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청부업자 _ (2) 작업 성공

 

 

 

 

 

“오늘이 그날이군요. 다행입니다. 제 손으로 직접 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킬러 체면이 있지 타인의 손에 제 마지막을 의뢰할 수는 없죠. 아마 저의 의뢰인이자 킬러였던 그도 그래서 일부러 작업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사.. 사랑이 변했나요?”

“하하 그럴 리가요. 그럴 재주가 있으면 남의 꿈과 사랑이나 좇으며 이렇게 생을 낭비했을 리가 없죠.”

잠시 미소를 짓던 노인의 눈에 만감이 스쳤다. 그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스스로 계약을 실행했다. 자살을 청부한 킬러의 자살. 노인은 잠시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장님께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어쩌면 제 삶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니. 저는 의뢰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물론 외사랑이죠. 그녀는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요. 의뢰는 온라인으로만 이루어지고 말씀드린 대로 의뢰인은 킬러의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그녀도 역시 외사랑에 빠져 있었고 제게 의뢰를 해왔습니다. 매우 오래전 일이죠. 제가 업계에 막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받은 의뢰였으니까요. 무명의 시절이라 일거리가 많지 않았던 저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달이 뜨나 날이 가고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사랑은 더욱 강렬해졌죠. 그녀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어요. 지켜보던 저마저도 그녀의 사랑에 빠져들 정도로.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죠. 그건 계약 위반사항이니까. 킬러가 의뢰인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노인은 의뢰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것은 킬러에게 금지된 일이다.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작업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 사랑의 자장은 전염병처럼 강력해서 주변을 모두 변화시킨다. 무딘 마음을 살아나게 하고 감았던 시선을 깨워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깨어난 존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랑이 소용돌이친다. 그것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으니 폭풍처럼 몰아쳐 삶을 파괴하기도, 높이 떠올려 하늘을 날게도 한다. 멈춰 섰던 마음이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이 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질주하는 마음은 제어가 불가능하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계속 지켜 보기가 어려웠어요. 해가 갈수록 그녀는 외사랑의 아픔 속에서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어요. 이대로면 그녀도, 저도 평생을 사랑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죠. 저는 여러 번 유혹에 빠졌어요. 사랑을 고백해 버릴까? 계약을 파기하고 그녀의 상대를 제거해버릴까? 하지만 상대가 사라진다고 그녀의 사랑이 내게로 향해 줄 거란 보장은 없죠. 오히려 상실의 아픔이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할 테니, 제 고백은 그녀에게 저주와 폭력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면 볼수록, 사랑에 서툰 제 마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유혹 앞에서 흔들렸어요. 아마 그래서 저 역시 자살을 청부한 걸 거예요. 그녀의 상대를 그녀 모르게 제거한 뒤, 그녀가 혹시라도 제 고백을 받고 저를 사랑하게 된다 해도, 그것 역시 사랑이 변한 거니까, 계약을 위반한 거니까, 저는 계약 실행을 위해 그녀를 죽여야 합니다. 당연히 저는 그럴 수 없겠죠. 그 상황에서 어떻게 제 손으로 그녀를 죽이겠어요. 그러나 규칙상 계약이 일정 시간 미실행되면 자동으로 다른 킬러에게 계약이 이관되어 작업이 실행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는 겁니다. 유혹에 시달릴 뿐. 다만 저 역시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제 사랑을 지키고 증명하는 길은 그녀의 선택에 동참하는 일뿐이니까. 저 역시 사랑의 의뢰인이 되는 것이죠.”

노인은 사랑의 의뢰인이 되었다. 그의 사랑이 멈추거나 변한다면 그 역시 자살을 청부 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노인의 그녀 역시 의뢰인이니 사랑이 멈추거나 변하면 청부 계약이 실행된다. 그녀를 사랑하는 노인도, 그녀도, 사랑을 멈출 수도, 변할 수도 없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주하지 못하는 인연을 맺었다. 죽음의 맹세로.

“도망친 의뢰인은 실은 제가 청부 계약을 의뢰한 킬러인 것입니다. 저는 망각을 선택했을 테니 그 사실을 기억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그 역시 저에게 청부계약을 의뢰한 의뢰인이었으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청부계약을 의뢰한 의뢰인이자 킬러였던 거죠. 그는 눈치를 챘을 겁니다. 일반인이라면 미세하게 달라진 커피색의 변화를 알아챌 수가 없죠. 그는 킬러였으니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고 본능적으로 오늘이 그날임을 깨달았던 거예요. 그가 킬러인 줄 알았으면 이 방법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물론 평상시 행동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가 어쩌면 킬러일지도 모른다는. 킬러들만의 독특한 습관 같은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혹시 모르니, 킬러일지라도 눈치채기 힘든 다른 작업 방식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가장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이라. 제 딴에는 의뢰인을 배려한 거죠.”

“그럼, 그 손님은 사랑이 멈추었나요?”

“이제 이해가 되네요. 그가 왜 사랑 앞에 대범했는지. 사랑을 멈추었냐구요? 아니요. 그의 사랑은 멈추지 않았어요. 그는 심지어 상대를 바꾸었죠. 아니 드디어 찾은 거겠죠. 처음 계약 시의 상대가 아닌, 진짜 사랑을 만났다고 판단했나 봐요. 그를 계속 지켜봐 온 제가 보아도 그에게 나타난 새로운 사랑은 그가 찾던 진짜 사랑이라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변한 건 변한 거죠. 계약은 계약이니까. 안타깝지만 킬러로서 저는 계약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이 그날이었는데. 그는 선택을 한 것 같군요. 도망치기로. 죽음으로부터 사랑을 향해. 아마도 지금 자신의 사랑에게 달려가 고백을 하고 있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죽기까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의뢰를 한 게 아니라 사랑을 찾기 위해 죽음을 의뢰한 거였네요.”

“그런 경우가 드문가요? 사랑은 그렇게 찾아지는 거 아닌가요? 왜 죽음으로 사랑을 맹세하는 거죠? 새로운 사랑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데. 계약을 중단할 수는 없는 건가요? 그는 킬러라 피했다지만 일반 의뢰인들은 그냥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거잖아요.”

“사랑은 눈을 멀게 하니까요. 새로운 사랑을 생각하며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사랑은 모든 것이고, 전부고, 영원인데. 사랑은 지금이죠. 그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박제하려고 계약을 맺는 거죠. 물론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랑이, 진짜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미 맺어진 계약은 집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계약은 선택을 뒤집을 수 없는 맹세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 선택을 뒤집었어요. 위험한 일이죠. 계약을 뒤집고 새로 선택한 사랑에 실패하면 그때의 자괴감과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사랑의 맹세를 저버려가면서까지 뒤집은 선택이 무용지물이 되면 그때는 더 물러날 곳이 없으니까. 그때는 누가 죽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킬러라면 그런 것들을 모두 알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선택을 뒤집었으니까요. 아마도 그래서 일부러 작업에 실패했을 겁니다. 저에 대한 작업 말이죠. 저도 용기를 내 새로운 사랑을 찾고 성취하기를 바랐겠죠. 자신처럼.”

“그런데 왜 오늘이죠? 무엇 때문에 그는 오늘 작업을 실행한 거죠?”

“제 사랑이 변했냐고 물으시는 거겠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럴 재주도 용기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건.. 제 사랑이 종료되었기 때문이에요. 실은 제가 연모하던 그녀가 어제 세상을 떠났거든요. 안타깝게도 그녀의 외사랑 상대가 지난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딱 일 년이 지났죠. 그녀 역시 실의를 이겨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어제 세상을 떠났답니다. 사랑의 의뢰인에게는 선택조항이 하나 있어요. 상대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사랑이 멈춘 것으로 간주한다는. 그 조항을 선택한 의뢰인은 상대가 죽으면 계약도 함께 집행됩니다. 선택조항이라고는 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의뢰인은 거의 없답니다. 사랑이 떠난 세상에 더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요. 원칙대로면 그녀의 상대가 죽은 뒤 바로 작업을 실행해야 하는데 저는 잠시 희망을 품었어요. 헛된 희망을. 어쩌면 내 사랑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작업 일정을 최대한 미루며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보 같은 희망이죠. 수많은 사랑의 의뢰인들을 봐왔는데, 그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잘 알고 있는데 말이죠. 청부계약까지 한 사람이 사랑이 죽었다고 사랑을 잊을 수 있겠어요.”

가혹한 계약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계약은 집행될 수밖에 없는. 도망치지 않는다면 사랑의 의뢰인은 죽기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다. 죽기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의뢰인들이 계약을 의뢰하는 것이겠지. 그런 사랑들을 지켜보던 노인 역시 그 사랑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도, 사랑도 없이 삶을 지속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그래도 다행이네요. 의뢰인의 편안한 마지막 길을 위해 비싼 약품을 썼는데 저라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죠. 수많은 죽음을 보았어요. 죽음 앞에서 모두들 후회하는 건 두가지에요. 도전해 보지 못한 꿈, 고백하지 못한 사랑. 후회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한 사람을 품었으니까. 제 의뢰인의 사랑도 꼭 이루어지길. 제가 말이 길었군요. 장사하셔야 되는데. 자,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노인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마법사는 이만 가보겠다는 노인의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랑은 무엇이라 부를까? 위대한 사랑인가, 지독한 사랑인가. 사랑도 꿈도 없는 세상은 또 무엇인가? 목숨만을 연명하며 하루하루를 지루와 권태 속에 보내는 인간들은 생을 연속할 만큼 행복한가? 그만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걸까? 노인이 지켜봐 온 수많은 의뢰인들의 삶의 숭고함과 그 대열에 동참한 노인의 삶에 마법사는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마법사는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노인을 향해 상체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차마 고개를 들어 노인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노인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까. 다음 생에선 그의 사랑이 이루어질런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생은 노인과 모든 의뢰인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업그레이드된 다음 스테이지를 열어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과 사랑을 지켜낸 이들이니.

오래도록 고개를 숙인 채 절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마법사를 떠나 말없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노인의 뒤로,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한 수많은 의뢰인들의 영혼이, 사랑의 찬가를 부르며 대열을 이루어 노인의 마지막 행진을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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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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