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컷 고릴라의 죽음과 발기부전
2011.02.23
고리롱의 죽음
얼마 전 서울대공원의 인기스타였던 로랜드 고릴라 수컷 ‘고리롱’이 타개(?) 하였습니다. 고리롱은 49세를 살았는데 사람으로 치면 80-90세의 장수를 누린 셈입니다. 이런 고리롱에게는 젊은 아내 ‘고리나’가 있었는데 평상시 둘 사이의 부부관계는 원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육사들은 멸종 위기종인 로랜드 고릴라의 2세 보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남편 ‘고리롱’은 야동 보는 고릴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 ‘고리롱’과 ‘고리나’ 부부 사이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고리롱은 1968년에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거처는 서울대공원의 전신인 창경원이었는데, 열악한 시설과 환경 탓에 어린 나이에 양쪽 발가락을 절단해야 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장애 고릴라였던 셈이지요. 고릴라의 무리 행태는 인간의 가족제도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로 힘센 한 마리의 수컷이 무리의 대장이 되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립니다. 일종의 일부다처제인 셈이죠. 게다가 고릴라는 힘이 무척 강합니다. 성인 고릴라의 몸무게는 300kg에 달하며 턱 힘은 700kg, 내리치는 힘은 2.4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초식을 즐겨 하고 온순한 편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사자와 코끼리도 때려죽이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고릴라의 가죽은 질기고 두꺼워 아프리카에서는 고릴라의 가죽으로 방패를 만들어 쓰기도 한답니다.
고릴라의 사회는 힘을 기반으로 한 수컷,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초식을 즐기며 가정을 돌보는 착한 아빠이다가, 위기의 순간에는 괴력을 발휘하며 사자와 코끼리를 때려눕히는 슈퍼맨 가장인 것이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는 이러한 힘과 카리스마를 배경으로 할 때에 비로소 효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리롱에게는 아픈 상처가 있었네요. 양쪽 발가락을 모두 잃은 고리롱.. 어린 나이에 발톱 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렸군요. 15살이나 어린 젊은 처자를 얻고도 고리롱은 슬금슬금 피하기만 하고 통 안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리어 부인이 다가서려 하면 자신을 때리려 하는 줄 알고 성을 냈다고 하는군요. 젊고 활력이 넘치는 부인은 못마땅해서 도리어 남편에게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했습니다. 보통은 주먹을 날리거나 흙덩어리를 던지는 가벼운 충돌이었지만,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방을 물어뜯고 내동댕이치는 치열한 혈전(血戰)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고릴라인들 이런 부인이 예쁠 리 있겠습니까? 아내 고리나가 나뭇가지를 머리에 꽂고 몸을 부비는 등, 남편 고리롱에게 애정공세를 펼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고리롱은 딴청을 피우며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담당 사육사는 “가끔 젊은 나이 탓에 거칠면서도 까탈스러운 성격의 아내 고리나가 고리롱에게 다가가 집적거리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남편 고리롱은 귀찮은 듯 수줍음 많은 행동으로 고리나를 거부하는 상충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불편한 몸으로 인해 고리롱이 고리나에게 힘의 서열에서 밀린 탓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라고 분석합니다.
수컷의 위기, 남성의 위기
이제까지 힘과 전통적 권위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적 시스템을 유지해 온 인간 사회도 고리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위 ‘가장의 위기’, ‘남성의 위기’가 이미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고 있고, 이제는 위기를 넘어 존폐의 기로에 선 듯 위태위태하기까지 합니다. 부계 중심의 고릴라 사회가 유지되려면, 고릴라 가족의 가장인 ‘실버 백’의 힘과 권력이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 사회에서 그것은 생존권이지요.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경제력, 압도하는 힘과 카리스마야말로 가부장적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힘입니다. 넘치는 힘과 경제력을 가진 남성은 일부일처제가 법과 제도로 규정된 사회시스템 속에서도 다양한 여성편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남성이 전통과 관습에만 기대어서 기존의 가부장적 위계를 함부로 들이댔다간,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맙니다. 요즘의 여성들에게서 전통적 여성상으로서의 순종을 기대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우니까요.
변화에 민감한 우리 사회는 더더욱 가족해체의 진행속도가 빠른 것 같습니다. 아버지세대의 가치관이 아들세대와 충돌하고, 손자세대에 이르러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여전히 가부장적 가치관에 젖어 있는 아버지들과 어설프게 흉내 내려다 찜질방 신세를 못 면하는 아들들, 이를 보고 자라 자신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노라며 ‘초식남’의 길을 선택하려는 손주들과 더욱더 자신을 채찍질하여 소수의 능력남 대열에 들려 노력하는 몇몇 수컷들, 그리고 현실적 결혼포기자들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려는 남성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습니다.
어느 사회나 과도기에는 늘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개체들은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난 그저 어른들이 하라는 데로 했을 뿐이라구요’라고 변명하기에 현실은 한겨울 지하도 바닥만큼 차갑습니다. 현대의 남성들에게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전통적 부계사회에서 新 모계사회로의 진행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남성들의 살아남기란 버거워만 보입니다.
그럼 이제 여성들은 환호하며 새로운 가장으로서의 권력에 도취되어 샴페인을 터뜨려도 좋을까요? 여성가장시대의 도래가 여성들에게 마냥 해피하기 만한 걸까요? 그러기에는 남겨진 ‘고리라들’의 삶 또한 그리 녹록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결혼,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소수의 능력 있는 수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여전하겠습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도 그것은 늘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지성과 미모, 학력 등 다양한 스펙을 구비해야 했죠. 사회가 바뀌어도 여전히 상위 5%의 수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할 것입니다. 일부일처제를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하에서는 유전자의 우열을 막론하고 모든 암컷과 수컷이, 적어도 가족을 이뤄 볼(?) 권한을 공평하게 나눠 가지고 있었습니다. 짚신도 제짝이 있는 만큼 모두에게 ‘짝’ 이란 탐색의 대상이었지, 쟁취의 대상은 아니었으니까요. 이제 이 과도기를 거치면, 아마도 인간사회는 다른 동물들처럼 능력 있는 일부 수컷들만 남겨놓게 될지도 모릅니다. 도태된 수컷들은 더 이상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퍼뜨리지 못한 채 사라질 테니까요.
그러면 여성들에게 이것은 축복입니까? 재앙입니까? 소수의 능력남을 향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다처 시스템, 다처일부 시스템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사회는 소수의 월등한 ‘능력남’과 화려한 ‘스펙녀’의 결합만이 살아남게 되겠죠. 경쟁에서 탈락한 암컷들 일부는 아쉬운 대로 쓸만한 수컷들을 골라내 거둘 수도 있겠습니다. 암컷이 수컷을 부양할 의도와 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일부의 암컷들과 수컷들은 이러한 경쟁구도가 치사하다며 독신으로서의 생애를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뭐 이것도 저것도 모자란 암컷들과 수컷들은 스스로, 또는 반강제적으로 독신의 삶을 살아내야 할 테구요. 비극적이지만 이미 종종 목격되기 시작하고 있는 현실이며, 잔인하지만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질서로 하는 생태계 시스템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젊음의 힘과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 고리롱, 고리라 부부의 서열 경쟁에서 고리라는 노쇠한 고리롱을 압도했습니다. 마치 혼인서약서와 줄줄이 딸린 아이들을 앞세운 채, 가족부양이라는 의무에다가 교육비, 아파트 장만, 안전한 노후보장, 안락한 생활비 공급, 다정한 아빠로서의 역할 등 다양한 레시피를 부과한 채로 남편들을 몰아세우는 우리 사회의 일부(?) 아내들처럼 말이죠. 충분한 고려도 없이 관습과 성적 본능, 낭만적 환상에 속아 ‘사랑의 증명은 결혼’이라는 계약서에 덜컥 사인해 버린 어리석은 남편들은, 결혼한 지 3년 만에 잔인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넋이 나가 버립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무를 수도 없는 냉혹한 삶의 무게가 두 어깨에 주어지고, 자신의 행복과 꿈 따위는 처자식의 그것으로 강제로 치환된 채 노예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지요. 위안이라고는 출근하는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랫소리뿐. 그것도 가끔은 ‘아빠 돈 버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번역되어 하루 종일 뇌 속을 떠다니곤 합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과도한 의무를 감당해내는 우리의 아버지들은 40대 돌연사, 50대 명예퇴직 후 사업 도산, 60대 암 발병을 가까스로 막아내고는, 크게 한숨 쉬며 변두리 납골당에 안장되면 다행입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꽃 사들고 찾아오는 손주들은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많은 수의 남성들이 줄줄이 놓인 장애물 어디쯤인가에 걸려 넘어진 채로, 아내와 자식들 모두 뿔뿔이 떠나보낸 채 생을 마감하거나, 헛헛한 인생을 후회하며 뒷산과 파고다 공원 어딘가를 배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맙니다.
남성이 도태된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삶 또한, 핵전쟁 이후 생존한 지구인처럼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살아남은 능력남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테니까요. 씨만 주고 사라져간 수컷은 그렇다 치고 남은 사랑의(?) 흔적을 부양하기 위한 삶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종국에는 약육강식의 시스템에 따라 일부다처 또는 능력 있는 암컷을 중심으로 한 가모장제, 삶의 무게를 최소화한 채 본능만 해결하는 섹스 파트너등 다양한 가족(?) 상이 등장하고 명멸하다, 사회상을 반영한 어느 한쪽으로 귀결되어 가겠죠. 그렇기에 과도기적인 이 혼란 상황 속에서 각 개인의 선택이 매우 곤혹스러운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 셈입니다.
과연 고리라에게는 기회가 없었던 걸까요? 천수를 누리다 간 고리롱은 그렇다 치고, 이제 남은 생을 독수공방하게 된 고리라에게는 관계를 진전시킬만한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걸까요?
고리라가 남자의 심리를 알았더라면
아마도 고리라가 남자의 심리를 알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양쪽 발가락을 잘린 고리롱에게 고리라가 그렇게 위악스럽게 압도하지 않았더라면 고리롱은 고리라를 안아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힘이 권위의 상징이자 가부장적 가장의 절대조건인 고릴라에게 양쪽 발가락의 절단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고리롱은 더 이상 사자도 코끼리도 때려잡을 수 없게 된 것이죠. 무리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고릴라는 더 이상 가장으로서의 체면과 지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고리롱처럼 경쟁 상대가 전혀 없는 동물원 우리 안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존심을 잃은 가장, 힘을 거세당한 가장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죠. 이런 고리롱에게 쌩쌩한 자신의 젊음을 자랑해대던 고리라는 매우 불편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리롱에게 이른바 ‘암컷공포증’이 찾아 온 것이죠.
많은 여성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성적 지식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치마 두른 여자만 보면 성적 흥분이 일어날 것이라는 환상 말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혈기왕성한 젊은 남성들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것도 자신감이 충만하고 정력적인 젊은 남성들의 특징일 뿐입니다. 남성들에게 자신감, 자존심은 곧 힘입니다. 많은 의무가 부과된 가장에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력, 사회적 능력은 곧 성적 능력과 연결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이 든 중년 남성들이 발기부전으로 고민하고 부부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원인은 이러한 심리적 요인에서 기인합니다. 시쳇말로 잠자리도 ‘가오’가 서야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발기부전은 정서적 요인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피곤하고 에너지가 부족하면 성적 능력 또한 저하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이런 경우에는 충분한 휴식을 하고 원기를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체적 조건에 이상이 없음에도 발기부전이 생기게 되는 데에는, 아내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 또한 중요한 요인입니다. 아내를 대할 때면 사랑스러워야 하는데 무시무시한 삶의 무게가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죠. 아내의 머리 위를 떠다니는 밀린 고지서들, 아내의 등 뒤에 붙어있는 입을 쩍 벌린 자식들, 양팔에 들러 붙어있는 불편한 처갓집 식구들과 다리에 매어달린 고부간의 갈등, 그런 아내가 깔고 앉아있는 블랙홀같이 돈을 빨아들이는 대출 아파트 장판 바닥까지.. 이러한 모든 가시들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용기 있는 남편이 세상에는 많지 않습니다. 아내가 샤워하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이죠.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빠르게 가장의 권위를 실추시켰습니다. 더 이상 경제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우리의 남편들, 아버지들은 빠르게 회사에서, 가정에서 내쳐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양쪽 발가락을 절단 당한 고리롱처럼 위기의 가장들은 매우 예민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민해진 남편들은 아무 의도 없이 다가서는 부인의 접근에도 이빨을 드러내며 짜증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또는 집을 가출해 버리기도 합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내와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기도 합니다. 고개를 들 수 없는 아버지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고리롱과 같은 신세입니다. 그들은 매우 예민하고 힘을 잃은 자신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굴로 숨어버리고 싶어집니다. 자신을 추스를 여유가 필요한 것이죠. 현실에는 동굴을 대신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삶을 잃은 남성들이 갈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겨우 의지할 것이라고는 술밖에 없습니다.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잘 나가는 그들을 보자니 자존심 상하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만나봐야 기운만 빠지니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굴 같은 찜질방을 전전하다 그나마 수중에 남은 돈도 떨어지면 동굴보다 더 추운 서울역 광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렇게 비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남성들은 일부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현대의 남성 대부분은 그즈음 어딘가에 위태위태하게 걸쳐져 있습니다. 안간힘을 쓰며 더 이상 아래로 추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을 뿐입니다.
아내들도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동정과 연민의 마음으로 남편들을 거두기에는 남겨진 집안 꼬락서니가 말이 아닙니다. 대충대충 하루하루를 수습하며 살아가기에도 벅찬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한없이 추락하고만 있는 걸까요? 고리롱과 고리라는 결코 서로 협력하며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없었던 걸까요?
동굴 속의 남편을 기다려
사회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해도, 한 인간으로서 불쌍한 자신의 남편을 어찌 구제해 보고 싶다면..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다면.. 우리는 고리라의 실수에서 어떤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남편을 사춘기 아이로 여기기’
힘을 잃은 고리롱은 매우 예민해졌습니다. 이때 고리라는 고리롱을 가만히 두어야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젊음으로 무장한 고리라에게서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했습니다. 보통 힘을 잃은 수컷들은 일단 동굴을 찾아 들어갑니다. 거기서 많은 생각과 회한에 잠깁니다. 감정의 상승과 하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자신을 추스르는 것입니다. 정복욕이란 것이 수컷의 본성인즉, 아무리 좌절한 듯 보이는 수컷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수컷으로서의 본성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타이틀매치를 치를 에너지가 충분해질 때까지 암컷들은 수컷들을 동굴에 머물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동굴로 도망치려는 수컷에게 비난을 퍼부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혹 동굴에서 회복하게 되더라도, 암컷에게 복수하고 싶어지거나 완전히 실의에 빠져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리라처럼 괜히 매력을 발산한답시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지난 세월 억눌렸던 감정을 쏟아내기라도 한다면, 수컷들은 고리롱처럼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도리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암컷들은 이런 수컷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크게 마음을 상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을 목도한 남편은 더욱더 죄책감과 절망 속으로 침잠하게 됩니다. 그러면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의 수컷들은 외줄타기를 하듯 매우 예민해져 있다는 걸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배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죠. 아이를 방치할 수도 있고 패륜적인 행동을 자행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잘 절제하고 있는 수컷들일수록 엄청난 심리적, 정서적 스트레스를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는 상황일 테니까요. 이러한 와중에 비난은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는 것과 같습니다.
남편을 살리고픈 아내라면 매우 조심스럽게 남편의 동굴행을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동굴이 안전한 이유는 별 거 아닌 것에도 남편들의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남편이 측은해서 아무런 소리도 안 하고 묵묵히 가족을 부양하는 아내의 모습에도 남편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이 했어야 할 역할이었기 때문이죠. 아내가 가족부양을 힘차게 해나갈수록 남편들은 심하게 상처받고 오그라듭니다. 이제는 자신이 할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엄습해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처음에는 매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던 남편도 시간이 지나면서 도리어 뻔뻔해지고 거칠어지는 듯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남성성을 강제로 거세당하는 듯 느끼는 수컷들의 방어작용일 뿐입니다. 자리를 빼앗긴 1인자의 불편한 심기가 나중에는 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 이지요. 아내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어집니다. 불쌍해서 거둬줬더니 도리어 행패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남자들은 어디 갈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 현실을 아내들은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면 말이죠. 무슨 말만 해도 버럭 화를 내는, 가시 돋친 사춘기 아이들처럼 남편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도 사랑한다면 말이죠. 곁에 두지 말고 남편에게 자유를 주세요. 동굴에 숨어있을 시간과 여유를 충분히 배려해 주세요. 고리라처럼 힘자랑하지 말고, 남편이 힘자랑을 할 수 있을 만큼 에너지를 얻도록 놓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최면을 걸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도 최고라고..’, ‘여전히 당신은 나의 우상이고 멋진 남자라고..’ 토가 나올 것 같습니까? 사랑한다면 말이죠. 여전히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란 얘기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남편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마도 동굴에서 자신을 추스르고 힘을 얻은 수컷이라면 무언가 새로 도전하고픈 거리들을 가지고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이를 최대한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여전히 나의 편이라는 걸 남편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작은 것이라도 성취해낸다면 남편은 다시 자신감을 얻고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아내가 그 실패를 가지고 비난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남편은 아내를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아내에게 상의를 해 올 것입니다. 이 여자는 내가 실패해도 버리고 떠나지 않을 것이 분명해졌으니까요.
이러한 국면에서 만일 동굴에서 돌아온 남편이 얼토당토않은 일을 벌이려 한다면 문제가 어려워집니다. 아내는 이를 지원해 주어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당신 여태 정신 못 차렸어!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라고 비난하면 남편은 영원히 당신 곁을 떠나 버리게 될 것입니다. 동굴 속에서 내내 절치부심하며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내려온 남편은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무사 같을 테니까요. 눈앞에 보이는 반대자는 모두 적으로 간주 할 수밖에 없는 심리상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크게 손해 볼게 분명한 아내는 이를 흔쾌히 수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 전체에게 큰 위기로 돌아올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안타깝지만 그때에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많은 남편들, 아버지들이 이 사회가 원하는 대로 충실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가혹한 세상은 열심히 산 것만으로 보상해 주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인 사회에서 많은 수컷들이 졸지에 떨려나고 내쳐집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절망한 그들에게 자신을 추스를 만한 동굴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바닥까지 쪽쪽 빨린 채 분리수거함에 버려지는 신세가 되어버린 수컷들의 분노가 도시에 점점 가득해지는 것 같습니다.
버려진 가장 수컷들은 사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해서도 적개심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병적으로 진행될 때에는 ‘여성공포증’을 넘어 힘이 약한 유아 성폭행 등의 사회적 범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서운 아내, 무서운 어머니에게서 상처받은 성인 남자들이 성인 여성을 어찌해 볼 수 없으니, 약자인 여자아이들에게 위해를 가하고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려 드는 것이지요. 극단적인 일부의 예이긴 하나 경쟁에서 탈락하고 도태되는 가장들의 무의식에, 여성들이 공포스러운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하는 것은 모두에게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악스러운 아내를 피해 이방 저방을 전전하는 것뿐인 현실이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는 남편들은 자꾸 코너로 몰리고 있는 것 입니다.
100전, 99패 1승
몸값만 10억 원이 훌쩍 넘는 희귀 종의 2세를 만들기 위한 동물원 측의 노력은 고리롱, 고리라 부부의 불화 앞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다고 합니다. ‘매 맞는 남편’이었던 고리롱의 체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동물원은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비뇨기과 전문의와 함께 특별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하고 고리롱의 노쇠한 체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특식을 제공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고릴라들의 노골적 성애 장면이 담긴 야동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해도 별 반응이 없던 고리롱에게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부부싸움을 하던 고리롱이 괴력을 발휘해 고리나의 양팔을 꺾어버린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도망치기에 급급했을 고리롱이 일순간에 회춘해 버린 것입니다. 100전, 99패 1승.. 목격된 것만 100여 차례에 달한다는 고리롱과 고리라의 부부싸움 중 처음이자 마지막 고리롱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기적 같은 승리의 결정적 비결은 발기부전 치료제의 효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발기부전 치료제가 종종 체력을 급상승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하는데 고리롱이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입니다.
수컷의 우위가 확인된 이후 더 이상 둘 사이의 부부싸움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2세 만들기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고리롱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결국 노환으로 숨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잃었던 삼손이 최후의 복수를 위해 힘을 모두 쓰고 쓰러져 죽은 것처럼, 고리롱은 평생 시달리던 아내 고리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는 ‘난 남자다!’를 외치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동굴을 내려온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미션이, 자기 아내에 대한 복수라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고리라가 지혜로웠다면 자신의 젊음과 힘을 함부로 자랑하지 않고 고리롱을 가장으로서 잘 대우해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연기일지라도 체면을 잃지 않고 자존심을 세운 가장은 부단히 노력하여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을 것입니다. 약물의 힘을 빌려야 한 대도 말이죠. 힘! 수컷의 자존심은 곧 정력이니 둘 사이에는 사랑스러운 로랜드 고릴라 2세가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내 고리라가 남편 고리롱을 2세를 핑계 삼아 압박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고리롱은 가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들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온 힘을 내어 아내에게 단 한 번의 복수를 하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아니 독신으로 독수공방하며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아내들은 남편의 자존심을 잘 지켜 주어야 합니다. 동굴로 숨어드는 남편을 비난하지도 말고 절치부심 재기를 노리는 남편을 깔아뭉개지도 말아야 합니다. 상위 5%의 ‘능력남’을 쟁취할 자신이 있다면야 쫄아 든 남편 따위 신경 꺼버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암컷 중 하나라면 어렵게 얻은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한다! 잘한다!’해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당신의 피앙세에게 무시하는 말,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동은 헤어지자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남성을 다룰 이렇게 단순한 방법이 있음에도 집집마다 부부싸움이 그치지 않는 이유 또한 매우 단순합니다.
아내가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남편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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