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님은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어
Sep 20. 2022

마법사는 여왕을 본 적이 있다. 인사동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외국인이 ‘너 영어 할 줄 아니?’ 하길래 쿨하게 ‘No!’ 해주고 보니 팔에 BBC 완장을 차고 있는 거다. 그리고 거리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더라. 아 누가 오는구나.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두리번대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만 세단이 한 대 들어오더니 어떤 할머니가 자동차에서 내려서 손을 흔드는 게 아닌가.
어, 엘리자베스 여왕이네.
어쩌다 자동차 맞은편에 서 있는 바람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막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고. 자기네 나라 왕도 아닌데. 그러니까 그게 뭐랄까? 도착하기 전부터 느껴지는 어떤 기운이 심상치 않더란 말이지. 카리스마라고 할까? 그게 어떻게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느껴질까? 그래서 이게 대체 뭐지 싶었는데. 내려서 손을 흔드는 순간에 왕의 위엄과 권위 같은 걸,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 같은 걸 받았다.
아, 이래서 왕이구나.
그건 왕이라는 자리가 갖는 카리스마이기도 하겠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가진 품격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칠은 2살 때 그녀를 보고 아내한테 “어린아이가 놀라운 권위를 가졌고 생각이 깊다” 했다니, 이건 개인의 카리스마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건 마법사와 처칠만 느낀 건 아닐 거다. 여왕을 조문하기 위해 늘어선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고, 24시간을 기다려서라도 그녀의 마지막을 알현하려고 사람들이 이 알싸한 런던의 날씨에 고행을 자처하고 있더라. 몇백 명이 기다리다 기절하고 병원에 입원했단다. 어디까지 이어졌나 조문 행렬을 따라 걸어보는데도 중간중간 앰뷸런스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들에게 그녀는 진정 왕이었구나, 생각이 들더라.

사실 엘리자베스 2세가 왕이 된 과정을 보면 운명적이긴 하다. 1차세계대전의 스트레스로 그녀의 할아버지인 조지 5세가 서거하고, 왕위는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에게 주어졌는데 말이지. 이 사람이 유부녀랑 세기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생이자 엘리자베스의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에게 왕위를 줘버렸다는. 사랑을 위해. 두 사람은 결혼하고 동생은 왕이 되었는데 그 동생이 영화 <킹스 스피치>에 나온 그 말더듬이 왕이다. 소심한 성격의 조지 6세는 왕이 하기 싫어서 할머니 품에 안겨 두 시간 동안 대성통곡을 했다는데. 그럴 만도 한 게 입헌군주제의 왕이래 봐야 실권은 없으면서 책임은 막중한데 전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고, 세계전쟁이 막 일어나는 데 공산주의에다, 나치에다, 왕정을 박살 내려는 세력들이 득세하니 누가 왕 하고 싶겠나. 결국 스트레스로 줄담배를 피워대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 폐암으로 서거하고 말았단다. 그리고 그의 장녀 엘리자베스 2세. 25살의 왕.
국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실권은 없지만, 마땅히 부모 역할을 해야 할 왕이 물려받는 놈마다, 안 하겠다 못하겠다 집어치우고, 대성통곡을 하며 억지로 하는 상황이, 이게 부모가 애 앞에서 나 니네 아빠 아니야, 니네 엄마 아니야, 서로 밀어내는 형국이었던 거지. 거지 같은 자리라고. 그런데 여왕은 그 자리를 거부하지 않았단다. 대신 선포했지.
I’m your Maam!
그리고 오래도 살았다. 불쌍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니까.

인간이란 게 원래 자유를 원하면서 동시에 구속을 원하는 거지. 구속이 없으면 자유가 없으니까. 그게 인간의 종교성이고. 그래서 언제나 숭배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 의존할 대상, 의지할 대상. 그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기본 속성이다.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들은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고, 나 이외의 타자와의 연대가 필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혼자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맹수가 아닌 인간은 의지할 대상을, 숭배할 대상을, 자유를 헌납하고 다스림의 은총을 입을 대상을 반드시 찾게 돼 있다는 거. 신, 왕 같은 것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의지하는 것은 불안하니까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지. 그게 사람이든 자연이든, 오빠들이든 우윳빛깔 아이유든. 그렇게 생겨난 게 왕이고. 그래서 모든 인간은 왕이 필요하고. 그걸 세련되게 말해서 리더라고.
리더를 뽑는 건 따르고 싶고 보호받고 싶기 때문인데, 이끌지 못하는 왕은, 지켜주지 못하는 왕은 필요가 없는 거 아니겠는가. 그때마다 백성들은 혁명을 일으키지만 반대로 아무도 왕이 되지 않겠다고 하면, 누구도 그 자리를 맡지 않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공포에 휩싸여 흩어지는 거야. 다른 왕을 찾으러. 억압이 없으면, 붙드는 중력이 없으면 무중력 관계들 속에서 우주미아가 되버리고 말테니까. 고아 말이야. 그래서 욕을 욕을 하면서도 억압의 자리를 찾아가지. 지옥 같은 회사로 돌아가고, 거지 같은 가족으로 돌아가고, 바보 같은 공동체 속으로 돌아가고. 것도 안되면 강력한 왕을 창조하는 거야. 폭군, 독재자.
그런 기분이었을까? 왕 자리가 싫고 무섭다고 내던지는 계승자들 뒤로 대영제국의 위상이 무너진 자리를 떠받쳐야 했던 여왕에 대한 기대. 왕도 리더도 없이, 각자도생을 하고 있는 공화국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감정이 이들에게는 있는 걸까? 그러니까 저렇게 줄을 서고 있는 거겠지.
실권이 없는 입헌군주제의 왕이지만 하나의 권리가 있는데 그건 거부권이란다. 정치력이 뛰어났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한번도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그건 힘의 논리를 알기 때문일 거야. 거부권의 힘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때 더 강력해지니까.
그러니까 여왕님은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다는 거.

하지만 그럴수록 여론은 더 집중되는 거야.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은 권력을 두려워하거든. 그게 막상 사용하고 나면 별 게 아니라도 말이지. 뭔가 있는데 행사하지 않는 힘. 그것은 공포를 불러일으켜. 경외를 불러일으켜.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왕. 그렇다고 위엄도 권위도 잃지 않는. 그런 왕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 혼자 잘났네 뽐내기 대회를 펼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형식뿐이었어도 나름 왕 같았던, 왕의 위엄과 권위를 잃지 않았던 여왕의 백성으로 살아 온 시간과 스스로 왕이 되어 자신을 다스리고 타인을 정복해야 하는 삶 중 어떤 것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낄까? 어떤 것이 더 ‘인간답다’고 느낄까? 공동체적 배려를 제거한 일률적 평등과 약육강식 속 자유 이전에 말이야.

탈중앙화의 크립토 세상은 중앙 없이, 왕 없이 알고리즘에 의해 잘도 돌아갈 거라고, 집단 지성은 어떤 왕의 지혜보다 현명할 거라고 큰소리를 떵떵 치더니, 공동체가 위기에 빠져들자 모두 저만 살겠다고 한강 다리를 마구 끊어놓고 내빼는 이 바닥에서, ‘I’m your Maam!’을 외치며 나를 따르라고, 책임은 모두 내가 지겠다고 외치고 나서는 누군가가 있다면, 너는 따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버려진 늑대처럼 키보드 뒤에 숨어서 혁명을 말로만 떠드는 벌거벗은 거지 왕자 행세를 하면서도 불안에 떨지 않을 자신이 있느냔 말이다. 그게 막상 해보면, 그 자유라는 거 얼마나 불안한 건지. 네가 욕하는 억압이라는 누르는 힘, 붙드는 힘이라는 거 얼마나 그리운 건지. 회사 관두고 한 달만 있어 보면 안다. 집 떠나 일주일만 있어 보면 안다. 성격 차이로 결별하고 백일만 있어 보면 안다. 자유는 시베리아 한복판에만 넘쳐나니까.
그래서 여왕님은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어.
언제나 I’m your Maam! 하실 뿐.
독립은 무슨,
제 발로 서지도 못하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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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