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4) _ 조선은 철학이다

2018.02.18 

 

성리학 그거 별 거 아니야

성리학, 별거 아니에요. 말 그대로 ‘리’에 관한 학문이에요. 세상이 빅뱅으로 시작되었냐, 아님 절대적 ‘리’의 설계에 의한 것이냐. 뭐 이런저런 우주관을 ‘리’와 ‘기’로 정리한 거예요.

” ‘기’는 ‘리’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그에 따라 마음 또한 ‘리’로부터 품부된다. 따라서 ‘기’는 ‘리’보다 나중에 존재한다. 이는 ‘리’가 마음과 ‘기’의 본원이며 이 ‘리’가 있고 나서, 이 ‘기’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우주 만물은 ‘기’로 이루어지고 ‘기’는 ‘리’보다 나중에 있으므로 ‘리’는 우주만물에 앞서 존재한다. 아 훌륭하도다. 저 ‘리’ 는 하늘과 땅보다 앞서 있었네.”

정도전의 말이에요.

“하늘과 땅에 앞선 관점에서 보아도 시작이 없고 하늘과 땅보다 나중의 관점에서 보아도 끝이 없는 것이 ‘리’와 ‘기’이다.”

이방원의 책사 하륜의 말이에요. 두 사람의 말에 조금 차이가 있죠. 그게 이기일원론, 이기이원론 즉, 주기론과 주리론의 차이에요. 국사시간에 다 배웠어요. 그런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우주, ‘기’는 ‘리’에서 나왔다고 보는 게 주리론이고, ‘리’는 ‘기’의 운동 법칙이라고 보는게 주기론이에요. 이에 대해서 학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해요. 몰라요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가서 물어보던지.. 암튼 저는 주기론은 유물론적이고 주리론은 관념론적이라고 이해할래요. (이 소리 하면 전문가들한테 맞아죽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럼 뭔데? 하고 찾아보면 저들도 잘 몰라요. 그 소리가 그 소리에요. 저들끼리 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암튼 저는 절대성과 상대성의 구도로 세상을 이해해 보려고 이 짓거리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뭘 좀 아시는 분들은 이해를 시켜 봐 주세요. 용어에 집착하지 마시구요)

암튼 주리론/관념론을 강화하면 절대성이 강조되니까 왕권이 강화돼요. 당연히 왕들은 이 계통을 선호해요. 주리론의 대가는 누구? 퇴계 이황이죠. 선조는 나이 먹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황을 조정으로 끌어올리지 못해 안달이었어요. 왠지 이해가 가시죠? 이 주리론 계열이 우리가 잘 아는 영남학파에요.

 

조선 성리학의 계보

안향으로부터 이어진 성리학의 계보는 목은 이색을 거쳐 그의 제자 정몽주와 하륜, 정도전으로 나누어져요. 아시다시피 정도전은 혁명파였고 하륜은 그러한 정도전을 제거했던 이방원의 책사였어요. 정몽주 계열의 사대부들은 정권에서 밀려나 낙향해서 사림을 만들었죠. 안동 일대에서요. 그래서 이들은 영남학파가 되고, 하륜과 정도전 계열이 그대로 조정에 남아 권력을 이어가고, 이게 경기, 충청중심의 기호학파가 돼요. 여기까지는 주리론, 주기론의 흐름이 분명하게 나누어지지는 않았어요. 다만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분리되고 있었는데, 이 학파가 분명하게 나누어지게 된 것은 퇴계 이황과 서경덕/이이의 대에서에요.

앞에서 얘기했다시피 퇴계 이황은 이기이원론, 주리론을 주장했어요. 반면에 서경덕과 이이는 이기일원론, 주기론을 주장했어요. 두 진영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으나 정국을 주도한 것은 주기론자들이었어요. 당연한 결과에요. 중국에서(명 중기) 성리학이 주도권을 실용적인 양명학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고, 동양 사회 전체가 수천년 동안 유물론적 흐름을 이어왔으니 절대성의 관념론이 자리를 잡기가 쉽지는 않았겠죠. 주리론자들은 몇 번의 정권 참여 기회를 만나긴 했으나, 수백 년을 지방에서 찌그러져 후학 양성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강한 것은 언제까지나 강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 일단 권력을 잡으면 자꾸 관념론(절대성)에 눈이 가기 마련이죠. 하늘의 대리자 자리를 획득하면 정권을 공고히 하는데 유리하니까요. 경쟁자, 신하들이라고 가만 있을라구요. 덕분에 조선의 조정은 치열한 철학적 논쟁의 전쟁터였답니다. 권력을 잡으면 주리론으로 흐르고, 그걸 주기론으로 뒤집고.. 예송논쟁, 인물성동이론 논쟁.. 특히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은 아주 대표적인 씬이죠.

암튼 그러거나 저러거나 영남에서 찌그러져 있던 주리론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져요. 크리스트교 말이에요. 심지어 후기 영남학파의 대표주자인 정약용은 천주를 상제로 모시며 급격한 입교를 하죠. 절대성에 목말라 있던 주리론자들이 서양의 관념론과 조우하며 구원을 얻게 된 거예요. 그래서 당시의 안동지역에는 전단지만 보고서도 예수를 믿게 된 유생들이 엄청 많았대요. 심지어 일부러 선교사를 찾아가서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기도 했어요. 전 세계 선교역사의 유례가 없는 자발적 세례와 스스로 신부, 목사가 된 조선의 기독교 선교 역사는 실은 절대성에 500년이나 목말랐던 영남학파의 주리론자들에 의해서 였답니다.

이때의 일본은 어땠을까요? 앞에서 얘기했듯이, 막부정권을 청산하고 천황제를 공표한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배경에는 서양의 기독교의 전래보다 퇴계 이황의 주리론이 더 큰 영향력을 미쳤어요. 그래서 일본에서의 퇴계 이황의 학문적 지위는 어마어마하다고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천황을 중심으로 대동단결!’의 사상이 한반도에서 넘어갔다니..

자. 동서양의 문명은 이 20C에 접어들며 유물론과 관념론의 엄청난 혼란 속으로 질주합니다.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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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 알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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