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종말-1부] ‘당신은 한 사람과만 사는게 행복합니까?’

2009.11.07

 

가족의 기원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을 통해서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팔다리가 멀쩡한 누구나 지천에 널린 열매들을 따 먹을 수 있었으며 물놀이를 즐기며 자란 모든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물고기를 잡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 마을의 어른들이 돌도끼로 잡아온 산짐승, 들짐승으로는 온 마을이 별식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광경은 지금도 아마존의 오지나 밀림 속의 부족들에게서 여전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동굴이든 초가집이든 자연환경에 따른 자신들만의 가옥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건축 과정을 통해 몸을 뉘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어른, 아이의 구분과 경계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그것이 생존을 위한 절대적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젖먹이가 아니라면 두발로 걷고 손을 놀릴 수 있다면 먹고사는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환경이 지금처럼 어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되는 사회는 분명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혁명이 일어납니다. 인류가 신석기 사회에 접어들게 되면서 농경사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농경사회는 인류의 여러 가지 생활문화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며 살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내 손으로 씨를 뿌리고 경작하고 추수하여 곡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때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천지개벽할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소유’입니다.

 

소유의 탄생

수렵과 채집의 사회에서는 특별히 ‘소유’와 그에 따르는 ‘저장’등이 삶의 중요한 양식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든 과실을 따먹을 수 있었고 강과 바다는 풍부한 단백질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나의 것, 너의 것을 따로 구분할 필요 없이 또 내 것을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 저장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가져다, 잡아다 먹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물론 출산도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가족 내 남편, 내 자식의 개념은 희박했고 누구나 자유롭게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네 아이, 내 아이 구분할 것 없이 아이들은 우리 무리의 ‘작은 사람’으로 동등하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석기 농경 혁명은 이러한 리버럴한 생활양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소유’라는 개념을 탑재하게 된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은 아이를 갖고 출산을 하게 되면 노동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에, 무리의 남자들이 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숲의 과실, 누가 키웠는지 모르는 들의 짐승, 강의 물고기들과는 달리 내가 내 손으로 손수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추수를 한 곡식은 ‘내 것’이라는 개념을 사람들 속에 명확하게 심어주었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이 신석기 이전의 사회였다면, 저주를 받고 땀을 흘려야 하는 에덴동산 밖의 사회는 바로 이 ‘농경사회’라 볼 수 있겠습니다.

‘내 것’이라는 안정감은 반대로 이전에는 없던 탈취, 경쟁, 정복, 보안 등의 스트레스를 양산하게 됩니다. 성서에서 보자면 결국 인류 최초의 살인도 전에 없던 ‘소유’라는 개념에서 시작됩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야 비로소 육식이 허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지도 못하는 제물(양)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했던 ‘아벨’. 어떤 학자들은 이는 거룩한(?) 직업인 농사를 지을 권한을 가졌던 ‘가인’이 곡식을 충분히 ‘아벨’에게 나누어 주지 않음으로 ‘아벨’은 먹을 수도 없는 짐승을 제물로 드려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설득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것이, ‘가인’의 아내의 이름이 ‘소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최초의 살인, 그것도 친족 살인의 시작이 농경사회문화의 시작임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족의 탄생

남자는 자신의 땅을 경작할 노동력이 필요하고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동안은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이때부터 인류는 본격적으로 가족제도를 도입하게 됩니다. 여자들은 노동력을 제공할 아이들을 낳고 길러주는 대신 남자들은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가족’이라는 계약이 탄생한 것이죠.

농경사회로 시작된 ‘소유’의 개념은 단순히 ‘내 농토, 내 식량’을 넘어서 ‘내 남편, 내 아내, 내 아이, 내 가족’으로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배타적 경제계약관계가 가족제도의 시작입니다. 이 ‘소유’라는 괴물(?)은 무서운 속도로 증식해가기 시작합니다. 이제 ‘내 가족’은 세대를 더하면서 ‘씨족사회, 부족사회’를 거쳐 성(城)을 이루고 마침내 민족,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자손들이 번창하고 늘어나면서 더욱 영토가 필요해지므로 정복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친족이긴 하나 몇 촌인지 따지기도 어려운 사람들끼리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국가’라는 경계선이 정해지고 종국에는 부족한 영토, 소유를 더욱 늘릴 수 있는 영토분쟁, 전쟁의 역사를 낳게 됩니다.

시선을 좁혀 가족관계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전에 모두의 아이, 모두의 부모였던 아이와 어른,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의 평등관계는 부모와 자식, 내 자식, 내 부모로 제한되었고 버려진 아이, 부모를 잃은 아이는 말 그대로 고아라는 신분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함께 기르던 인류는 이제 내 남편, 내 아내, 백년가약, 불륜, 바람, 이혼 등등의 듣도 보도 못한, 미처 예상치도 못한, 복잡한 관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고대 원시인들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영화 대사를 들으면, ‘어떻게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니?’라며 이해 안 간다는 듯 어리둥절해 하지 않을까요? 마치 ‘판도라의 비밀상자’에서 뛰쳐나온 듯 ‘소유’라는 괴물은 인류의 삶을 마구 휘저어 놓게 되고 원인과 결과라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른 엄청난 카르마의 덫에 인류는 이리저리 사방팔방 복잡하게 얽혀들게 됩니다.

눈치채셨습니까? 이 이야기는 모두가 부모이고, 모두가 형제이고, 모두가 연인이었던 인류 공동체가 어떻게 파멸로 몰리게 되었는지, 절대 신앙처럼 숭배하고 있는 현대의 가족제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되돌아봄으로써, 미래의 가족제도와 결혼은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 상상해 보고자 하는 검증되지 않은 예측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내 아이, 내 남편, 내 아내’라는 배타적 관계 속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편입된 인류가 소중한 공동체와 관계성을 잃는 대신, 얼마나 많은 적과 경쟁상대를 얻게 되었는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는 도발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신은 한 사람과만 사는 게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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