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보상 결핍 증후군
“형, 보험설계사 한번 해보실래요?”
‘얘는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보험설계사라니. 아니 마법사도 은퇴하는 마당에 나보고 보험설계사를 하라고?’
마법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보험설계사라니. 그건 마법사의 900년 생에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직업이었다. 아니, 사람 만나기를 돌같이 여기는 마법사가, 아무리 커뮤니티의 마법사라지만, 사람들에게 보험을 팔라고? 단지 운명의 사람들을 만났을 뿐이다. 열쇠를 나눠 쥐고 이생에 내려온, 약속된 운명의 사람들이 아니면 마법사는 일체의 사적이고 공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운명의 관계들과 상호작용하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짜증이 나는데 사람 만나는 일로 하루를 가득 채우는 보험설계사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만면에 웃음과 친절로 무장하고 모든 컴플레인과 의심의 눈초리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한 다리 건너면 수두룩 빽빽인 영업맨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이제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마법사가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난 몬 한다. 딴 데 가서 알아봐라.”
거절을 한 것이다. 마법사는 단칼에 후배 연금술사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건 거부도 아니고 해프닝인 거지. 뭐가 아쉬워서 마법사에게 보험설계사를 제안했는지 알 수 없지만, 후배 연금술사의 제안을 마법사는 오랜만에 단검을 꺼내어 단호하게 내리쳐 버렸다. 그때는 그게 자신의 운명인지도 모르고.
‘저 자식은 참 무대뽀야. 아무한테 아무 제안이나 하고. 아니 내가 누군지 몰라? 모르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빤히 알면서, 보험설계사라고? 보험을 설계하라고? 에라, 나도 보험이 하나 없는데 무슨 남의 보험을 설계하라는 거야. 참 너도 왜 하는 게 맨날 그 모양이니. 그러니 연금술사가 돼가지고 금은 못 만들고 맨날 남의 연금이나 팔러 다니지. 쯔쯧’
그는 마법 학교의 후배다. 마법 학교는 마법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과정인데 그 중 몇몇은 연금술사로 차출되어 별도의 전문금융교육코스를 밟기도 한다. 기수마다 소수만 차출하는 탓에 마법사들에게는 천사의 아들들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후배 역시 촉망받는 연금술사 교육생이었다. 그는 연금술사로 데뷔하자마자 전국실적 1등을 도맡아 했다. 그의 금 만들기 신공은 참으로 대단해서 여러 지부들로부터 스카웃 제안을 끊임없이 받았는데, 미래 세대, 젊은 세대에 관심이 많았던 마법사와 달리, 그는 다가오는 고령화 시대에 타겟은 시니어층이라며 시니어 시장에 뛰어들어 연금과 보험 설계에 주력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하여 마법사의 메인 타겟이었던 미래 세대는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시니어들은 미래 세대의 부까지 저당 잡은 채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그는 그런 시대적 조류를 활용하여 연금과 보험 설계 분야에서 승승장구하였다. 하이라이트는 장례였는데, 노후 준비와 유산상속에 관한 모든 준비를 마친 부유한 시니어들의 관심은 자신의 안락한 죽음, 죽음 이후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조류에 적극적으로 편승해 온 후배 연금술사는 자신의 자산을 모두 때려 넣어 ‘안락한 죽음’ 사업에 올인 했는데 그게 그대로 무덤이 되고 말았다. IMF가 터진 것이다. 사람들의 자산이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묶여 버렸다. ‘안락한 죽음’은 꿈꿀 수도 없는 갑갑한 현실에.
‘그래도 자식이 그때는 잘나갔는데 밥도 잘 사주고. 꼬박꼬박 연락해서 안부도 묻고. 그러고 보니 아직도 연락이 닿는 몇 안 남은 관계 중에 하나네.’
그는 주기적으로 마법사에게 연락을 해왔다. 마법사가 한참 성공 가도를 달릴 때는 부럽다며 따라다녔고, 마법사가 고꾸라져 바닥에 처박혀 있을 때도 그는 늘 연결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부러움 때문인지, 시기 때문인지 몰라도, 연금술을 같잖게 여기던 마법사는 그의 생업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건 자신은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 그저 운명을 제시할 뿐이야. 아니면 마는 거고. 나는 보여줄 뿐.’
설득이란 마법사에게 없는 언어였다. 마법사는 제안하고 제시할 뿐이다. 운명의 메시지를. 선택하는 이는 마법사가 아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마법사의 임무는 전달한 것으로 종료된 것이다. 그러므로 과업은 마법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법사는 인정받고 싶었다. 아니 자신이 전달한 메시지가 진짜 이루어지는지 결과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건 몇 번의 생을 다시 태어나도 매번 처음부터 다시였다.
‘마약 같은, 그런 도파민 작용이 없다면 누가 마법사를 하겠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이따위 일을.’
도파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출된다. 마약을 하거나 도박을 할 때도 분출되지만, 복수를 하거나 성취를 할때에도 도파민은 발생한다. 게다가 그것은 용량을 타고 태어나는 것이어서 간장 종지만 한 도파민 그릇을 타고 태어난 이는 작은 것에도 쉽게 만족하지만, 스타디움 만 한 그릇을 타고 태어난 이들은 부어도 부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도전하고 시도한다. 목마르니까. 무한히 성장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보상이 없다면 도파민은 바닥이 나기 마련이다.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도파민은 없다. 퍼내면 퍼낸 만큼 채워져야 하는데 도전한 이들이 보상을 얻지 못하면 도파민은 점점 말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병을 얻는다. ‘보상 결핍 증후군’
이제 은퇴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받아 들고 귀국한 마법사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마법사 전용 은퇴 요양병원이었다. 대륙당 한 곳밖에 없는 은퇴 요양병원은 지구의 은퇴한 마법사들이 다음 생으로 넘어가기 전 삶을 정리하는 곳이다. 시설도 좋고 서비스도 훌륭해 은퇴를 앞둔 많은 마법사들이 선망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도 요즘은 베이비부머 시절 배출된 마법사들이 넘쳐나 대기를 타야 한다. 요양 등급을 받기 전에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내는 곳이 되었다. 마법사는 일단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니 요양 등급쯤이야 쉽게 받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이었다.
“검진 결과를 보니, 요양 등급을 받기는 어려우실 것 같네요.”
담당 간호사가 매우 건조한 목소리로 입소 불가 통보를 내리고 있었다.
“네? 아니 무슨 말씀이죠? 몸이 성한 데가 없는데”
“그건 마법사님만 그런 게 아니죠. 마법사치고 그 정도 몸 상태가 아닌 분들이 없으니까요.”
“네? 여기를 보세요. 이 심장을 보시라구요. 여기 이렇게 빼곡히 박힌 화살들이 보이지 않으세요?”
마법사는 셔츠를 풀어서 화살이 가득 박힌 심장을 간호사에게 내밀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간호사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쳐다보더니 차트를 덮으며 말했다.
“아니 마법사님. 그 정도 상처 없는 마법사가 어디 있어요. 은퇴할 정도의 마법사라면 심장의 화살쯤이야 상처도 아니죠. 전신에 배신의 화상을 입고 마음 살이 다 녹아내려서 뼈만 남은 분들도 대기 번호 받고 기다리는데. 저기 좀 보셔요.”
간호사는 손가락으로 접수대 위에 매달린 CCTV 모니터를 가리켰다. 대기실에 빼곡히 앉은 마법사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는데 사람의 몰골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형상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안광만큼은 해처럼 빛나고 있었는데 그 비쳐 나오는 빛만으로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얼마나 진실된 마음으로 자신의 과업에 임했는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상태를 묻고 확인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태도 역시 매우 정중하고 존경이 어려있었다. 따져 물으려던 마법사는 순간 의기소침해졌다. 그리고 만신창이로 느껴지던 자신의 상태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마법사님, 은퇴 준비 메시지를 받으신 거죠? 은퇴 통보가 아니라.”
“네? 아, 네 맞아요. 은퇴 준비 통보를 받았어요.”
간호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마법사에게 말했다.
“마법사님 잘 들으세요. 은퇴 준비 메시지는 은퇴 준비를 시작하라는 메시지이지 은퇴하라는 메시지가 아니에요. 가끔 헷갈려서 요양원부터 찾으시는 마법사님들이 있는데 이건 이제 은퇴 준비를 시작하라는 메시지라구요. ‘은, 퇴.’ 가 아니라. 아직 끝난 게 아니라구요. 여기는 은퇴 통보를 받으신 분들이 오시는 곳이구요.”
“아, 그렇구나. 은퇴를 준비하라고.. 근데 그러면 은퇴를 어떻게 준비하죠?”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저는 간호사지 마법사가 아니잖아요? 하시던 대로 직관을 따르셔야죠.”
“아, 그렇지. 직관, 직관을 따라야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구?”
마법사의 마음이 묘하게 일렁거렸다. 은퇴가 아닌 은퇴 준비, 그리고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마법사의 삶에, 은퇴와 은퇴 준비의 간격은 얼마일지 알 수가 없다. 남아 있는 나날, 해야 할 일, 미션, 과업들. 그리고 삶의 두 번째 스테이지.
‘그렇다면 양상이 달라지겠구나.’
마법사는 어두웠던 얼굴에 희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천사가 나타난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퇴가 아니라고. 은퇴를 준비하라고. 그래, 그렇다면 이건 완전 다른 얘기잖아. 그간 은퇴 없이 영원할 것 같아 막막했던 인생이, 이제 끝을 정해놓고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거잖아. 그리고 나는 그걸 준비하면 된다고. 하하 그렇다면 못 할 게 뭐겠어?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는데. 다음 생에 계속 되더라도 이번 생은 여기까지인 거잖아. 그렇다면 안 해본 것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일들을 하면 되지.’
마법사는 생각해 보았다. 질문은 인연들에게 마법사가 늘 하던 말이었다. 해보지 못한 일이 있는가? 이대로 죽으면 후회될 만큼 간절한 일들이 남아 있는가? 그러나 마법사는 자신에게 되돌아온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마법사는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돈을 많이 버는 일도, 명성을 얻는 일도 아닌,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척점에 서 있었다. 선택의 순간은 그것들과 경쟁하는 순간에 찾아왔다. 그리고 여지없이 선택한 ‘하고 싶은 일’의 결과로 얻은 것이 화살이 빼곡히 박힌 심장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마법사의 과업이 불일치한 적은 없다. 그러므로 그건 상처이자 훈장이었던 것이다.
‘이게 아프긴 하지만, 나의 영광인 거겠지. 저절로 녹아 없어지기까지 이대로 살아가야겠어.’
마법사는 셔츠 속으로 화살이 빼곡히 박힌 심장을 조심스럽게 접어 넣으며 마음을 새롭게 했다. 그리고 간호사가 돌려준 진단서류에는 ‘보상 결핍 증후군’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보상이 전제되는 일만 하셔요. 은퇴를 준비하시는 마당에 없는 도파민 억지로 퍼내지 마시구요. 그것만 주의하시면 굳이 저희 요양병원 찾아오실 일도 없으실 거예요. 근데 마법사님 보자하니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실 것 같으니까, 처방전을 전송해 드릴테니 도파민이 바닥날 때마다 처방전에 나와 있는 대로 하셔요. 견딜 만큼은 될 테니까요. 태블릿 가져오셨죠? 은퇴 준비 메시지를 받으셨으면 태블릿도 받으셨을 텐데.”
간호사는 당부했다. 도파민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라고, 그리고 은퇴를 준비하는 일은 보상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철없는 새내기 마법사가 아니니. 하지만 하던 대로 계속할 것 같은 마법사가 걱정스러웠는지 간호사는 처방전을 발급해 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태블릿의 존재 여부를. 그제서야 마법사는 잊고 있던 태블릿의 존재를 깨달았다. 천사가 전해준 태블릿. 그것은 처방전 저장 용도였던가? 주섬주섬 배낭을 뒤져 찾아낸 태블릿에는 처방전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반짝이고 있었다.
“되셨죠? 자 다음 분.’
대기 줄이 길게 밀려있는 카운터에 벨이 울리자, 사람들은 동시에 자신의 번호표를 들여다보고는 물러나지 않고 미적거리는 마법사를 일제히 쏘아보았다. 마법사는 간호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뒤로 물러나 요양병원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처방전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근데 이거 어디에 저장된 거야?’
처방이 궁금한 마법사는 태블릿의 저장된 처방전을 열어보려고 여기저기 폴더를 뒤적거렸다. 그런데 도무지 어디에 저장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마법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연금술사 후배였다.
“형, 근데 보험설계사, 생각해 보셨어요? 좋은 기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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