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여, 안녕

 

 

 

 

 

깨끗하게 비워진 기다란 바 테이블에 김밥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다. 마법사의 브런치이다. 이 조합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우엉과 계란 그리고 각종 야채가 어우러진 초밥의 풍취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차가운 청량함과 만났을 때 그리고 그것이 적당히 입에서 뒤섞여 차례차례 목구멍을 넘어갈 때의 매끈한 느낌을 마법사는 사랑한다. 김밥 하나를 입에 털어넣고서는 우물우물 씹어 넘긴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입가심을 하면 매번 새로워진 입안이 다음 김밥을 반기며 기다린다. 중간중간 시큼한 단무지로 입맛을 돋우고 뜨거운 어묵국물로 뱃속을 데우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것이다. 그리고 김밥은 반드시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먹어야 한다.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닌 일회용 나무젓가락. 인생처럼.

마법사는 나무젓가락을 탁하고 쪼갠 뒤 삭삭 비벼서 잔가지를 제거하고는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물었다. 우물우물 씹으며 눈은 창밖으로, 한산한 아침 골목 풍경을 바라본다. 출근하는 이들은 모두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고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가게 주인들은 각자의 점포 내에서 분주하다.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쥔 손은 탁자에 걸쳐 있고 생각은 지나 온 나날들로 흩어진다.

김밥은 마법사의 힐링푸드이다. 마법사는 김밥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맞은 첫 운동회 날 점심시간이었다. 일을 나가시던 마법사의 부모님은 운동회에 오실 수 없었고, 마법사는 교실에 혼자 앉아 도시락을 열었다. 도시락에는 김치와 감자조림이 들어 있었다. 인생의 첫 운동회, 마법사는 운동회 날은 김밥을 먹는 것이 전통이자 불문율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 아이들, 가족들의 도시락이 모두 김밥이라는 사실을 목격하고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배운 적도 없는 수치심으로 발화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마법사는 의연한 아이라, 그 차이를 다스렸다. ‘나는 도시락을 먹으면 되는 거야. 지금은 점심시간이니까.’ 많은 가족들이 운동장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김밥을 먹고 있었다. 교실에는 먼지 날리는 게 싫거나 미처 운동장에 편안한 자리를 잡지 못한 동급생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린 마법사는 그 중간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다. 뻘쭘하지만 당당하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도시락이 김밥이 아닌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도 김밥을 싸야 한다는 걸 몰랐을 거야. 엄마도 처음이니까. 도시락은 점심이니까.’ 서럽거나 외롭거나 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의젓한 아이니까.

마법사는 기계인간처럼 수저를 들었다. 입에 밥과 감자조림을 조금씩 떼어 넣고는 천천히 씹었다. 당황해 울거나 서러운 표정을 짓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이번에는 내 차례일 뿐이니까. 플라스틱 젓가락을 세게 물고는 꼭꼭 눌러 싼 김밥처럼 밀려 올라오려는 감정을 꾹꾹 눌렀다. 체하지 않으려 밥알을 천천히 꼭꼭 씹었다. 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맛만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교실 밖에서 어린 마법사를 불렀다. 아는 얼굴이다. 위층 소라네 아줌마다. 소라는 동급생이다. 소라도 첫째니, 소라도 소라네 아줌마도 첫 운동회일 것이다. 아줌마는 손을 흔들며 마치 이제야 찾았다는 얼굴로 어린 마법사를 불렀다. 어서 나오라고. 왜 여기 혼자 있냐고. 아줌마는 우연히 지나가다 마법사를 본 게 아니다. 마법사를 찾아온 거다. 어디 있는지, 이 아이가 어디서 혼자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찾아 다닌 거다. 그리고 찾았다.

어린 마법사는 아줌마를 보고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눈물샘을 마음으로 꾹 눌러 닫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인사를 하고는 도시락을 챙겼다. 아줌마를 따라 나간 운동장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마법사의 엄마도 있었다. “오늘이 운동회날인지 몰랐네 엄마가. 한번 찾아보지. 바로 교실로 들어갔어?” 마법사는 말 잘 듣는 아이다. 의연하고 의젓한 아이다. 부모님이 오시지 않은 학생은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면 된다고 했으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마법사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랐을 뿐이다.

어린 마법사는 빙그레 웃고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 돗자리에 앉아 양 볼이 터지도록 동네 사람들이 싸 온 김밥을 밀어 넣었다. 안도하는 마음이 뜻밖의 김밥이 밀려 들어오자 신이 났다. 갈망했으나 부정하던 그것. 뒤이어 아빠도 오셨다. 몰아넣은 김밥으로 빵빵해진 어린 마법사의 볼 사이로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함께여서. 그리고 좀 전의 교실에서의 일은 그저 해프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법사가 꼭꼭 눌러놓은 그 기억은 김밥을 먹을 때마다 떠올랐다. 그건 영영 소화가 되지 않을 건지, 김밥을 먹을 때마다 밀려 올라와 마법사는 매번 되새김질을 해야 했다. 함께 나누어 먹는 김밥. 끝도 없이 먹을 수 있는 김밥.

마법사는 생각했다. ‘김밥은 혼자 먹을 수 있지만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거야. 하지만 21세기의 사람들은 김밥도 인생도 혼자지. 이건 잘못된 거야. 행복하지 않은 일이야.’ 마법사는 혼자 먹는 김밥이 낯설다. 나누어 먹지 못하는 김밥은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바 테이블에는 김밥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옆에는 기다란 소음기가 달린 권총이 함께 놓여 있다. 어제 노인이 놓고 간 그 권총.

‘이걸 왜 놓고 갔을까? 노인 같은 배테랑 킬러가 실수로 잊고 갔을 리 없는데. 유품으로 남긴 건가? 아니면.. 아니라고는 했지만..’

마법사는 권총을 들어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탄창을 열어보았다. 6연발 리볼버 권총의 탄창에는 총알 한 개가 들어 있었다.

‘러시안룰렛이라도 하라는 건가?’

마법사는 탄창을 엄지손가락으로 돌려보았다. 탄창이 촤르르 돌아가자 박혀있던 총알 하나가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회전하는 총알의 궤적을 따라 마법사의 감겼던 기억도 함께 따라 돌았다.

믿음, 약속, 내어준 마음, 기만당한 마음. 어리석은 유혹 앞에서 갈등하다 파괴된 관계들. 연결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 푸른 꿈들. 각자의 욕망을 따라 갈기갈기 찢겨 버린 동상이몽들. 아무리 손을 뻗쳐도 닿을 수 없던 손들. 유린당한 마음과 그걸 방치했던 의지들. 관심을 오해로 받아들이는 차가운 경계와 증폭시켜 보따리마저 착취하려 들던 두려움들. 이해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벽들. 배척하는 차가움과 혼자 남겨질 것 같은 공포. 끊기다 연결되다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는 소심하고 간절한 관계들. 그리고 내려찍는 도끼.

마법사는 버텨온 세월이 헛헛하게 느껴졌다. 남은 것은 건조하게 말라붙은 상처 딱지들뿐이니 시간을 연장하며 계속 견뎌낼 마음이 남아 있지 않다. 마법사는 각자도생의 21세기가 역겨웠다. 그래서 살아질까? 공멸을 앞당길 뿐인 이기적인 마음들이, 이타를 위장한 기만하는 마음들이 오히려 인류의 공감각 같은 것들을 마구 마비시키고, 수 세기에 걸쳐 쌓아 온 합의와 질서를 제로로 돌리는 의식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은 더 이상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무력감이 손발을 꽁꽁 묶어버린 듯했다.

동지를 찾았다. 조난자가 인기척을 찾듯이, 외계 행성에서 생명체를 찾듯이. 누구라도 마음을 나누고 뜻을 같이할 만한 이가 하나라도 있는지 스치는 모든 인연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물론 각자도생을 천우신조로 무장한 고독한 늑대들이 대부분이라, 스킵, 스킵, 너도 스킵. 아니야, 아니야, 이런 건 아니지. 그렇게는 아니지. 뭐 하자는 거니? 나만 살겠다는 거야? 그래그래, 넌 그런 사람이잖아. 불신과 두려움으로 갑옷을 삼은 유약한 어른아이 말이야. 그러니 지나치렴. 뒤돌아보지 말고 그냥 가던 길을 가라고. 밑장 빼든 손을 어따 내밀어. 한 발 뒤로 빼고, 한 눈으로는 빠져나갈 구멍만 찾아대는 너랑 무슨 팀을 해. 무슨 공동체를 해. 뭐가 하나야. 누가 가족이래.

세상은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다. 개인은 고립된 신이 되었고 공동체는 비겁한 하이에나 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인류는 모든 가치에 가격을 매기고, 가격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들은 폐기 처분한 지 오래다. 사람은 우주가 아니고 상품이고 재료일뿐이다. 사랑은 전부가 아니고 도구이고 수단이다. 꿈은 목표가 아니고 포장이고 가식이다. 그리고 사람은 외롭다. 사랑은 사라졌고 꿈은 바스러졌으니 사람은 허무하다. 그렇게 나이를 채우고 수명을 메꾼다.

‘이건 아무 의미도 없잖아. 그런 세기가 있었던가? 모든 것을 가지고도,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 세기가. 이런 엿같은 세기가 또 있었던가?’

마법사는 기억을 더듬어 본다. 900년을 거슬러 온, 30세기로부터의 기억을 모두 뒤져본다. 그런 세기가 또 있었던가? 이런 비참한 세기가 또 있었던가? 모든 세기는 21세기에서 종말을 맞이했던가? 여기가 세상의 끝인가? 그렇다면 그 끝을 좀 일찍 마감한들 어떤가? 이대로 생을 더하는 건 지옥에서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마법사는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탄창을 튕긴다. 촤르르 남은 인생이 돌아간다. 텅 빈 5개의 구멍과 총알이 담긴 단 하나의 구멍. 이건 도박이 아니다. 의미도 희망도 없는 생을 연장하는 것이 도박이지.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만날지도 모를 동지들, 친구들을 기다리며 카페를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도박이지. 언젠가 누군가는 잡아줄지도 모를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하루하루를 연장하는 것이 도박이지. 의미도 없는 생 하나를 더하며 의미로 채워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 도박이지. 그렇다면 이번 생은 여기까지여도 좋지 않을까? 그만이어도 좋지 않을까?

‘그래. 노인은 잊은 게 아니야. 노인은 내게 묻고 있는 거야. “당신의 계약은 유효합니까? 마법사는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 겁니까? 아무도 돗자리를 펴고 함께 김밥을 먹지 않는데 당신은 텅 빈 교실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자, 여기 운명의 수레바퀴가 있습니다. 고통은 잠시고, 지옥은 여기에서 멈추는 겁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 아닙니다. 선택은 우주에게 달려 있는 겁니다. 당신은 그저 방아쇠를 당기면 됩니다. 단 한 번, 단 한 번 당기는 겁니다. 단 한 번이면 우주의 의지가 실현될 테니까.”‘

마법사는 권총을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끌어당김이 마법사의 운명을 가른다. 운명을 따라 여기까지 왔으니. 그리고 그것은 지옥이었으니. 여기서 지옥의 운명을 가르는 것이다. 머리를 박살 내고 싶지는 않다. 믿은 것은 가슴이었지 머리가 아니었으니까. 내민 것은 심장을 쥔 손이었지 계산을 마친 머리가 아니었으니까.

‘매번 거절당하고 배척당한 손이 부르짖는 심장을 심판하는 거야. 네 박동 때문에 손이 수고했으니, 그 값을 치러야지.’

마법사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머뭇거림은 마법사의 덕목이 아니니, 단번에! 한 번에!

철컥,

불발. 불발이다. 방아쇠가 때린 구멍에는 총알이 없었다. 살았다. 아니 끝낼 기회가 사라졌다. 마법사는 억울했다. 우주는 아직 그에게 종료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기약 없는 생존을 이어가라고 또다시 등을 떠민 것이다. 마법사는 분노했다.

“이건 아니지. 이번에도 이러면 안 되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매번 운명을 따라, 운명을 가리키는 직관을 따라 마법사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반복했다. 떠나야 할 때 머물렀고, 머무를 때는 쫓겨났다. 지켜야 할 자신을 내어주고 붙들어야 할 인연에게서 물러나야 했다. 맞서야 할 때는 침묵을 요구받고 눈치를 살펴야 할 때는 소신을 드러내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모두 당당했다. 운명과 직관을 따르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계산이 떨어지지 않는 선택으로 괴상한 놈 취급을 받아도 직관을 따랐으니 되었다고, 운명을 따랐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마법사는 의연하니까. 배척과 배신을 미숙과 연약함으로 받아들였다. 마법사는 의젓하니까. 그러나 누구도 교실에 홀로 남겨진 마법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왜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느냐고 찾아오는 이가 없다. 그렇다. 마법사는 이제 울어야 하는 것이다.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토해내야 하는 것이다. 유보된 보상과 미뤄진 위로를 더 이상 의젓하고 의연한 태도로 억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죄니까.

마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권총에서 소음기를 돌려 제거했다. 종말은 고해져야 하니까. 세상에 울려 퍼져야 하니까. 눈물은 삼키는 것이 아니라 뱉는 것이니까. 울음은 침묵이 아니라 흐느낌이니까. 이제 드디어 어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하는. 선택은 심판이다. 독립된 어른은 스스로를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운명을 양도하거나 위임하지 않은 자가 어른이고, 어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타자는 없다. 신도 없다. 아무도 자신을 대신해 심판할 수 없다. 종말은 자기 손에 들려 있다. 그것이 어른의 권리다. 탄생을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다.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마법사의 얼굴은 희열에 차올랐다. 마법사를 꽁꽁 얽어맨 운명의 고리가 모두 끊어져 나가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교실에 홀로 앉아 있는 어린 마법사가, 김밥도 아닌 김치와 감자조림 도시락을 먹고 있는 아이가, 곁눈질로 불쌍하다 안됐다 의식하고 있는 만인들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심판의 총구를 심장에 겨누고,

“으하하하. 운동회 날은 김밥 먹는 날이구나. 나만 몰랐네. 하하하 씨발 쪽팔리다!”

외쳤다. 부끄러워 콩닥콩닥 뛰는 심장에 권총을 쏘았다.

탕!

총알이 발사되었다. 고성이 울려 퍼졌다. 마법사는 그대로 쓰러졌다. 심장이 박살 난 채. 그의 생에 처음으로 자유의지를 실현한 것이다. 운명을 따르지 않은 순수한 자유의지. 마법사는 다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단 한 번에 결정되는 운명을 뒤집은 것이다. 부끄러움에, 가장 어른스러운 수치심에,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심판을 가한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교실에 앉아 더 이상 혼자 김밥을 먹을 수는 없으니까.

산산이 박살난 마법사의 심장 파편이 둥둥 떠올라 창밖으로,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퍼져 나간 심장 파편들이 태양을 가렸다. 맑은 겨울 하늘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늘따라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다며 모두 마스크를 꼭꼭 눌러 썼다. 누군가는 심장 파편을 흡입하고는 쿨럭쿨럭 기침을 해댔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날카로운 신경을 표창처럼 날렸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채. 아무도 소리 내지 않은 채.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의연한 척 입을 가리고, 의젓한 척 앉아 먼 산을 바라보았다. 먼 산 너머로는 너덜너덜해진 마법사의 심장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차갑고 쓸쓸한 바람에 휘날리며 유언을 낭독하고 있었다.

21세기여, 안녕
하하하 돈 많이 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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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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