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청부업자 _ (1) 작업 실패
‘저 사람, 뭘 타는 거지?’
마법사의 눈에 무언가 포착됐다. 잠시 자리를 비운 중년 남자 손님의 커피잔에 노인은 무언가를 털어 넣었다. 그것은 집중해서 관찰하고 있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순간이고 찰나였다. 털어 넣어진 것은 소매깃 끝에 달린 대롱 같은 것에서 먼지처럼 흘러나왔고 노인의 움직임은 테이블을 지나치는 여느 손님의 그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마법사는 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노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명 무얼 탔어. 그리고 들켰어.’
장례식장에라도 다녀온 듯, 검은 정장 차림의 노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스럽게 바 테이블에 앉아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마법사 역시 일상적인 인사를 하고 노인의 주문을 포스에 입력했다. 이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에스프레소 머신 앞으로 이동한 마법사는 스팀기에 우유를 넣었다. 마법사의 머릿속은 일어날지도 모를 급작스런 상황에 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로 가득해지고 있었다. 치익 하는 소리가 조용한 실내에 울려 퍼지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는 카페 내부가 수증기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마법사는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최대한 천천히 머그잔에 붓고 스팀 밀크를 돌려가며 컵에 담았다. 라떼아트를 할까 하다가 그냥 하얀 점 하나를 떨어뜨리고는 쟁반으로 카페라떼가 담긴 머그컵을 받쳐 들고 노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노인이 사라졌다. 중년의 손님도.
마법사는 빠르게 시선을 돌려 창밖을 훑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바리코트를 입은 중년 남자가 골목을 벗어나 정류장에서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타고 있었다. 노인은 골목 중간치에 멈춰서서는 더이상 좇지 않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중년 남자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오히려 노인이 담벼락 옆으로 몸을 피해 숨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하 이런, 계산도 안 하고.’
마법사는 매우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이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다가 그들이 떠난 자리로 다가갔다. 중년 남자가 앉았던 테이블 위 커피잔에는 커피가 입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모금도 안 마시고 바로 달아났군.’
마법사는 커피잔을 치울까 하다가 일단 그대로 두고 노인이 앉아 있던 바 테이블로 이동했다. 급하게 뛰어나갔는지 의자만 뒤로 밀려나 있을 뿐 역시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노인이 앉아 있던 자리 위로 미세하게 나무 부스러기 같은 것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지? 하고 천장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마법사는 순간 천장에서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무언가가 마법사의 눈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넘어진 마법사의 가슴팍 호주머니에 바늘 같은 것이 꽂혔다. 마치 독침같이 생긴.
“어이쿠, 괜찮으세요?”
누군가 마법사의 머리를 손으로 받혔다. 그는 중년 남자를 쫓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이거 혹시, 손님 겁니까?”
마법사는 가슴팍에 꽂혔던 바늘 같은 것을 뽑아 쥐고는 벌떡 일어서 뒤로 두세발 물러났다. 노인은 마법사가 손끝으로 쥐고 있는 그것을 발견하고는 당황한 듯 말이 없더니, 이내 체념한 듯이 뒤로 물러나 중년 남자가 앉았던 테이블에 앉았다.
“음.. 역시 하나도 안 마셨군.”
노인은 입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는 중년 남자의 커피잔을 들어 살폈다. 마법사는 노인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카운터 뒤로 움직였다. 이 이상한 상황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증이 마구 밀려왔다. 자초지종을 묻고 싶었으나 노인이 그에 대해 답해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어떤 다른 공격을 가해 올지도. 마법사는 긴장한 채로 카운터를 엄폐물 삼아 다른 방어할 만한 것들이 있는지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노인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제 것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이제 쓸모없게 된 것을.”
“혹시, 이거 독..침 인가요?”
마법사는 바늘 같은 것을 내보이며 노인에게 물었다. 이것의 정체에 대해.
“그런 것 같네요. 저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사람이 스스로 죽는 방법에는 많은 것이 있지요. 목을 매거나,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거나, 강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살이 쉬운 건 아니랍니다. 우리 몸은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거부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마지막 순간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죽음의 상황을 회피하는 동작을 취하게 되죠. 목을 매는 경우에는 ‘주저흔’이라고 마지막 거부반응의 흔적이 반드시 남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죽는 일도 죽을 만큼 애쓰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죠. 사장님은 죽고 싶었던 적이 없나요?”
노인은 바늘 같은 것의 정체에 관해 묻는 마법사에게 도리어 죽고 싶은 적이 있었냐고 되물었다. 죽음에 대해 질문을 받자 마법사의 머리에 많은 죽음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쳐 온 수많은 생들, 생과 생이 끝나고 이어지는 자리에 놓였던 순간들. 그것은 죽음이라기보다 변환이거나 전환이거나 반복이었음에도, 매 순간은 마치 영원한 종료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900년의 세월, 수없는 죽음. 그리고 반복되고 연속되는 생들.
“처음에는 두려웠고 그러다 지겨워졌죠. 초반에는 더더욱. 배경과 스토리가 아무리 바뀌어도 영혼은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려면 반복해야 하니, 매번의 생이 처음이라고 세뇌된 상태를 벗어나면 지독한 낭패감이 몰려오죠.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복창 시 처음부터 다시’ 그게 진실이에요.”
노인은 마법사의 이상한 답변에 눈을 번뜩이더니 고개를 들고는 마법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바늘 같은 것의 정체에 대한 질문은 죽음의 어려움과 탄생의 지루함에 대한 상념으로 되받아졌다. 두 사람은 잠시 각자의 기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반복에 대한, 탄생에 대한. 상념에 잠긴 두 사람 사이에 머물던 침묵은 노인이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탁하고 올려놓자 깨어져 나갔다. 그것은 기다란 소음기가 달리 권총이었다.
“이젠 이것도 무겁네요. 그런데 사장님은 이상한 얘기를 하시는군요. 하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제 의뢰인들이 하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차라리 죽여달라던.”
“당신은 킬러군요?”
“뭐 그런 셈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제 직업은 ‘자살청부업자’랍니다.”
“자살청부업자?”
“네. 전 의뢰인을 죽입니다.”
노인은 자신의 직업을 ‘자살청부업자’라고 소개했다. 마법사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킬러라니. 게다가 자살을 청부하는 킬러라니. 마법사는 노인의 몸을 찬찬히 훑었다. 나이를 짐작케 하는 하얗게 바랜 머리와 주름진 얼굴을 제외하고는 말랐지만 다부진 몸이 연상되는 실루엣이었다. 옷을 벗으면 쵸콜릿 복근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노인의 골격은 단련에 쏟아 온 시간을 가늠케 했다. 물론 산전수전이 녹아있는 눈빛과 표정도.
‘자살청부업자라니.. 나도 이 노인에게 의뢰했던가?’
마법사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자,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아닙니다. 사장님. 사장님은 의뢰인이 아니에요.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아요. 의뢰인은 제 얼굴을 모릅니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죠. 그리고 때가 되면, 의뢰인이 의뢰한 상황이 되면 저는 자살을 대행합니다.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양합니다. 그러나 모든 죽음은 순식간이죠.”
“제가 의뢰인이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의뢰인이 킬러의 얼굴을 알고 있다면 실행의 순간에 도망쳐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죽음을 직면하는 순간에는 누구나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니까. 아 그러면, 아까 그 손님은?”
“도망쳤죠. 놓쳤어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어쨌든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저는 더 이상 그 의뢰인을 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는 이제 죽으려면 정말 스스로 죽어야 해요. 죽음에서 도망친 이는 공포에 갇혀 살게 되는데 그는 더한 고통 속으로 도망쳤어요. 어리석게도. 아니면 극복해야죠. 극복하겠죠. 자신이 있으니까 도망친 거겠죠.”
중년 남자는 노인의 의뢰인이었다. 그리고 도망쳤다. 죽음의 선택은 자신에게로 회귀 된 것이다. 돈을 주고 산 죽음의 기회를 낭비한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킬러가 작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대행료를 반환하나요?”
“질문 참 재미있네요. 누군가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자영업을 처음 하다 보니 돈에 민감해져서.”
“사과는 무슨. 돌려주지 않습니다. 돌려줄 수도 없죠.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요. 처음 계약 때부터 의뢰인의 도주로 인한 작업 실패 시에는 반환의 의무가 없다고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대행료는 반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명성에는 금이 가는 일이죠. 이 바닥 소문도 워낙 빨라서.”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의뢰인은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되는 거였나요? 실은 아까 들어오실 때 그 손님의 커피잔에 무언가 타시는 걸 보았거든요.”
“역시, 보셨군요. 저도 아까 사장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오늘 일이 어려워지겠다 느꼈습니다. 맞아요. 이번 의뢰인은 독극물로 인한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의뢰하실 때 외상이 없는 죽음을 선택하셨거든요. 저 독극물은 일종의 농축 수면제 같은 거라 잠자다가 죽게 됩니다. 계획대로면 의뢰인은 집으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꿈꾸다 돌아가실 수 있었는데. 제 딴에는 최대한 서비스를 한 거죠. 워낙 비싼 고가의 제품이라.”
“그런데 그 손님은 왜 도망친 거죠?”
“어쩌면.. 의뢰인은 도망친 게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사장님이 카페라떼를 만드시는 동안 의뢰인이 자리로 돌아왔어요. 저는 카운터 뒤에 걸려 있는 거울을 통해 곁눈질로 그가 돌아와 자리에 앉는 걸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가 자신의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마시면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되는 것이었으니까. 자리에 돌아온 그는 커피잔을 잠시 바라보다 잔을 들어 입에 대는 것 같더니 다시 내려놓았어요. 그리고는 갑자기 돌아앉아 있는 저를 향해 무언가를 쏘았어요. 그 의뢰인이 말이죠. 그게 저도 순식간이라, 쏜 건지, 던진 건지, 날린 건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암튼 뭔가가 그의 허리춤에서 나와 제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천장에 박히더군요. 그리고 의뢰인이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가는 걸 제가 뒤쫓았죠. 그 뒤로는 아시는 대로.. 그런데 그렇다면 그도,”
“자살청부업자?”
두 사람은 동시에 내뱉었다. 자살청부업자라고. 그러니까 그 의뢰인도 노인과 같은 자살청부업자일지 모른다는.
“그런 것 같군요. 저도 의뢰를 했나 봅니다.”
‘의뢰라니. 이 노인도 자살을 청부했단 말인가?’
노인은 자살청부업자다. 중년 남자도 자살청부업자다. 노인도 중년 남자도 서로에게 작업을 실행했다. 그러나 두 킬러의 작업은 모두 실패했다. 아, 이 엇갈린 운명은 무엇인가?
“같은 업자들끼리도 서로를 모르나 봅니다.”
“몇 명이 이 일에 종사하는지, 어떻게 작업을 수행하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뉴스에 등장하거나, 사건사고가 일어난 기사들을 보면 이건 업자들이 한 작업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의문의 죽음들 중 많은 것들이 우리 업자들이 한 일입니다.”
“그럼 손님께서도 의뢰를.. 암튼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빗나갔으니.”
“그럴까요? 제가 의뢰인이라면 비싼 돈을 주고 산 죽음에 실패한 건데 그건 불행이겠죠.”
“음.. 그런데 의뢰한 사실을 모를 수 있나요?”
“그건 선택사항이에요. 계약 시 의뢰 여부를 기억할 것인지, 망각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망각을 선택하면 의뢰인은 저희 업계에서만 사용하는 특수기억삭제제를 한 달간 복용합니다. 기억이 서서히 지워지죠. 하지만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망각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자살을 청부하는 이유는 절박하기 때문이니까요.”
노인은 사람들이 킬러를 찾는 건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죽고 싶은 사람들이 용기가 없어 킬러에게 자살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다. 의뢰인들은 살고 싶어서 자살을 청부한다. 더 잘 살고 싶어서. 동기는 꿈과 사랑이다.
“도전을 멈추면 삶의 의미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 같은 킬러를 찾아옵니다. 포기하고 실의에 빠져서 꿈을 향해 다시 도전하지 않을 것 같거든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이죠.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이들, 간절히 꿈을 이루고 싶어 하는 이들이죠. 그들은.”
“꿈을 포기하느니 죽겠다, 대단하군요! 그런데 꿈을 포기했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눈빛을 보면 알죠.”
“그건 너무 자의적인데요. 그래서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 절박해지는 겁니다. 마음이 약해지고 흐트러지면 언제든 킬러에 의해 자살 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그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고 간절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의뢰인들은 망각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생생하게 기억하죠. 자신이 무엇을 의뢰했는지. 우리 같은 킬러들은 눈빛에 서린 생의 의지를 명확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이들의 눈빛을 수도 없이 봐 왔으니까요. 또 다른 의뢰인들은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자신의 사랑이 멈추거나 변한 것 같다면 죽음을 실행해 달라고 의뢰하는 이들 말이죠. 이것은 일종의 맹세입니다. 죽어도 사랑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죠. 그런데 이런 의뢰인들의 사랑은 대부분 외사랑입니다.”
“외사랑? 짝사랑 말인가요?”
“네. 지독한 외사랑의 열병이 그들로 하여금 죽음을 불사하게 하죠. 저희로서는 꺼려지는 의뢰인들이긴 합니다만.”
“왜죠?”
“꿈꾸는 의뢰인들은 결국 꿈을 이뤄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의 배수진을 치고도 이루지 못할 꿈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정을 불사르다 병과 불의의 사고로 자연사하는 경우는 있어도, 꿈을 포기해서 킬러가 작업을 실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종의 인센티브 같은 것이 있어서, 의뢰인의 목표가 달성되면 계약이 종료되고 작업 미실행 보너스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작업 결과이지요.”
“어쩌면 그 일은 극단적 응원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맞습니다. 우리는 의뢰인들의 성공과 성취를 의뢰인 만큼이나 간절히 응원합니다. 의뢰인의 기쁨이 우리 업무의 종료인 것이니까요. 보너스 때문에도 그렇고. 무엇보다 사람 죽이는 일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사랑의 의뢰인들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외사랑의 열정에 휩싸여 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애간장을 녹이는지. 떨어내지지 않는 마음과 외면할수록 불타오르는 감정은 가슴을 시도 때도 없이 후벼파는 일이니 차라리 죽여달라고 사정을 해야 할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사랑이 멈추면 죽여달라고 하니.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진정 사랑의 화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들을 쫓다 보면 저렇게 고통스러울 바에야 차라리 빨리 작업을 실행해 주는 게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아닐까 번민에 휩싸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계약위반이지요. 우리는 오로지 그들이 사랑을 멈출 때에만 작업을 실행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지독한 사랑이네요.”
“지독하죠. 네 정말 지독합니다. 더 지독한 것은 이들이 주로 망각을 선택한다는 사실입니다.”
“네? 망각을 선택한다구요?”
“이들에게 사랑의 포기는 죽음과 같은 일이라, 이들은 주로 망각을 선택합니다. 사랑이 멈추면 더 살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간절한 사랑의 맹세를 자살청부계약을 통해 스스로에게 남기는 것이지요.”
“아, 그건 좀 그로테스크한데요.”
“저희들도 사실 심정적으로는 꺼려지는 의뢰인들이나, 이들은 주로 장기 계약 고객들이라 먹고 살려면 의뢰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전은 언제든 멈출 수 있지만 시작된 사랑은 멈출 수가 없으니까요. 이분들은 계약기간도 평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음..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의뢰인들의 경우 작업 성공률이 어떻게 되나요?”
“다행스럽게도, 아니 그것이 오히려 불행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작업 실행률은 현저하게 낮습니다. 이 의뢰인들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니까요. 대신 서서히 죽어가는 겁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의 고통 속에서. 지켜봐야 하는 입장에선 차라리 계약을 위반하고 편안한 죽음을 실행해 드리는 게 그분들을 돕는 일이 아닐까 회의가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아, 알 것 같아요. 그건 사랑이 변하는 경우겠네요.”
“사랑은.. 변하기도 하죠.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거나, 많지는 않지만, 마음이 변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그러면,”
“앗! 그러면 어떻게 되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면요?”
“안타깝게도 저희들로서는 계약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경우는 저희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죠. 계약을 실행해야 하니까요. 드디어 의뢰인의 외사랑이 짝을 이루게 되었는데 말이죠. 비록 다른 상대일지라도.”
사랑이 변한다. 그리고 사랑의 맹세를 언약한 방아쇠가 당겨진다. 사랑의 맹세와 목숨을 건 언약은 변화하는 사랑으로 계약을 실행하는 것이다. 마법사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변화하는 사랑을 떠올린다. 영원을 약속한 사랑이 작은 차이를 견뎌내지 못한 채 무너지고. 평생을 언약한 사랑이 알량한 자존심 앞에서 스스로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파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고 자신도 타인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지하감옥 속으로 사랑을 가두고 만다. 그것은 생에서 그렇게 사라진다. 청춘의 멋모름이나 순진의 증거 정도로 치부되거나, 다른 것으로 그것을 대체하려는 헛손질로 생을 낭비하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짝을 맞추어 보지 못한 그것을 꺼내어 들고 후회와 미련의 한숨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그러니 업자를 찾는 이들은 용기 있는 이들이다. 이루어질 때까지, 아니 이루어지지 못한다 해도 사랑을 멈추면 생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 언약한다. 사랑이 멈추면 삶도 멈추게 해달라고.
마법사는 사랑을 찾아 시공간을 쫓고 있는 아이작 요원을 떠올렸다. ‘그도 어쩌면 의뢰인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의 의뢰는 에이전트 세븐과의 조우와 함께 종료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쫓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의뢰인이라면 어떤 킬러 역시 그들을 쫓고 있을 것이다. 쫓고 쫓는 사랑. 애타는 기다림은 재회, 연결이 아니면 비극적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외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평생을 쫓는 사랑. 연결을 보장받지 못한 채. 앗! 그렇다면 혹시?’
외사랑과 자살청부업을 생각하던 마법사의 머릿속에서 매듭이 탁하고 풀어지며 이 모든 상황이 깨달아졌다. 그러나 깨달음은 늦었다. 노인은 이미 커피잔을 깨끗이 비운 뒤였다.
“아.. 손님.”
_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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