과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희년을 맞이한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 새롭게 지난 인연들과 조우하는 것이다. 보통의 인연들이 수많은 생을 통해 갚아나가고 완성해 가는 카르마를 마법사는 하나의 생에서 완결해야 한다. 그래서 희년은 마법사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자신을 위한 마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용서이기도 보복이기도 하다.
“네 그럴게요. 꼭 보험을 들어 놓을게요.”
마법사는 꼭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그리고 직관이 마법사에게 보험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보험, 보험 설계사. 인생의 마법을 설계하는 사람.
“형, 보험설계사 해보지 않으시겠어요?”
“그러자. 이제는 나도 보험을 들어야 할 것 같으니, 보험설계사, 한번 해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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